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보단 둘, 둘보단 셋
“오늘따라 공기가 와 이라노?” 도로 위에 늘어선 차들 때문에 눈앞이 연기로 채워진다. 아버지는 최대한 연기를 덜 마시려 불편한 호흡을 이어갔다. 점점 찌푸려지는 미간을 보니 얼마 안 가서 집에 가자는 호통이 울려 퍼질 듯하다. 아버지의 미간은 불편함을 나타내는 척도다. 촘촘해진 미간에 기침까지 더해지면 온 가족이 긴장 상태로 들어갔다. 기침이 심한 날에 눈은 충혈되고 코는 헐어버려 흡사 혼이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물론 만병에도 약이 있듯 빨리 괜찮아지는 법을 가족 모두가 알았다. 풀과 나무가 우거져 자동차보다 벌레들이 더 많이 보이는 도시 외곽으로 향하면 된다. 거짓말 같지만,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어떤 약보다 효과가 좋았다.
전라남도 무안군, 아버지가 태어난 지역이다. 아버지는 무안 내에서도 논과 밭이 펼쳐진 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주위에 시야를 막는 건물과 자동차가 없는 곳에서 나고 자란 탓일까. 아버지는 하늘로 뻗은 건물과 줄지어 가는 차들을 유독 불편해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일 년 중 고향으로 갈 수 있는 명절을 가장 기다렸다. 명절이 다가올수록 들뜨는 아버지와 반대로 우리는 명절을 반기지 않았다. 시골에 내려갈 생각만 하면 이틀 전부터 머리가 아팠다. 편의점, 배달음식, 커피숍 등이 없는 건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펼쳐진 논과 밭에서 올라오는 비료와 거름 섞인 냄새는 아직도 익숙해지지 못했다. 냄새가 날 때마다 코를 막았지만, 손 틈으로 들어오는 냄새에 헛구역질을 반복하며 명절을 보냈다. 고통을 호소하는 우리와 달리 아버지는 누구보다 편안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쫙 펴진 미간을 보면 이곳이 얼마나 편한지 알 수 있었다.
자연 속 삶을 지향하는 아버지의 직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동차 정비공’이다. 어릴 적 그림에 소질을 보였던 아버지는 화공이 되길 원했지만, 돈이 없었던 집안 사정에 떠밀려 기술직을 택했다. 그렇다고 꿈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나중으로 미뤄뒀을 뿐이다. 아버지는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기술을 배워 졸업하자마자 정비공 일을 시작했다. 또래들이 대학 생활에 웃음 짓고 선후배, 동기들과 우애를 다지는 술 약속으로 하루가 가득할 때 아버지의 하루엔 출근과 퇴근밖에 없었다. 그래도 청춘을 반납한 덕에 또래들보다 빨리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 20대 후반, 취업을 준비하거나 직장 생활을 갓 시작한 친구들 사이에 아버지는 여유를 뽐낼 수 있게 됐다. 그는 더 늦기 전에 돈보다 중요했던 꿈을 펼치려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결혼으로 화공이란 꿈을 영영 펼치지 못하게 됐다.
아버지는 딱 서른이 되던 해에 결혼했다. ‘자신’이 아닌 ‘가족’을 우선순위에 올리며 서른을 시작했다. 1순위인 우리는 든든한 아버지의 기둥 아래에서 나고 자랐다. 지원받지 못해서 한 번 펼치지도 못하고 접혀버린 자신의 꿈 때문일까. 아버지는 자식들이 원하는 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가고 싶은 학원, 하고 싶은 일, 갖고 싶은 물건 등을 서슴없이 부모님께 말하고 얻을 수 있었다. 회사에서 받던 월급이 3명의 자식을 아낌없이 지원하기엔 모자랐단 사실, 이 때문에 사업소를 그만두고 개인 정비소를 차려 일을 시작했다는 사실도 그땐 몰랐다. 개인 정비소를 시작하면서 벌이는 나아졌지만, 함께 일하며 의지할 동료들이 없는 건 흠이었다. 이전에는 머리 맞대어 함께 고민하던 일을 이제 혼자 해결해야 했다. 모든 일을 오롯이 혼자 도맡으면서 생긴 책임감과 부담감이 얼마나 그를 짓눌렀을까?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학교를 마치면 집이 아닌 정비소로 향할 정도로 정비소는 집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당시에 나는 부모님과 함께 정비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남은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했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때부터 나에게 정비소는 ‘기쁨을 주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시선이 아버지 쪽으로 옮겨졌다. 내가 지켜본 결과 이곳에서 아버지의 하루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고장 난 자동차를 고치는 과정 중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차를 수리하는 도중에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 먼지를 뒤집어쓰는 건 기본이다. 아무리 씻어도 빠지지 않는 자동차 오일 때문에 손톱은 꺼메진 지 오래다. 무거운 부품을 매일 옮기며 생긴 근육통은 큰일 축에도 끼지 않았다. 커다란 부품에 머리를 맞아 부어오르기도 날카로운 물건에 살점이 뜯기는 사고가 잊을 만하면 큰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몸도 문제였지만, 서비스 직종이 가진 특징도 무시할 수 없었다. 여러 유형의 손님을 대하다 보면 몸보다 마음이 힘든 날이 많았다.
