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저희 매장은 노키즈존이라서 어린이 동반이 불가능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노키즈존(Nokidszone)’은 영유아와 어린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업소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인터넷에 ‘노키즈존’을 검색하면, 시끄러운 아이가 없어 좋았다는 글과 오늘도 아이와 함께 방문했다가 거절당했다는 글이 공존한다. ‘노키즈존 지도’ 역시 나타났다. 기자는처음 이 신조어를 알게 되었을 때, 큰 감흥은없었다. 매장이 어린이 손님을 거부하더라도 기자의 일상생활에 별다른 차이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키즈존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친구와 함께 평소랑 다를 바 없이 동네 카페에 들어갔을 때이다. 카페 내부에는 나이, 성별 따질 것 없이 다양한 사람이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 시끌벅적했다. 큰 목소리로 욕설을 주고받는 이도 있었고, 카페 직원에게 말도 안 되는 클레임을 넣으며 소란스럽게 다투는 이도 있었다. 당시 카페 내부에서 시끄럽고 상식에 벗어나는 일의 중점은 아이가 아닌 어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노키즈존이 허울만 남은 단어처럼 느껴졌다.
노키즈존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찬성하는 의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시끄러운 울음소리,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가 낸 사고는 눈엣가시다. 그러나 이런 눈살 찌푸려지는 행동이 그저 아이에게만 나타나는 것일까. 기자를 포함한 어른 역시, 나이 불문하고 미성숙한 면모가 틀림없이 존재한다. 지금도 인터넷에는 진상으로 인한 가지각색의 푸념이 넘쳐난다. 그러나 하필 수많은 경우를 제치고 ‘노키즈존’만 들어선 데에는 다른 경우의 수보다 어쩌면 미워하기 쉬운 아동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노키즈존이 아동 차별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합리적 이유를 배제하고 오직 나이를 이유로 아동을 배척하지 말 것을 권고하였다.
“이런 차별에 관한 인식이 어릴 때부터 키워질 수도 있겠죠. 이후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만들 수도 있게 됩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아이를 향한 곱지 못한 시선, 그리고 갈수록 늘어나는 노키즈존 매장이 어린이에게 끼칠 악영향을 걱정했다. 어른의 편의를 고려하여 생겨난 노키즈존이 오히려 사회가 발 벗고 나서 차별을 학습시키는 경로가 될 수도 있다.
어린이는 아직 미성숙한 존재다. 그런 만큼 일반인보다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 우리가 당연히 여기고 있는 일상 속 사소한 예절 하나까지 가르침이 필요하다. 아직 어리기에 충분히 개선 가능성이 있다. 아동기를 거친 아이는 어엿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리할 수 있게 된다.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어른과 아이 사이 경계선을 긋기보다는 어린이에게 조금 더 유한 시선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