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부문 당선: 이지현(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3)
겁을 노랗게 물들여요!
분명히 눈을 뜬 거 같은데, 왜 어둡지? 나는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저기요?”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어쩌다가 이곳에 오게 된 거지? 꿈인가, 볼을 세게 꼬집었다. 그렇게 아프지 않은 걸 보니 꿈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이번에는 다른 색 양을 떠올렸다. 응? 양은 잠들 때 세지 않나? 나는 이미 자고 있잖아! 서둘러 다른 수단을 찾아야 했다. 이런, 빠르게 잠드는 방법은 알고 있었지만, 꿈에서 헤어 나오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나를 깨울 수 있을까. 배를 세게 꼬집어 보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보고, 혀를 세게 콱! 물어도 보았다. 젠장,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이진석! 일어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큰일이다. 꿈속에 갇혔다. 어떡하지, 나는 평소에도 겁이 많은 편에 속했다. 통조림 뚜껑을 열 때도 엄마의 도움은 필수, 작은 벌레 하나 맨손으로 못 잡고, 종이에 베이면 덩어리째 연고를 바른다. 그런데 지금, 어둠 가득한 이곳에 나 혼자라니!
“너 혼자 아니야.”
“누구야!”
깜짝 놀라 두 손 모두 주먹을 쥐었다. 태권도 빨간 띠의 매운맛을 여기서 선보일 줄이야. 나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내렸다. 눈을 찡그리면서 보니 옅은 갈색 털이 자란 곰이 내 바지를 잡고 있었다.
“너 뭐야!”
“몰라, 눈을 뜨니까 나도 여기 있었어.”
곰이 말하다니, 놀랄 것도 아니었다. 여기는 내 꿈속이니까. 곰은 내 쪽으로 더욱 가까이 붙었다. 쳇, 너도 무섭구나, 수상한 곰이었지만 굳이 뿌리치진 않았다. 누군가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이 됐으니까.
“근데 여기 너무 어둡지 않아?”
“어쩔 수 없잖아. 우리에겐 불도, 빛도 없는 걸.”
“네가 상상하면 되지.”
내가 어떻게. 그렇지! 여기는 내 꿈속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그래서 내 꿈속도 어두웠구나. 서둘러 나는 밝은 머리와 기다란 몸을 가진 전봇대를 상상했다. 그러자 연기가 자욱해지더니 뿅!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머리에 떨어졌다. 손으로 바닥을 더듬으니 웬 얇고 매끈한 게 잡혔다. 머리는 동그랗고, 몸은 이쑤시개 같은, 콩나물?
“왜 콩나물이 나온 거지?”
“네가 잘못 떠올린 거 아냐?”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내 머릿속은 온통 빛으로 가득 찼었다. 꿈도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없다니,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있긴 한 걸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런 자책을 할 시간이 없었다. 어둠은 너무 무서웠다. 다리에 붙은 곰은 무서운 괴물이 나타났을 때 나를 지켜주지 못할 게 분명했다. 오히려 내가 곰을 지켜주어야 했다. 이러다가는 모두 괴물의 먹이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럼, 이번에는 불을 떠올려 볼게.”
“제대로 해봐.”
뜨거운 열기가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순간, 또다시 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무언가 손에 뿅! 하고 떨어졌다.
“상자인 거 같은데?”
손바닥만 한 상자였다. 눈에 가까이 가져다 대어 적힌 글씨를 읽어보니,
“성냥이네.”
상자 안에는 성냥 한 개비가 들어 있었다. 불은 포기해야 했다. 가스레인지 사용도 못 하는 내가 어떻게 성냥을 쓴단 말인가.
“빨리 켜자. 무서워.”
재촉하는 곰이 야속했다.
“나 성냥으로 불 못 붙여.”
늘 내뱉던 말이라 부끄러움을 느끼지도 않았다. 익숙했다.
“해보기는 했어?”
곰이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그럴 거면 자기가 할 것이지.
“그렇게 잘났으면 네가 해보지 그래?”
“나는 복슬복슬한 털이라서 타버리고 말 걸.”
핑계도 좋았다. 곰을 진짜로 시킬 생각은 아니었다. 사실 조금은 했지만, 곰이 타버리면 혼자 남게 되는 나는 어쩌나. 어둠 속 혼자인 것보다 둘이 있는 게 나았다.
“그 그럼, 괴물 소리가 들리면 성냥 사용하는 걸로 하자.”
