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콘텐츠 수출의 70%를 차지하는 산업”, “10명 중 7명이 즐기는 콘텐츠”, 이는 게임을 수식하는 요소들이다. “오락실에 가면 돈 뺏긴다.”, “머리 나빠진다.” 같은 말로 과거에 대변되던 게임은 더 이상 편견의 온상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의 한 형태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성이 모두를, 특히 여성까지 포괄하는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게임업계의 여성 개발자 부당 해고 사건을 접하다 보면 더욱 그렇다.
지난 23일, 게임사 넥슨의 게임 홍보 애니메이션이 공개됐다. 그런데 일부 남성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해당 영상 속 캐릭터의 동작이 페미니즘과 남성 혐오를 의미하는 ‘집게 손’이라며 반발했다. 손 모양이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를 비하하는 뜻을 담고 있다는 주장이다. 집단 항의가 이어지자 넥슨은 26일 자정 무렵 공식 유튜브 채널에 사과문을 올리며 영상을 비공개로 바꿨다.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스튜디오 뿌리 역시 입장문을 통해 영상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를 앞으로의 작업에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28일 오전 넥슨 본사 앞에서는 한국여성민우회와 양대 노총을 비롯한 여성·노동·인권 단체들이 게임사의 조치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0.1초 만에 지나간 자연스러운 손의 움직임을 남성 혐오의 증거라고 우기는 주장이 통한다면 누가 이 혐오 몰이에서 벗어날 수 있겠나.”라며 커뮤니티의 주장과 게임사의 대응을 비판했다. 같은 기자회견에서 정화인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사무장은 “여성 창작자에게 페미니즘 사상 검증은 매년 일어나는 일이지만 정부나 기업 누구도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나서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게임업계 여성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사이버불링과 게임업계의 방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청년유니온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번 달 발표한 ‘게임업계 사이버불링, 직장 내 성희롱 및 성차별 실태 제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사이버불링·성희롱·성차별 등 노동권 침해 피해 제보자 중 88.7%가 여성이었다. 심지어 이러한 피해 발생에 기업이 전혀 조치하지 않은 사례는 제보 총수 중 절반에 달했다. 이러한 실질적 차별을 방기하던 게임사가 ‘남성혐오’라는 키워드에는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반응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방치의 지속은 더 심각한 폭력을 발생시킨다. 이번 논란에 관한 게임사의 무비판적인 사과문 발표 이후로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홍보 영상을 제작한 스튜디오 직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사진이 올라오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을 상대로 칼부림을 하겠다.’는 내용의 글이 흉기 사진과 함께 다수 게시되기도 했다. 혐오라는 명칭은 1프레임짜리 손가락 움직임에 대한 불쾌감이 이런 실체적인 위협을 두고 하는 것이다. 게임업계는 이러한 위협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