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주주의의 위기
[사설] 민주주의의 위기
  • 언론출판원
  • 승인 2024.12.0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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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몇 차례의 위기를 겪었지만, 현재의 상황은 그 성격이 다르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와 같은 단일한 문제가 아닌,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트럼프의 재집권이 한국 경제에 큰 불확실성을 안겨주고 있다. 미국 반도체 공장에 대한 보조금 취소는 물론, 보호무역주의 강화, 환율 상승 등 대처하기 어려운 변화들이 예고되어 있다. 국내 경제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삼성, 롯데 등 대기업의 실적이 악화되고 있으며, 52개 대기업이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가는 폭락하고 중산층의 가계부채 문제는 심각하다. 코로나 이후 가속화된 자영업 위기로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기후위기, 지방소멸, 저출생 등 구조적 문제들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총체적 난국 속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여야 모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있다. 거의 모든 중요한 법안은 대통령에 의해 거부되었고, 안 그래도 불황에 대처하는데 미흡한 2025년의 긴축 예산안은 야당에 의해 더욱더 삭감되었다. 이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과거 최순실 게이트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명태균 게이트다. 공식적인 의사결정 채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비공식 루트를 통해 권력 행사가 이뤄졌다는 점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다.

  이러한 사태의 이면에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는 ‘전쟁’이 되어버렸다. 여야는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상대방의 완전한 패배만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심리적 내전’ 상태에서는 어떠한 대화도, 타협도 불가능하다. 정치의 본질인 이해관계 조정과 갈등 해결 기능은 완전히 실종되었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법이다. 요즘 정치는 법정으로 넘어가 유무죄 판단에만 매달리면서 그 결과에 일희일비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윤리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정치의 본질적 기능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공자가 말했듯이 사람들은 형벌로 다스릴 때 법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무엇이든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정치권의 무감각이다. 정당은 국민을 대표하는 본연의 역할은 잊은 채 정치인들의 직업적 생존에만 급급하여 국가와 국민이 처한 위기 상황은 안중에도 없다. 대한민국은 지금 갈림길에 서있다. 정치권이 지금이라도 국민의 삶을 위한 정치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동안 이룩한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의 성과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여야는 현재의 파국적 균형을 깨뜨리고 새로운 정치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만이 정치권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자 위기 극복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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