나는 성냥 상자를 주머니에 넣었다. 이내 곰이 주머니에 손을 넣어 성냥을 도로 꺼냈다.
“소리가 나기도 전에 우리를 잡아먹을 걸?”
곰은 이번에도 단호하게 말했다. 일리가 있었다. 괴물은 우리가 본인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슬금슬금 왔다가 금방 우리를 먹어버리고 말 것이다. 잡아먹힐 것이냐, 성냥으로 불을 피울 것이냐, 인생 최대 고민이었다.
“잡아먹히면 나는 꿈에서 깨지 않을까?”
“누가 그래? 괴물 뱃속에서도 꿈이 계속 이어질 수도 있잖아.”
누가 곰을 만든 건지, 너무나도 똑똑했다. 나는 이렇게 똑똑할 수가 없는데, 지금 이 꿈이 내 것이 맞나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너 지금 불 안 붙이면 나는 떠날 거야.”
여태 바지를 잡고 있던 곰이 손을 놓으며 말했다. 떠난다고? 생각하기 싫은 세 가지 상황 중 하나가 곧 현실이 될 수 있다니, 어떻게라도 곰을 잡고 싶었다. 그렇다면 성냥을 사용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하지만 정말 못하겠단 말이야.”
“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상상은 해봤는 걸.”
안다.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나는 그저 가만히 서서 성냥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도와줄게. 해보자.”
곰이 상자에서 성냥 한 개비를 꺼냈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내가 상자를 들고 있을게. 너는 이 성냥으로 상자 옆면을 긁어.”
“그러다 내가 다치면? 네가 타버리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지 마. 네가 다치지 않고, 내가 타지 않을 수 있는 거잖아.”
하는 말마다 옳은 말하는 곰이 꼴 보기 싫었다. 성냥이 점점 땀으로 축축해졌다. 빨간 심까지 축축해진다면, 더는 불은 피우지 못했다. 식은땀이 흘렀다.
“에이, 모르겠다!”
언젠가 심부름으로 카드를 긁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를 기억하며 성냥을 긁었다. 거친 소리가 나더니 손이 뜨거웠다. 그런데 왠지 마음도 뜨거워졌다.
“내가 해냈네!”
손보다 작은 성냥이 주변이 환하게 만들었다. 해가 뜬 것만 같았다. 이제야 곰 얼굴이 뚜렷이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앞으로는 작은 웅덩이가 보였다. 그리고 웅덩이 중앙에는 해로 오해할 뻔한 밝고 노란 문이 있었다. 그때, 직감했다. 저 문을 열고 나가야만 꿈을 깰 수 있다는 걸.
우선, 문으로 가는 방법을 최대한 많이 떠올려 보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웅덩이를 들어가지 않고 문으로 가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모든 방법이든 웅덩이를 거쳐 가야만 했다. 그럼, 웅덩이 깊이를 아는 게 중요했다.
“길고 딱딱한 나무막대기!”
위에서 떨어진 기다란 나무막대기가 땅에 푹, 하고 박혔다. 곧바로 나무막대기를 빼내어 웅덩이 주위로 갔다. 막상 가까이 다가가자, 웅덩이는 나를 집어삼킬 듯이 깊어 보였다.
“곰아, 네가 해볼래?”
나는 나무막대기를 곰에게 건넸다.
“나는 젖어버리고 말 걸.”
곰은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뭘까, 싶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해야 했다. 그러나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꿈에 남아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온갖 잔꾀를 부려보았다.
“비켜 봐.”
나는 최대한 웅덩이에서 멀리 나아갔다. 이내 빠르게 달려가 나무막대기를 냅다 멀리 던졌다.
- 풍덩.
나무막대기는 웅덩이 바닥에 꽂히기는커녕 수면 위를 둥둥 떠다녔다. 망연자실이었다. 나는 다시 나무막대기를 떠올렸다. 하지만 새로운 나무막대기는 떨어지지 않았다.
“똑같은 건 안 되나 봐.”
그럼, 나뭇가지를 떠올렸다.
“비슷한 것도 안 되나 봐.”
곰 자식, 옆에서 말만 잘했다.
“이제 어떡하지?”
“네가 직접 건너가면 되잖아.”
내가 어떻게. 얼마나 깊은지 모르는 웅덩이에 들어가라고? 이번은 정말 무리였다. 나는 자리에 주저 앉았다.
“겁쟁이.”
