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법에는 노동 3권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으로 노동자들이 사용자와 대등하게 교섭하고, 필요할 땐 파업을 통해 노동권을 보장받도록 한다. 그러나 기본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노동 3권은 매우 한정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모호한 노사 관계 정의나 단체 행동권을 무력화시키는 기업과 국가의 손해 배상 소송 등 다양한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노란봉투법’을 입법하기 위해 힘을 쏟는 중이다. 노동 3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률인 노란봉투법에 대해 알아보자. / 사회부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노조법)의 다른 이름이다. 개정안은 법률적인 사용자 정의를 확대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무분별한 손배 소송을 방지하는 신설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란봉투법이라는 독특한 이름은 손해 배상 청구를 떠안은 파업 노동자들에게 노란봉투에 성금을 담아 보내던 모금 운동에서 유래되었다.
+ 노란봉투법이 바꾸는 것들
기존 노조법 2조에서는 노동 사용자를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로 명시하고 있다. 법 조문대로라면 이는 본사와 노동자 간의 전통적인 관계는 물론 원청과 하청 노동자 형태를 비롯한 다종다양한 노사 관계가 해당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하청 노동자는 직접적인 근로 계약 관계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당한다. 이러한 법과 실제 상황의 괴리는 삭감된 하청 노동 임금의 회복을 요구했던 대우조선해양 파업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노란봉투법은 이런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우선 노조법 2조의 기존 사용자 정의 후단에 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라면 사용자로 본다는 내용이 신설된다. 직접 명시된 근로 계약 관계를 맺은 자뿐만 아니라, 근로 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도 사용자 범주에 포함하는 해석을 법률에 반영하자는 취지다.
현행 노조법 3조의 경우, 합당한 파업 사유를 ‘근로 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런 협소한 정의는 부당 노동 행위나 단체협약 불이행에 대한 파업의 정당성을 부여받기 어려운 상황을 만든다. 이는 파업에 대한 지나친 불법화와 더불어 기업의 무리한 손해 배상 요구로 이어진다. 고용노동부가 작년 10월 20일 발표한 ‘09년부터 22년 8월까지 기업·국가·제 3자가 노동조합· 간부·조합원을 상대로 제기된 손배소송 및 가압류 사건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지난 14년간 청구된 손해 배상 청구액은 총 2,752억 원에 달했다.
노란봉투법은 이러한 무분별한 손해 배상 청구를 막기 위한 법률 속 제동 장치가 되는 셈이다. 노조법 3조에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인한 배상 책임은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책임 범위가 개별적으로 정해져야 한다. 또한, 신원 보증인은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조항이 신설된다. 즉, 파업으로 인한 책임 당사자와 배상액을 명확히 정함으로써 손해 배상을 노조 전반에 연대 책임으로 부여하던 관례를 바꾸는 것이다.
+ 노란봉투법 제정을 위한 과정
노란봉투법은 2009년 정리해고에 대항해 파업에 참여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2014년 가해진 47억 원의 손배가압류를 막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법이다. 당시 47억 원에 달하는 손해 배상금이 사회 이슈가 되자 한 시민이 4만 7,000원을 노란 봉투에 담아 성금으로 보냈다. 이 사례를 시작으로 47,547명이 참여하는 캠페인이 퍼져나가게 되었고, 입법 청원 운동으로 이어졌다. 정치권도 이에 응답해 19대 국회를 시작으로 입법 시도를 시작했다. 하지만 법안 개정은 쉽지 않았다. 불법 파업 조장, 재산권 침해라는 재계 및 보수 정당의 반발로 노란봉투법은 19대·20대 국회 모두에서 별 진전 없이 임기가 만료되며 폐기되었다.
연달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던 노란봉투법이 다시 떠오른 계기는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이었다. 작년 8월, 대우조선해양은 임금 인상과 노조 활동 인정 등을 요구한 파업노조 간부들을 상대로 470억 원의 손해 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노조를 상대로 한 사측 손해 배상 청구액 중 역대 최대 금액이다. 이후 과도한 배상 요구라는 지적이 제기되었고,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다시 입법 과정을 밟게 되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11월 노란봉투법은 국회 국민동의청원 5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같은 해 정의당은 노란봉투법을 발의하여 당론으로 채택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7대 입법 과제에 노란봉투법을 포함하면서 입법은 동력을 얻었다. 그렇게 노란봉투법은 올해 2월 21일, 현 21대 국회 상임위를 10년 만에 통과하며 심의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 부족하지만 그래도 노란봉투법
사실, 현재 상임위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주요한 내용이 다수 빠진 채 국회에서 계류 중이기에 이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발의된 법률 원안에는 노조 이외 임원이나 조합원에 대한 배상 청구를 금지하고, 직접적이지 않은 손해는 배상 청구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항이 있었다. 또한, 배상액을 제한하고 상한을 정하도록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내용은 논의 과정에서 모두 사라졌다. 이를 대신해 앞서 언급한 연대 책임을 막는 조항이 담겼다. 손해 배상 자체가 쟁의 행위를 무력화하고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는 강력한 수단으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노란봉투법은 플랫폼·특수고용노동자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할 여지를 만들었다는 점과 협소했던 쟁의 행위의 범위를 넓혔다는 점, 무분별한 손해 배상을 조금이라도 제한한다는 점에서 큰 진일보다.
“불법 파업 부추기는 노조법개정안”, “황건적 보호법이다”. 노란봉투법을 둘러싸고 실제로 등장한 이야기다. 심지어 후자는 한 국회의원의 발언이었다. 이런 발언들을 보고 있자면 법안이 기업과 나라를 무너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노란봉투법은 특별히 새로운 무언가를 보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좀 더 명확히 하고자 할 뿐이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이 염원해온 만큼 개정안의 순조로운 통과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