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선배. 간혹 지나온 여름에 ‘여름은 위대하였다.’는 수사를 사용한 적이 있었지요. 지난여름은, 아니 지금 역시 진행 중인 여름은 ‘지독하다’는 말로 기록될 것입니다. 여름은 가을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싫은 모양인지 마지막 저항 중입니다. 2018년, 무술년 이 여름을 견딘 자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지독한 여름을.
지독하였기에 우리는 지구의 환경을 다시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는 이미 우려 이상으로 진화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부정할 수 없는 아열대 기후입니다. 여름에 가끔 쏟아지던 게릴라성 소나기를 보고 있노라면 열대지방에서 만난 스콜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황순원 선생의 소설 ‘소나기’ 같은 소설은 이제 우리 문단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배경의 소나기가 이 땅에서 사라졌으니까요.
이번 여름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남북극해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는 현상입니다. 빙하가 녹아 버리면 바다에 가까운 대부분의 도시들이 물에 잠기게 된다고 합니다. 새로운 인류 이동이 새로운 ‘노마드’를 만들어 내며 지구는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또한 지표가 낮은 지역의 곡창지대가 물에 잠기면 식량 위기가 올 것입니다. 올여름의 경고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K선배. 그런 위기 가운데 저는 우리 캠퍼스의 메타세쿼이아 숲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가끔 그 숲에서 책을 읽는 학생을 볼 때마다 한참이나 흐뭇하게 바라보다 가곤합니다. 올여름도 그 숲 그늘에서 자기의 시간을 보낸 학우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숲 하나가 가진 힘이 참으로 큰 것입니다. 저는 메타세쿼이아 숲을 ‘지혜의 숲’이나 ‘사색의 숲’으로 이름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숲을 만들고, 숲이 사람을 만드니까요.
그곳에 숲을 만드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학우들이 숲과 공존하는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합니다. 인문학 특강을 강의실에 가두지 말고 숲속에서 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나무와 대화하고 생각하고 인생의 길을 찾는 방법론은 사회에 나가서도 유효한 평생교육일 것입니다. 자연과의 대화 역시 좋은 인문학이지 않겠습니까.
K선배. 이번 후기 졸업식에 572명의 학부 졸업생이 배출됩니다. 대학 졸업반 때 유난히 더운 여름을 이기고 사회로 진출하는 졸업생들은 새로운 통과의례를 거쳤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올여름일 것입니다. 신은 사람에게 고통을 줄 때 선물도 함께 준다고 들었습니다. 572명 자랑스런 졸업생들은 무언가 선물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극기며 도전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K선배. 아울러 선배의 명예로운 퇴직을 축하드립니다. 마지막 제자들과 교문을 나서는 선배께도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조교 선생님과 학생으로 만나, 다시 월영캠퍼스에서 만나 시간을 보내며 학창시절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독한 여름이지만, 자신의 시간을 성실하게 다 채워 월영캠퍼스를 떠나는 모두를 나는 ‘위대한 승리자’라 부릅니다.
시인·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