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초면 한가위 추석이다. 곧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될 것이다. 연어의 모천회귀 같은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다. 나는 그것이 한민족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어디든 ‘역류’는 있다. 부모가 자식을 찾아가는 ‘역귀성’이 있다. 한가위 황금 휴가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즐기는 가족으로 공항마다 붐빈다. ‘결혼 안 하니’, ‘취업했니’ 이런 잔소리가 듣기 싫어 명절에 집으로 가지 않는 ‘비혼녀’ 그룹 또한 많고, ‘혼밥’ 한 그릇 하고 고시촌을 떠나지 않는 뜨거운 청춘들이 많다.
큰 강물로 흘러가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역류가 곳곳에 생겨있다. 그 역류로 빠져 들어가면 누구에게든 고향이 낯설어 지는 법이다. 이문열의 소설집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가 있다.
요즘에 생각해보면 이문열은 우리 모두가 결국 고향을 잃어버릴 것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작가의 이 ‘예언’은 아주 ‘비극적’이다. 작품이 아니라 우리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재일동포 작가 중에 유미리(1968~ )가 있다. 요코하마 공고를 중퇴하고 그녀의 나이 29살인, 1997년 제116회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1910년에 첫 수상자를 낸 이 상은 역사가 100년이 넘은 신인작가의 등용문이다. 유미리는 붕괴되는 재일동포 가족의 실상을 아프게 그렸다.
우연히 같은 출판사에서 그녀의 한국판 소설집 『풀 하우스』와 내 시집이 비슷한 시기에 나와 구해 읽었다. 신문기자 시절 유미리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 팩트 말고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풀 하우스는 영어로 쓰면 ‘Full House’다. ‘집이 가득 찼다’는 말이다. 포커 게임을 아는 이는 풀 하우스는 ‘포 카드’ 다음의 높은 확률이라는 것을 안다. 포커게임은 확률이다. ‘투 페어’, 각각 두 쌍의 가족이 있다, 이들이 모여 풀 하우스, 집을 가득 채우는 게임의 확률은 ‘7%’다.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한 아버지가 있다. 아내와 두 딸이 있다. 아버지는 집을 짓는다. 갑자기 예고 없이 열심히 집을 짓는다. 아내와 두 딸은 시큰둥하다. 아버지를 열심히 설득하지만 새집에 가족이 다 모여 살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아버지는 의외의 반전을 내놓는다. 아버지는 집을 거지 가족에게 줘버린다. 그리고 ‘풀 하우스’라고 중얼거린다. 포커게임에 따르면, 아버지는 어머니와 원 페어, 딸과 딸이 원 페어, 이 투 페어 가족을 자신이 만든 집에 모여 살게 하는 풀 하우스를 꿈꾸었다.
정신적 가족 공동체가 멀어지는 것에 대해 아버지는 안타까웠지만, 깨어진 가족은 합쳐지지 못했다. 한가위를 맞이하며 많은 부모들이 ‘풀 하우스’를 기대할 것이다. 한가위 절사(節祀)에 조상께 정성을 다한 자리 모두 모여 절하고 음식을 나누는 일이 어찌 큰 기쁨이 아니겠는가.
나는 일찍 진해 집을 떠나며 조상까지 모시고 서울, 부산, 울산으로 떠돌았다. 그 긴 시절 어머니가 내게 오셔 명절 상과 기제사 상을 차렸다. 어머니 아프셔 진해로 돌아가시며 조상까지 모셔 가셨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진해 어머니에게로 간다. 그때마다 풀 하우스다.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신다.
한가위에 달이 왜 둥근가. 가족이 모여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풀 하우스!
시인,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