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영지] 네 번째 겨울
[월영지] 네 번째 겨울
  • 원지현 기자
  • 승인 2024.03.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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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지나갔다. 패딩 속에 핫팩을 끼워 넣고 몸을 싸맬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차가운 자취방의 방바닥을 피해서 전기장판 위에서 모든 일상을 보내는 루틴에서도 한동안 벗어나게 될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겨울이 찾아온다는 것에 기뻐하기보다는 지나갔다는 것에 안도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네 번째 겨울을 보낸 자취방에서 계절에 대한 감각을 새삼스럽게 되짚어 본다.

  사실 난 겨울을 좋아했다. 눈 내리는 풍경을 볼 일이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지역에서 평생을 자라서인지, 소복이 눈이 쌓이는 겨울이 마냥 아름답다고 여겼다. 추운 날씨를 뚫고 돌아온 집에서 이불을 덮고 귤을 까먹던 기억 역시 소소한 행복이었다. 그러나 이런 감각은 자취를 시작한 이후 얼마 못 가 뒤집혔다. 신기할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자취를 한다는 것은 겨울의 혹독함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니까. 그렇지 않은 자취생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와 내 룸메이트는 그랬다.

  집에서도 입김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자취방에서 처음 알았다. 딱히 뜨거운 차나 커피 같은 것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입에서 김이 피어나오는 광경을 목격한 순간은 말 그대로 경악스러웠다. 보일러를 틀고 나니 집안은 적당히 따뜻해졌고 입김도 잦아들었지만, 훈훈한 기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입김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매번 10만 원이 넘는 난방비가 적힌 청구서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일주일 중에서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추운 날에만, 그것도 몇 시간씩만 보일러를 틀었음에도 청구 액수는 비슷했다. 자취생들이 으레 그렇듯 인터넷에서 난방비 아끼는 노하우 같은 것들을 찾아 시도해봤지만 크게 다른 결과가 나오진 않았다. 자연스럽게 쿠팡을 켜서 전기장판 목록을 둘러봤다. 물론 전기세가 최대한 적게 나오는 모델을 위주로 찾았다.

  본가에 살던 시절, 자취하는 친구들의 입에서 흔히 나오는 ‘가스비가 너무 비싸다.’, ‘심야 전기 쓰는 집은 절대 계약하지 마라.’ 같은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스비 청구서를 받는 사람은 늘 부모님이었기 때문이다. 좋아했던 겨울의 표상들, 눈 내리는 창밖 풍경과 이불 속에서 까먹던 달큰한 감귤 맛은 일종의 외주화의 산물이었다. 외주화가 끝나고 받은 대가는 차가웠다. 마음도 차갑고 당장 손발도 시렸다.

  고통에서 굳이 교훈적인 의미를 뽑아 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취방에서 네 번째 겨울을 보내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가에서 생각 없이 보일러 틀던 것에 대한 반성부터 계절에 대한 뒤집힌 감각 같은 온갖 잡념을 정리하고자 시작한 글이라, 사실 쓰고 나서도 특별히 긍정적 의미는 없다고 여길 것이다. 다만 언젠가 본가에 돌아와 살든, 졸업 후 다른 자취방을 찾게 되든, 반복하게 될 겨울나기를 위한 약간의 점검 정도는 되리라 생각한다. 올해 겨울 난방 버튼을 누를 땐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전과 같은 이유는 아니겠지만, 다시 겨울을 기다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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