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이 9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여왕, 부를 일이 없는 우리에겐 낯선 칭호다. 영국은 현재까지 왕실을 이어오는 국가 중 하나다. 왕실 일원을 하나하나 알 수 없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한 사람도 있다. 1981년 황태자와 결혼하고 1997년 비운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다이애나다. 영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다이애나의 헤어스타일, 옷, 손짓 하나까지 관심을 가질 정도로 그녀는 그 당시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다.
“결혼을 셋이서 했던 셈이니 많이 부대꼈죠.” 1995년 11월 ‘파노라마’라는 BBC 시사프로에서 다이애나가 한 말이다. 다이애나와 찰스가 결혼하는 순간에도 찰스와 불륜 관계를 이어오던 카밀라를 표현한 말이었다. 황태자의 불륜 사실이 2,300만 명이 보는 눈 앞에서 알려졌다. 결국 다이애나와 찰스는 이혼하게 된다. 이혼하고 1년 뒤에 사고로 그녀는 세상을 떠나고 ‘비운의 황태자 비’로 남는다.
지난해 그녀의 동생인 찰스 스펜서 백작은 다이애나 인터뷰에 거짓된 점을 폭로했다. 그는 BBC의 마틴 바시르가 거짓말과 위조된 은행 입출금 내역서 등을 내밀어 인터뷰를 주선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이애나 인터뷰 배경에 문제를 제기하고 BBC는 지난해 11월 퇴직한 대법관인 존 다이슨 경에게 독립 조사를 의뢰했다. 존 다이슨 경은 조사 보고서를 통해 스펜서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바시르가 부적절하게 행동했고 BBC의 편집 기준을 심각하게 위반했다.” 또 BBC가 20년 전 자체 조사에서 ‘잘못이 없다’는 결론에 “BBC의 보증 수표인 높은 도덕성과 투명성의 기준에 미달했다.”고 비판했다. BBC는 이를 받아들이고 공식 사과를 했다.
다이애나로 인해 취재 보도 윤리에 문제가 지적된 건 처음이 아니다. 다이애나 사후 약 1개월이 지나 영국의 ‘보도고충처리위원회’(PCC)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한층 더 보호하는 새로운 행동 지침안을 마련했다. 당시 보도고충처리위원회의 위원장인 웨이컴 경은 보도계가 자율적으로 정한 ‘보도윤리강령’(Code of Practice) 개정안을 발표했다. 주목할 사항은 ‘위법적인 수단이나 집요한 추적을 통해 촬영한 사진은 게재하지 않는다’이다. 파파라치의 집요한 촬영에 불편하고 불안한 생을 살았던 다이애나의 사례를 이해하고 충분한 논의 끝에 개정한 내용이다.
기사 한 줄과 방송에 몇 마디가 주는 파급력은 대단하다. 물론 읽히고 시청해야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게 기사고 방송이다. 눈에 띄지 않으면 비슷하면서 더 재미있는 가십에 묻히게 된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승자가 되는 게임 속 방송사는 더 자극적인 무기를 더한다. 다이애나를 따라다니던 파파라치, 다이애나 인터뷰를 위해 바시르는 강력한 무기를 얻기 위한 자신들만의 방법을 썼다. 그러나 그들은 다이애나를 고려하지 않았다. 25년 만에 사과한 BBC, 사과를 받아줄 사람이 없어 안타까움만 커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