벌써 코끝이 시린 계절이 왔다. 어떤 사람은 첫눈이, 또 어떤 이는 겨울 간식이 기대된다고 한다. 하지만 추워진 날씨가 반가운 진짜 이유는 종강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종강하기만 기다린다. 올해 초, 밀도 있는 삶을 살자며 ‘하고 싶으면 일단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 계획은 꽤 순조롭게 진행됐다. 새로운 분야에 여러 번 도전했고, 시간을 쪼개 여행도 다녔다.
하지만 그 열정 어린 에너지는 이제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이루어가기에는 조바심이 났기 때문이다. 더 큰 세상에 나가지 않고 주변만 보더라도 잘난 사람이 셀 수 없이 많다. 또, 남들이 가진 화려한 스펙과 성과는 주눅 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열심히 달려나가고 싶지만 한없이 쉬고 싶고, 남들이 선망하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조용히 살고 싶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이 계속되는 이유는 아마도 아직 자신을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일을 이끌고 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던 예전에 비해 요즘은 일에 이끌려 나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완벽한 주객전도 현상이다.
그래서인지 머릿속에 ‘휴학’이라는 단어가 계속 맴돈다. 잠시 쉰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지금과는 다른 상황을 원한다. 가끔은 여행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고, 아무 이유 없이 우울하기까지 하다. 이런 모습을 보니 꼭 중학교 2학년이라도 된 듯하다. 지금 기자는 두 번째 사춘기를 겪는 중인가 보다.
중2병보다 더한 대2병. 아무래도 단단히 걸려버렸다. 하지만 혼자 겪는 고민은 아니다. ‘대2병’이라는 말이 생겨난 걸 보면 말이다. 이는 대학에 진학했으나 미래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사람을 말한다. 증상은 꽤 많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지만 답을 찾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 불안하지만 막상 하고 싶지 않다. 또, 휴학이나 워킹홀리데이, 심한 경우 자퇴를 고민한다. 이외에도 몇 가지 더 있지만, 대체로 불안과 무기력을 겪으며 변화를 바란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기자의 경우 자꾸만 모든 초점을 남에게 맞췄다. 타인이 매기는 점수가 곧 나였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인정이 필요했다. 스스로에게 꼭 맞는 속도는 관심이 없었고, 남들과 발맞춰 걷는 게 좋았다. 그렇다 보니 무늬만 성인이 됐을 뿐, 여전히 스물두 살 미성년이다. 이러다 훗날 시시한 사람이 될까 봐 무서웠다.
얼마 전 짧은 글을 봤다. 모두 자신만의 시간대가 있으니 뒤처지지도 이르지도 않다는 내용이었다. 그저 낙관적인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꽤 공감됐다. 지금 기자에게는 스스로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다가올 2019년은 자체의 속도와 박자에 귀 기울일 생각이다.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