‘버티어 나아가자, 삶이란 버티어내는 것 외에는 도무지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 속에 담긴 문장이다. 처음엔 이 문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즐거운 일만 가득해도 모자란 인생을 왜 버티면서 살아갈까?’ 더 솔직히 말하면 평생 알고 싶지 않은 삶의 모양새였다. 그러나 ‘버티는 삶’을 곱씹을수록 아버지의 삶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아버지는 집안 사정 때문에 기술을 배워야 했던 젊은 시절을 겪었다. 결혼하고 식구들을 위해 자신의 오랜 꿈을 포기해야 했던 상황도 이겨냈다. 가족 구성원만큼 늘어난 책임감 때문에 개인 정비소를 차리고 동료 없이 혼자 일을 하며 지금까지 버텼다. 지금까지 그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딱 한 개 남았다. “너희를 다 키우고 나서 난 시골로 내려 갈 거야.” 고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항상 했던 말이다. 이 말이 지금까지 아버지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다는 걸 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갈 거야’가 ‘가고 싶다’는 어투로 변해갔다. 확신하던 미래가 또다시 막연한 바람으로 바뀌어 가는 게 느껴졌다. 더 늦출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 ‘시골에서 맞이하는 하루’ 유일하게 남은 한 조각의 꿈, 이제 우리 가족 모두의 꿈이 됐다. 시들어갔던 아버지 사이로 자라난 우리가 새로운 기둥이 될 차례다.
10·18문학상 수필 심사평
수필은 또 다른 자신과의 만남이다. 응모작품 속 주제를 다루는 부분에서 ‘개인의 발견’이 느껴졌다. 자신의 문제와 가족 및 타인을 바라보는 감정의 솔직한 대면이 엿보였다. 내면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은 쉽지 않은 길이다. 자신도 몰랐던 자신과의 만남이 새로움을 만든다. 이러한 깨달음이 선행되어야만 자신의 문장이 독자에게 전달된다. 일기가 아닌 수필이 되는 지점이다.
<세상은 원래 이래>는 세상의 담론에 편입되는 또 다른 자신의 발견 앞에 솔직하게 내면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자신이 느낀 세상이 돌아가는 거시적 담론을 자신이 겪은 미시적 사건으로 일반화하기에 다소 사건의 설득력이 아쉬웠다. 다만 수필의 형식이 아닌 다른 양식을 통해 작품을 형상화 한 부분에서 독창성이 신선했다. <혼자보단 둘, 둘보단 셋>은 보편적 아버지의 소시민적 삶이 뻔해질 수 있는 이야기로 전개될 수도 있었지만, 개연성과 깨달음이 있는 문장으로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결말 부분이 다소 급한 마무리를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마지막에 흩어져 아쉬운 작품이었다.
당선작을 선정하기에는 <세상은 원래 이래>와 <혼자보단 둘, 둘보단 셋> 두 작품의 아쉬운 부분이 눈에 밟혔다. 그 결과 두 편의 작품을 각각 가작으로 선정했다. 작품의 주제 의식과 수필이 가진 자유분방함을 개연성으로 직조해 천착해나가길 바란다.
이재성(동문 시인)
10·18문학상 수필 가작 수상 소감
글을 쓰면서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 일은 언제나 벅찹니다. 이번 10.18문학상에 당선이 저에게 그런 의미로 다가옵니다. 저의 글쓰기는 자기만족을 위해 시작한 행위였습니다. 혼자만의 이야기를 가득 채운 글이 좀 더 자란 나에게 즐거움을 주길 바랐습니다. 저를 위한 글이 타인에 초점을 맞춰 쓴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번 수상이 남들을 위한 글이 어색한 저를 위한 격려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이번에 수상한 ‘혼자보다 둘, 둘보다 셋’은 세상에서 제가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를 위해 쓴 글입니다. 아버지는 제가 겪은 사람 중 가장 배울 점이 많은 ‘어른’입니다. 아버지의 모든 점을 닮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중 가장 닮고 싶은 건 ‘당당함’입니다. 남들과 의견일 다를 때, 다른 사람이 자신을 무시할 때, 어떤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기죽은 적이 없습니다. 자신의 의견이 맞든 틀리든 오롯이 자신을 먼저 믿는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평생 남들이 쏘는 시선에 기죽지 않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제 글에 아낌없이 격려와 칭찬을 쏟아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아직은 완벽하다고 말 할 수 없는 글이라 좀 낯 뜨거울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문학상에서 받은 수상을 시작점으로 삼을 생각입니다. ‘혼자보다 둘, 둘보다 셋’ 이후로 좀 더 ‘남들에게 읽힐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