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 생활은 곧 학보사였다. 작년 5월, 신입생이었던 나는 학생 기자를 모집하는 대자보를 보게 되었다. 마침 타 대학 학보사 활동을 해 본 사촌 형의 권유가 있었던 터라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새로운 집단과 환경을 받아들일 생각에 살짝 긴장됐다. 수화기 너머로 첫 물음이 들려왔다. “대자보가 아직도 붙어 있었나요?” 그렇게 학보사와의 인연은 미처 수거되지 못한 대자보를 통해 시작되었다.
수습기자 활동을 하던 중에 학보사에서 중국 봉사 활동을 가게 됐다. 약간의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 봉사 활동 참여 기회를 얻게 되었다. 우연한 시점에 참가하게 된 중국 봉사 활동은 나에게 백두산 천지를 볼 기회로 바뀌었다. 중국 지역 신문에 얼굴이 실리는 새로운 일도 경험했다. 우연히 머물고 있던 지역 주변이 홍수로 피해를 보면서 봉사 참여자 각자가 돈을 모아 기부했던 일이 이슈가 되었다. 우연으로 가게 된 중국에서 돌아왔을 때, 내게는 값진 기회들만 남아 있었다.
학보사에서의 기회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학생 기자들과 어울리는 시간은 사교성과 사회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를 돌아보고 고치려 노력하는 시간이 되었다. 글쓰기에 대한 터무니없는 자만심도 날이 갈수록 꺾였다. 혹독한 문법 교육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덤도 있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굉장히 필요할 글쓰기를 자연스레 터득했다. 일반 학생이었다면 몰랐을 우리 대학에 관한 세세한 정보와 이점도 알게 됐다. 작은 집단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던 시선이 대학 내 전체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보는 시점으로 변해 갔다. 학보사에서의 대학 생활은 무료할 새 없이 흘러갔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나면 나에게 기자실은 학업으로부터의 피난처였다. 학우들 중 한 명이 아닌 학생 기자로서의 내가 되었다. 가끔은 당장에 머물 곳이 없을 때마다 며칠씩 지내는 보금자리가 되기도 했다. 대학 내에서 부담을 느끼지 않고 갈 곳이 있다는 점은 단연 최고의 편리성이다. 기자실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이번 학보를 마지막으로 나의 학보사 생활도 끝난다. ‘학생 기자’로서의 마지막 글인 셈이다. 강의가 없는 시간이면 밥 먹듯 기자실로 출근해 오던 습관 때문인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쉬움이 매우 크게 다가온다. 내가 쓴 글이 벽에 걸렸을 때 쑥스러운 얼굴로 올려다보던 즐거움과도 이별이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나는 학보사 사람들에게 늘 받기만 해 왔다. 내가 무언가를 했다고 하기보단 무언가를 얻었다.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큰 즐거움이고 설렘이었다. 이젠 기자실 문을 닫고 나오면 나는 독자가 된다. 늦게나마 학보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독자로서 열심히 돕고 싶다. 학보사는 내게 있어 매우 값진 기회였다. 매우 값진 우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