맞다. 이제는 익숙한 말이라 상처를 받지도 않았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래, 나 겁쟁이다! 그런 나한테 도대체 무얼 바라는 거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약한 모습이라도 우는 모습은 보여주기 싫었는데, 실패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무언가 와르르, 떨어졌다. 통조림 뚜껑, 초파리, 날카로운 종이, 으아아악! 모두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이었다. 헐레벌떡 곰 뒤로 숨었다.
“떠올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된 거지?”
“두려운 감정이 드니까 무의식에 네가 떠올린 거겠지.”
곰은 여전히 단호했다. 그러더니 뒤돌아 나를 올려다보고는,
“이 말을 하면 나는 네 꿈속에서 사라지게 돼. 그래서 말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는 말해야겠어.”
곰이 더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코만 훌쩍거리며 곰의 말을 들었다. 곰이 사라진다니, 너무 무서웠다. 주변에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뿐이었다.
“꿈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너보다 약한 것들이야. 콩나물도, 성냥도, 그리고 저것들도. 네가 이들보다 강하다는 걸 깨닫지 못하면 꿈에서 깨어나지 못할 거야.”
말을 잇던 곰의 몸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너 왜 그래?”
“꿈에서 탈출하고 싶으면 내 말 명심해야 해.”
곰은 거의 투명해졌다.
“겁쟁이가 성냥으로 불붙이는 거 봤어?”
그리고 사라졌다. 마지막 곰의 말투는 어느 때보다 따스했다.
“약한 것들?”
나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내 곰곰이 떠올렸다. 뿅, 하고 머리 위로 떨어진 건 고무장갑이었다. 분홍빛 고무장갑을 손에 끼니 꼭 용감한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신이 났다. 발 앞에 놓인 통조림 뚜껑, 초파리, 날카로운 종이를 하나씩 치우며 웅덩이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양을 세는 것처럼 수를 세기도 했다. 어느새 웅덩이에 다다랐다. 너무 깊어 보였다. 다시금 두려운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냐, 성냥으로 불붙이는 건 겁쟁이가 아니지!”
뿅! 나는 양팔을 귀에 갖다 댔다. 튜브가 머리, 가슴을 통과해 배에 톡, 하고 끼어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튜브를 꽉, 잡고
“점프!”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까치발을 드니 웅덩이 바닥에 발이 닿았다. 물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나는 손으로 헤엄치며 문을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문은 더욱 밝아 보였다. 손잡이를 잡았다.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었다.
“어머! 진석이 오줌 싼 거야?”
엄마 목소리에 눈을 떴다. 커튼을 쳤는지, 방이 환했다. 나는 따뜻해진 바지를 만졌다. 물에 젖어 축축했다. 이불도 노랗게 축축해져 있었다.
“아니거든요! 웅덩이를 건너오느라 바지가 젖은 거거든요!”
손에는 애착 인형인 곰 인형 “토미”가 쥐어져 있었다.
제5회 3·15청년문학상 동화 부문 심사평
제5회 3‧15청년문학상 동화 부문은 예년보다 응모작이 줄어 아쉬웠다. 그 가운데 심사자가 주목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오빠의 반딧불」은 5·18을 아이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품이었다. 반딧불이와 오빠를 연결하면서 현대사의 비극이 어떻게 동화작가가 되고 싶었던 청년의 미래를 뒤바꾸는지 잘 보여준다. 그러나 주제의식이 너무 강하다 보니 진술이 앞서고 어느 순간, 동화는 아이의 시선을 벗어나 후일담 형식의 소설이 되어버렸다. 「그림자가 쑥!」은 그림자가 자란다는 설정은 매우 흥미롭지만, 그림자와 주인공의 내면에 대한 연결고리가 약했다. 「비밀 채집」은 제목만큼이나 독특한 분위기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너무 잦은 시공간의 이동이 오히려 몰입을 방해했다. 단편에서는 한 호흡으로 장면과 장면을 치밀하게 끌고 가는 근성도 필요한 법이다. 「겁을 노랗게 물들여요!」는 꿈속에 갇힌 주인공이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꿈을 벗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꿈과 판타지는 너무 가까운 동화적 장치지만 투고자는 영리하게도 역발상을 통해 꿈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발명한다. 긴장감 있게 전개되는 서사 속에 겁을 이겨내고자 하는 주인공의 고투를 순진하면서도 능청스럽게 담아낸 작품이다. 이에 「겁을 노랗게 물들여요!」를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휘민(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