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나의 연구, 나의 교육] 동아시아라는 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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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출판원
  • 승인 2024.03.0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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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북쪽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 지대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은 북한에 의해 단절되어 있지만, 적어도 1945년 8월까지는 우리 한민족이 육로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왔다갔다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910년 일본의 강점을 전후해서는 많은 뜻있는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었다. 또 어떤 이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국경을 넘었다. 러시아의 연해주로 간 사람들도 있고, 우리에게 흔히 만주(滿洲)로 알려져 있는 중국의 동북 지방으로 간 사람들도 있다.

  특히 만주 지역은 일찍이 민족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어 일본의 패전 때까지도 항일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만주 동부의 러시아 접경지대는 우리가 흔히 간도(間島)라 부르는 곳으로 한민족의 생활터전이 되었던 중요한 지역이다. 간도의 조선인 중심지인 용정(龍井)에서는 윤동주와 같은 우리 민족의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현재 이 간도 지역은 ‘연변(延邊)’이라는 중국식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잘 알려져 있듯이 조선족 동포의 집주지이기도 하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 일대를 점령한 일본은 그 이듬해인 1932년 위성국가로 ‘만주국’을 건국하였다. 만주국의 실질적 지배자인 일본 관동군은 ‘오족협화’를 기치로 만주국을 다민족국가로 구성하려 하였다. 이 오족(五族)은 일본·조선·만주·한(漢)·몽골의 5개 민족을 가리키는 것으로 조선인이 만주국의 주요 국민의 하나임을 명시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식민지 조선에서 민족차별로 인해 생활기회를 얻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만주국으로 건너갔다.

  한국 근대 문학과 사상의 초석을 놓은 육당 최남선을 비롯해, 지금도 많은 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 문학사의 거인들인 염상섭과 서정주,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와 ‘선구자’로 유명한 작곡가 조두남 등 현재에도 문화예술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인물들이 만주국에서 활동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물로,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국의 군대인 ‘만주국군’의 장교 출신이었다. 또 최규하 전 대통령도 만주국의 관료양성기관인 ‘대동학원’ 출신으로 만주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한 바 있었다.

  만주라는 지역은 지금 대한민국의 영토가 아닌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라는 이유로 한국인들의 심상지리에서는 매우 먼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만주는 고구려의 영토였고 또 항일독립운동의 활동무대였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와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지역이다. 게다가 지식문화계와 정치계의 주요 인물들을 배출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공간을 인식하는 범위가 휴전선 이남으로 갇혀 버린 것은 한국사의 오랜 역사적 시간에 있어 불과 7·80년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해방 이전의 한국인들은 만주는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 등 동아시아를 횡단하여 활동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중국이 글로벌 세계의 주요 행위자로 적극적으로 등장한 이상,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920·30년대 한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동아시아적 시야를 갖고, 이를 더욱 확장시키는 일이다.

조정우(역사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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