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에 설립돼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 대학에는 15만 동문이라는 자랑스러운 동반자가 있다. 동문들은 모교를 마치 자신처럼 생각하며 희로애락을 우리 대학과 함께 나눈다. 여기, 1970년대부터 우리 대학과 인연을 맺어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이가 있다. 바로 서진항공여행사㈜ 이상규 대표다. 이번에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사회 보편적 가치에 대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근검절약, 겸손의 중요성에 대해 배우며 실천해 보자. / 대학부
어린 시절 이상규 대표는 우리 대학 인근인 월남동에서 성장했다. 그는 “우리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머니께서 하숙집을 운영하셨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많은 소통을 이어나가며 우리 대학과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라고 전했다. 이후 학생들의 등하굣길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우리 대학의 통학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모교와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하고자 노력한다.
- 애국심,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
“저희 아버지께서는 6·25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약하며 국가에 헌신한 분이십니다.” 이상규 대표는 먼저 아버지 이진순(李珍淳) 기자의 삶을 소개하며 ‘애국심’을 설명했다. 1950년 6·25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며 깊은 전쟁의 상처를 남겼다. 이진순 기자는 6·25전쟁의 참혹한 비극을 그대로 담아내는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현재 부산일보에 부산자유민보 편집국장을 역임했던 그가 남긴 ‘도라온 平壤(평양) 모습’, ‘戰跡巡訪記(전적순방기)’ 등 기사들이 게재돼 있다. 그 당시의 상황을 직접 느껴보며 이해하고 싶다면 부산일보 누리집(https://www.busan.com/)에 들어가 기사들을 확인 가능하니 참고해 보자. 전쟁으로 인해 후퇴하는 평양 시민들의 긴박한 상황 등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이진순 기자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학업에 정진해 일본 명치 전문 대학과 동경입정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교사로 재직하다 26세에 한국에 귀국해 기자 정신을 실현하는 삶을 살았다.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한 사람이 돼라.’ 언제나 좌우명을 떠올리며 항상 가난한 이들을 마주치면 외면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상규 대표는 “추운 겨울 길을 가다 추위에 떨고 있는 걸인을 만나면 아버지께서 그 자리에서 옷을 벗어 줬습니다. 자신은 내복 차림으로 오셔도 기분이 좋으셔서 밤중에 산타루치아를 부르셨습니다.”라며 아버지와의 일화를 전했다. 강자에게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과 약자에게 희생하는 인류애, 이는 이상규 대표가 고단한 삶 속에서 배웠던 사회봉사 정신이다.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남아 삶의 밑바탕이 돼 준다.
이상규 대표는 이진순 기자에 대해 전하며 그 당시 촬영한 사진 자료들을 보여줬다. 6·25 전쟁이라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자료는 온전히 보존돼 있었다. 사진에는 6·25 전쟁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이진순 기자의 굳건한 모습이 담겨있다. ‘함양의 지리산 공비 토벌대와 참전 기자들(1951년)’ 사진 자료도 이진순 기자의 업적 중 하나다.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은 6·25전쟁 당시 월북하지 못해 한국에 남아있던 지리산 지역의 공비를 토벌했던 군·경 합동작전이다. 1950년 9월, 국군과 유엔군의 총반격 작전이 이뤄졌다. 당시, 미처 후퇴하지 못한 수많은 북한군의 낙오부대·낙오병들이 발생했다. 대부분 국군과 유엔군의 포로가 됐지만, 일부는 각 지역 산악지대로 잠적해 후방에서 국군의 교란을 일으켰다. 이에 공비 토벌대와 기자들이 함께 참전해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 이러한 자료들은 이진순 기자가 실제로 국가에 공헌했음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됐다. 6·25 전쟁 당시 작성했던 기사 자료와 함께 국방부로부터 국가유공자로 인증받았다. 마침내 2021년 7월 28일 이진순 기자가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으며 애국정신의 귀감에 기여했음이 증명됐다. ‘병역 3대 명문가’ 이는 3대가 병역을 이수하면 인정받는 증명이다. 아버지 이진순 기자, 이상규 대표, 자녀인 이영길 서진항공 과장. 이렇게 국가에 병역의 의무를 다해 인증받았다. 이는 그만큼 대한민국에 대한 헌신 정신이 각별함을 나타낸다.
- 애향심, 지역에 헌신하는 마음
“아버지께서는 마산언론계에 종사하시며 언론을 비롯해 문화예술 분야에도 재능을 발휘하셨습니다.” 이진순 기자는 부산자유민보 편집국장 이후 마산에 정착해 애향심을 분휘했다. 마산에서 서울신문, 국제신문 지국장을 지내며 1950~1970년대 마산의 암울했던 산업화 시대를 담아냈다. 1955년에는 마산 문화 협의회가 창립됐다. 언론 분과 위원장 및 마산 언론인 협의회장을 역임했으며, 뛰어난 예술 능력을 바탕으로 마산 동서화랑에서 소묘전을 전시하기도 했다. 저술 및 작품으로 1970년 『오늘의 마산』이 발간됐다. 『오늘의 마산』은 마산의 시대적 상황과 각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는 귀중한 역사 자료다. 지역 사랑정신을 기리고자 이진순 기자는 『경상남도사』, 『마산시사』에도 실렸다.
오하룡 시인의 『몽상과 현실 사이』 제3부 ‘전설예약’, 『김무신 그 불꽃 같은 삶』 ‘제5편 야망의 계절’의 ‘깡통골목안 3점 주점’에 이진순 기자가 표현돼 있다. 이상규 대표는 “저희 아버지 이진순 기자, 송인식 동서화랑 관장, 이선관 시인은 서로 각별한 사이였습니다.”라며 그들의 우정을 전했다. 때로는 흥겨움에 취하며, 때로는 ‘역사를 기록하는 심판관’으로서 삶을 살아왔다. 그에게서 불의에 맞서는 투쟁 정신과 낭만을 배운다.
- 애교심, 학교에 공헌하는 마음
“대학 동문들이 서로 화합심으로 합쳐져 우리 대학의 미래를 위해 힘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상규 대표는 대학의 발전을 위해 동문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총동창회에서 열정적인 활동과 장학위원으로도 활약하며 정기 후원금 및 장학금을 지속적으로 출원하고 있다. 이는 학생들이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학업에 정진했으면 하는 애교심에서 비롯됐다. 이상규 대표는 “앞으로 죽는 날까지 후원을 이어나가며 어렵거나 힘든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이바지됐으면 바랍니다.”라며 소망을 전했다. “저희 아들인 이영길 과장도 군사학과, 관광학부를 졸업한 우리 대학 동문입니다. 저와 함께 모교를 위해 정주해 줄 것이라 믿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학생들이 한마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졸업 후 각자의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 애교심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사회봉사를 실천하기 위해 절약 정신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근검절약. 사치를 부리지 않고 언제나 겸손한 마음가짐을 가진다. 이는 어머니께 배운 근면 성실함과 관련 있다. 인터뷰 마지막으로 이상규 대표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 다른 어려운 이들에게 베푸는 희생정신이 필요합니다. 이에 저희 자녀들도 기부를 통해 사회에 헌신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