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월 1일 서울 시청역 교차로에서 차량이 인도에 있는 시민들을 덮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오후 9시 27분경 시청역 인근 호텔에서 빠져나온 차량이 일방통행 도로를 역주행해 인도의 시민들을 덮쳤다. 이후 차량 2대를 추가로 들이받고 가해 차량은 멈춰 섰다. 이 사고로 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운전자와 동승자를 포함한 7명의 부상자도 나왔다. 사망자 중 6명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3명은 이송 및 응급조치 중 사망했다. / 사회부
사고 직후 가해 운전자는 사고의 원인으로 차량 ‘급발진’을 주장했다. 급발진은 차량이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은 급가속을 일으키는 현상을 의미한다. 경찰은 현장에서 음주 측정과 마약 간이 검사를 진행했으나 음주와 마약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확한 사고 조사를 위해 현장에서 사고 차량과 블랙박스, EDR(사고기록장치) 등을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정밀 감식을 의뢰했다.
# 사건의 진실
가해자인 차모 씨는 사고 직후부터 일관적으로 사고 원인이 급발진이라 주장하고 있다. 차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00% 급발진”이라며 “브레이크 페달을 계속 밟았으나 차량이 말을 듣지 않는다.”라고 했다. 더불어 호텔에서 나올 때부터 차가 평소보다 이상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운전 경력 40여 년의 현직 시내버스 기사라고 말하며 ‘베테랑 운전사’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8월 1일 경찰은 수사 내용을 종합해 브리핑을 진행했다. 경찰 조사에서 차 씨는 브레이크 페달을 강하게 밟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과수의 EDR 분석 결과 사고 발생 전부터 발생 시점까지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주변 CCTV와 차량 블랙박스에도 차량 브레이크등이 들어온 모습이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 가속 페달을 밟은 흔적은 발견됐다. 가속 페달의 변위량이 99%에서 0%로 차 씨가 밟았다 뗐다는 것이 밝혀졌다. 순간적으로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뗀 두 차례를 제외하면 사고 시점까지 흔히 말하는 ‘풀액셀’ 상태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수거된 차 씨의 오른쪽 신발 밑창에서 가속 페달과 같은 모양의 문양이 발견된 점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경찰은 사고 원인을 급발진이 아닌 차 씨의 운전 조작 미숙으로 결론 내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 급발진은 실재하는 것인가
흔히 급발진의 존재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차량 결함으로 인한 사고 사례를 꼽는다. 2007년 미국에서 도요타 차량이 고속도로에서 급발진해 장벽을 들이받아 운전자가 다치고 동승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는 운전자와 도요타 사이에 소송으로 번졌다. 하지만 운전자와 도요타가 합의해 사건은 마무리됐다. 이후 도요타는 벌금 12억 달러를 내고, 1,200만 대의 차량을 리콜했다. 이를 급발진을 인정한 사례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내막은 다르다.
해당 사건은 차량 자체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으로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 피해자 측을 돕는 업체에서 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은 급발진 원인이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결함 때문일 수 있다는 인위적 조건으로 시행됐다. 그 결과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결함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증명됐다. 하지만 이 결과는 ‘차량 결함 때문에 발생한 급발진일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달리 말해 사고의 직접 원인이 증명된 건 아니다. 이런 가능성이 나오자 재판에서 불리해진 도요타는 합의를 하고 리콜을 진행했다. 도요타 측은 합의하면서도 차량 자체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이 공식 인정된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이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총 592건의 급발진 주장 사고가 접수됐다. 이중 차량 결함으로 인한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관련한 판례 역시 전무하다. 국내에서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상황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증명된 적이 없다. 그러나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는 최근 공개된 영상을 통해 알 수 있다.
2023년 이태원에서 차량이 담벼락에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자는 사고 원인으로 급발진을 주장했다. 조사 과정에서 페달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니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7번이나 밟는 장면이 나왔다. 담벼락에 충돌 직전까지 계속해서 페달을 밟았고 브레이크 페달은 단 한 번도 밟지 않았다. 그러나 운전자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고 착각하고서 급발진을 주장한 것이다. 이렇듯 급발진 주장 사고가 운전자의 페달 조작 실수라고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사고 직전 당황한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 페달로 착각해 밟아 벌어지는 사고라는 것이다. 즉 급발진 주장 사고들도 결국 운전자의 조작 실수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 급발진과 고령운전자 간의 상관관계
급발진 추정 사고를 조사해 연령별 통계를 낸 한 연구에 따르면 50대 이상이 63%를 차지한다. 50대 이상의 운전면허 소지자는 전체의 약 42%밖에 되지 않는 것에 비하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를 보면 고령의 운전자가 급발진 사고를 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통사고 전체 통계를 살펴봐도 50대 이상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는 65세 이상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65세 이상 면허 소지자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6,300명 중 1명인 것에 반해 운전면허를 가장 많이 가진 나이대인 40대에서는 21,000명 중 1명꼴로 나타난다. 즉 인지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고령 운전자일수록 교통사고를 많이 낸다는 것이다.
해당 통계는 고령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많이 내고, 또 그들이 사고원인으로 급발진을 주장하는 빈도가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시청역 사고를 낸 차모 씨는 68세이다. 또 해당 사건이 발생한 일주일 동안 급발진 주장 사고가 두 건 더 있었는데 이들의 나이는 각각 70세와 80대로 밝혀졌다. 고령 운전자에 대한 조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미 해외에선 고령 운전자에 대해 여러 제도가 시행중이다. 일본의 경우 75세 이상 운전자는 자동 브레이크 기능이 설치돼 있는 ‘서포트카’만 운전할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도 특정 나이가 지나면 일정 주기로 면허를 갱신하거나 적성검사를 받도록 법이 제정돼 있다.
2024년 7월 10일 기준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가 1,000만 명이 넘었다. 전체 인구의 20%에 조금 못 미치는 수치이다. 대한민국은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2020년에 368만 명이던 고령 운전자 수가 3년 만에 100만 명이 늘어 474만 명으로 나타났다. 이 추세로는 2040년에는 1,3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기에 시청역 사고처럼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사고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조처가 필요해 보인다. 이는 보행자뿐만 아닌 운전자 자신을 보호하는 역할도 할 것이다. 고령 운전자에 대한 논의는 단순 ‘세대 간 갈등 조장’이나 ‘갈라치기’가 아닌 현상을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하루빨리 고령 운전자에 대한 건실한 논의가 진행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