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첫눈 오는 날 마산 창동에서 만나자’
[정일근의 발밤발밤] ‘첫눈 오는 날 마산 창동에서 만나자’
  • 언론출판원
  • 승인 2023.11.0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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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눈 오는 날 마산 창동에서 만나자.’ 이런 약속이 눈이 귀하디귀한 따뜻한 마산에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가당찮은 이야기인가. 그런데 요즘 이 약속이 유효한 약속이 되고 있다. 우리 지역 ‘창동통합상가상인회’에서 11월과 12월 두 달 동안 ‘눈 내리는 창동거리’를 이름으로 ‘눈꽃축제’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눈이나마 창동서 눈을 만나는 것이 올해로 4년째다. 나는 이를 창동의 ‘겨울몽(夢)’이라 말한다.

  11월과 12월 매주 금, 토, 일마다 오후 6, 7, 8, 9시 정각마다 15분간 창동에서 인공 눈을 뿌려주는 행사다. 지난 주말, 처음 시작된 눈꽃축제에 나가 눈 내리는 창동거리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왔다. 필자는 창동 세대라 할 수 있다. 10대, 20대에 창동이 가장 번성했던 시절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낡고 낙후되어 가는 오늘의 창동이 우리 자화상 같아 아쉬운 것이다.

  인공눈이라 해서 스키장에 뿌려주는 성능 좋은 제설기가 뿜어내는 눈이 아니다. 창동에 서 있는 전봇대 아저씨가 눈을 닮은 비눗방울을 만들어 주는 수준이다. 그래도 학문당 앞이나, 복원한 시민극장 앞에서 허공에서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면 가슴이 뛴다. 어디 먼 북방이나 극동의 도시에서 눈을 맞는 상상으로 즐거워진다. 창동에 기차가 다녔던 옛날로 돌아가 북행 열차를 기다리는 겨울 나그네가 되어본다.

  나는 눈 내리는 풍경을 휴대전화기에 담아 친구들에게 보내며 ‘창동 첫눈’이라 소개하면 대부분 속고 만다. 11월에 우리 지역에 눈이 오리라고 믿는 동심이 남았다는 것은, 창동서 청춘의 시간을 같이 보낸 친구들도 창동에 눈이 내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기다림은 나이가 들어서도 유효한 꿈이다.

  반면 마산은 물론 우리나라 11월이 기온측정 이후 가장 더운 날씨를 기록하고 있으니 창동의 눈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겨울이 일어선다는 입동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반소매 입고 다니는 ‘무더운 11월’이 찾아왔다. 도대체 언제쯤 창동에 진짜 눈이 내려 우리가 환호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라면 그건 다 우리, 지구를 이런 지경으로 만든 사람의 죄다.

  ‘눈이 오는가 북쪽엔/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백무선 철길 우에/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화물차의 검은 지붕에//연달린 산과 산 사이/너를 남기고 온/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어쩌자고 잠을 깨어/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눈이 오는가 북쪽엔/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이용악의 시 ‘그리움’ 전문)

  눈은 커녕 ‘잉크병이 얼어드는’ 혹독한 추위를 경험해 보지 못한 남쪽 시인들에게 북방 정서의 시를 기대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다, 눈사람을 만들어 보지 않은 아이들이 어떻게 눈사람을 노래하겠는가. 첫눈 오는 날 약속의 설렘을 모르고 어찌 사랑을 하겠는가. 이용악의 ‘그리움’ 같은 시를 써줄 남쪽의 젊은 시인이 태어나길 기다리는 일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지구 열대화’의 기후 위기가 결국 문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석좌교수, 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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