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영지] 그곳에 두고 온 것들
[월영지] 그곳에 두고 온 것들
  • 원지현 기자
  • 승인 2024.12.04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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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취록 폴더가 눈에 밟힌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대화의 주인공들은 가지각색이다. 경남대 학생이나 교직원은 물론이고, 다른 대학 학보사 기자들도 많다. 달마다 기획 연재를 이유로 전국의 대학언론인들을 인터뷰했던 까닭이다. 연재 기사가 발행된 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그 폴더를 복잡한 마음으로 훑어보곤 한다. 지면에 담지 못한 빛나는 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다른 인터뷰 기사를 업로드할 때도 비슷한 이유로 속이 시끄러워지곤 했다.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표현과 그 맥락들이 아른거리기도 한다. 지면 여백이 한정되어 있다는 핑계는 별다른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다. 타인의 말을 종이에 옮기는 행위는 여간 고민스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더구나 나의 말이 아니므로 가볍게 생각하기란 더욱 어려워 진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파이드로스』에 문자는 음성logos을 기록하는 유용한 수단이지만, 동시에 음성을 완벽히 기록하지는 못하기에 왜곡할 위험을 제공한다고 적었다. 충실히 기사에 담아내려 하더라도, 입말은 방향성에 맞게 다듬어지기 마련이다. 녹취록에 담긴 모든 말을 지면에 옮기더라도 어떤 의미에선 그것 역시 진짜 말이 아닌 셈이다. 글로 길어낸 말이 완전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면, 써야 하는 이유가 있긴 한 걸까? 있다.
  치료·약품이라는 뜻과 독·질병이라는 뜻을 모두 지닌 파르마콘pharmakon이라는 단어가 있다. 플라톤은 글이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이라고 여겼고, 시간과 공간에 제약받지 않고 반복될 수 있기에 약이라고도 여겼다. 그에게 있어 글이란 파르마콘이었다. 왜곡의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말을 오래도록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여러 대학 학보사 편집국장의 목소리를 담은 연재 기사를 발행하고 나서 한 당사자의 따가운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다. 그의 발언을 오해할 수도 있는 방식으로 작성한 것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을 보완하고 전달한 사과에 그는 녹취록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이해한다고 답했다. 같은 주제의 다른 인터뷰에서는 진지하면서도 멋들어진 멘트를 기사에 담지 못한 아쉬움을 인터뷰이와 나눈 적이 있다. 멘트가 독자들에게 있어 다소 격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기자 간의 데스킹이 이유였다. 어떤 면에선 씁쓸하게 다가온 두 경험이었지만, 수긍할 수 있었다. 말을 글로 담아내는 작업이 본질적으로 곡해의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라면, 내가 가져야 할 것은 끊임없이 점검하는 태도일 수밖에 없다.
  연말이 되면, 한 해 동안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린다. 지난 2년간은 빛나는 글을 쓰는 법을 골몰하는 데 가장 체력을 썼던 것 같다. 올해는 타인의 빛나는 말을 지면에 최대한 담아내려고 밤을 샌다. 그럼에도 녹취록 폴더에는 두고 가는 것이 쌓이겠지만, 어쩌겠나. 계속 고민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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