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공은 현대문법이라 일컬어지는 분야이다. 그렇다. 나는 ‘문법’을 전공했다. 전공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면 많은 이들이 같은 질문을 한다. 왜 그런 분야를 공부했냐고... ‘문법’이라 하면 으레 머릿속에 지루하고 어려운 분야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니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게다가 ‘재미있어서’라는 나의 답은 커지는 동공과 함께 이내 믿기지 않는 듯 의아한 눈초리로 화답(?)을 받곤 한다. 문법은 지루하고 어려운 분야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엔 작은 오해가 있다. 나는 지금 ‘문법은 재미없다’라는 명제에 대해 항변하고자 한다.
문법적이라는 말은 흔히 ‘어법에 맞게 표현해야 한다’라는 규범 문법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현대언어학에서의 문법은 그 개념이 다르다. 널리 쓰이는 표현이라면 문법적인 것이다. 즉, 우리는 모두 문법적인 사람들이다!!!(‘두둥’ 효과음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쉬울 따름이다.) ‘바라다’라는 동사의 맞춤법 얘기가 있다. ‘철수가 성공하기를 바래’는 틀리고, 원형이 ‘바라’이므로 ‘성공하기를 바라’가 올바른 표현이라는 캠페인도 있다. ‘(빛이) 바래다’라는 표현이 있어 혼동을 피하기 위함이라는 부연 설명도 곁들인다. 그런데 ‘철수가 성공하기를 바래’에서 누가 ‘(빛이) 바래’라고 오해를 한단 말인가. 오히려 ‘철수의 성공을 바래봅니다’를 ‘바라봅니다’라고 했을 때 철수가 성공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관찰한다는 혼동이 있을 수는 있겠다. 게다가 ‘공부하다’는 왜 ‘공부해’가 허용되고 원형인 ‘공부하’가 올바른 표현이 아닌지도 의문이다.
한국어는 나의 전공이 아니니 더 이상은 조심스러워 이쯤에서 영어로 넘어가 본다. 앞서 얘기했듯이 우리는 모두 문법적인 사람들이다. 그 증거가 다음의 예문이다. The binkish plipper shorked gistically. 이 문장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왜냐하면 영어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영어를 접한 사람이라면 위 문장에서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binkish는 형용사이고 plipper는 명사, shorked는 동사, gistically는 부사이다. 이를 파악한 당신은 매우 문법적이니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
하지만 문법적이라는 것은 다소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있다. 위 문장은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문법적인 문장이다. 심지어 ‘노르스름한 파란색 잠꼬대가 시끄럽게 눈을 감고 있다’라는 의미불명의 문장도 문법적인 문장이다 (문장을 작성하고 있는 글에서도 빨간 줄이 안 그어지고 있다!). 노르스름하면서 동시에 파란색일 수 없고 잠꼬대는 색이 없으며 눈을 감을 수도 없다. 하지만 한국어의 문장 구성 규칙을 어기지 않았으니 문법적이다. 다만,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우리 세상의 모습과 충돌이 있을 뿐이다.
문법은 나에게 재미있는 분야이다. 짧은 지면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나의 한계를 느껴 안타깝지만, 문법이라는 것이 누군가 정해서 그렇게 하도록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 사용하고 있는 언어 규칙의 집합이라는 점, 그리고 우리는 이미 충분히 문법적이라는 점은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문법 얘기를 실컷 해놓고 띄어쓰기가 바르게 되어 있는지 걱정이 태산이다. 나에게 문법은 재미있다. 그러나 띄어쓰기는 어렵다...)
전윤호(영어교육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