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가족 구성권을 위한 생활동반자법
다양한 가족 구성권을 위한 생활동반자법
  • 원지현 기자
  • 승인 2023.05.24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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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동반자법의 내용과 역사, 이를 둘러싼 논쟁들
생활동반자법 발의 기자 회견
생활동반자법 발의 기자 회견

  사람들에게 가족의 상을 물어보면 보통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결혼·혈연관계의 가정 모습을 그리는 답변이 주를 이룬다. 이는 우리 사회를 이루던 전통적인 가족의 표상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전형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동성 커플은 물론, 다양한 맥락의 친밀성과 돌봄 관계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개개인의 결합이 등장함과 동시에 늘어간다. 하지만 현행법은 이런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기존 제도의 한계를 넘는 생활 공동체를 구성할 권리를 보장하는 ‘생활동반자법’이 최근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이에 대해 알아보자. / 사회부

 

  ‘생활동반자법’은 지난달 26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을 비롯한 10명의 의원에 의해 역대 국회 최초로 발의되었다. 법안의 정확한 명칭은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이다. 해당 법률은 성년이 된 두 사람이 생활을 공유하며 돌보고 부양하는 관계를 ‘생활동반자 관계’로 정의하고, 현행 관련 법에서 인정하는 가족의 권리를 보장하도록 한다.

 

▨ ‘생활동반자법’이란?

  최근 우리 사회의 가족 유형은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전통적 가족의 모습에서 벗어나 1인 가구, 한 부모 가족, 입양 가족, 비혼 동거 가족 등으로 다양해졌다. 또한, 2020년 여성가족부의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전 국민의 69.7%가 혼인·혈 연 여부와 상관없이 생계를 공유한다면 가족이라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가족 형태는 물론 그에 대한 사회 인식도 크게 변화했다는 지표다.

  그러나 ‘건강가정기본법’을 비롯한 현행 법체계는 가족을 혼인· 혈연·입양에 한정하며 협소하게 정의된다는 의견이 산재 중이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은 자연스레 사회 보장에서 멀어지게 된다. 예컨대 신혼부부에게 한정되어 주어지는 주거 지원, 위급한 상황 중 파트너의 중대 의료 결정 등 제도가 보증하는 많은 권리는 이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제도와 국민 삶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괴리라 할 수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이러한 법 구조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 어졌다. ‘생활동반자관계’라는 새로운 가족 정의를 만들어 기존 체계가 포괄하지 못하는 이들을 함께 제도로써 규정한다. 대한민국 국적이나 영주권을 가진 두 사람의 성년이 합의에 따라 생계를 공유하고 서로 부양한다면 배우자에 준하는 법적 대우를 하게 된다.

 

▨ ‘생활동반자법’ 제정의 역사와 해외 사례

  ‘생활동반자법’이 법안의 형태로 국회에 발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4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생활동반자 관계에 대한 법률안’을 마련한 사례가 있었으나 초안만 제작되었고,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기에 용혜인 의원의 현 법률안이 공식적인 최초 사례라 할 수 있다.

  국회 이외의 장에서는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위한 여러 노력이 이어져 왔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건강가정기본법’의 개정을 권고하며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차별 예방과 보호를 지시한 바 있다. 이후 입장을 철회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하나 여성가족부 역시 ‘제4차 건강 가정 기본계획안’을 통해 비혼이나 동거 등 혼인 과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관계의 여건 개선을 위한 초석을 마련했다.

  시민 사회단체 역시 가족 다양성 보장을 위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어왔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019년 토론회 ‘1인 가구 여성, 이기적 선택은 있는가?’를 통해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에서는 1인 가구, 비혼, 동거 등 여러 관계에서의 가족 구성 근거 마련을 위한 조례 심사 요구와 함께 ‘생활동반자법’ 제정 논의를 촉구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입법 시작에 머무는 상황이지만 많은 해외 국가에서는 ‘생활동반자법’과 유사한 제도를 시행 중이다. 1999년 프랑스의 PACS(연대 의무협약), 2001년 독일의 Lebenspartnerschaften(생활동반자법), 일본 도쿄도 시부야구의 파트너십 증명제 등이 존재한다. 범위의 차이는 있지만 해당 국가들은 각 법·제도를 통해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 이외의 관계에 법적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당시 원내대표 또한 지난 2월 2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생활동반자법’의 논의를 주장하며 프랑스의 사례를 언급했다. 더불어 EU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국가였지만, PACS 이후 유럽 평균 출산율인 1.52%를 뛰어넘는 2% 출산율을 달성한 프랑스의 경우를 되짚었다.

 

▨ ‘생활동반자법’을 둘러싼 논쟁들

  기존 가족 제도를 뛰어넘는 포괄을 목적하는 ‘생활동반자법’의 특성상 법안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대체로 보수 성향 정치권과 기독교계에서 비판하는 경우가 잦다. 한국 교회언론회에서는 지난 5월 9일에 “소위 ‘생활동반자법’ 가족 형태를 망가지게 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하며 법안이 가정을 지옥으로 만든다며 강도 높은 비난을 한 바 있다. 또한, ‘생활동반자법’이 동성 결혼법으로의 징검다리가 되는 계기가 될 것을 우려한다는 언급도 덧붙였다.

  동국대학교 조은 명예 교수에 따르면, 근대적인 가족이라는 개념은 한 가지로 고정된 것이 아니다. 또한, 단국대 여성학 변혜정 교수는 “가족 제도가 사회 구성원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구성원이 제도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새로운 가족 형태 검토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생활동반자법’이 동성 결혼으로 이어질 우려를 표하는 입장에 대해서 법안을 발의한 용혜인 의원은 “엄밀히 말하면 ‘성 정체성’ 과 큰 관련이 있는 법이 아니다.”라 답했다. 정체성과는 무관하게 국민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사람과 가족을 이루고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법이기 때문이라는 취지를 덧붙이기도 했다.

 

  가족 형태는 급변하고 있다. 통계청이 2022년 발표한 ‘장래가구 추계’에 따르면, 결혼으로 맺어진 가구는 2020년 기준 전체 가구 중 60.5%에, 향후 30년간 45%로 감소할 전망이다. 전통적 가족 형태인 부부와 자녀 가구 또한 2020년에서 2050년까지 전체 가구 비율 중 12%나 감소할 걸로 추정되었다. 노인 동거, 동성 커플, 친구 사실혼 커플 등 ‘비친족가구’는 2000년 기준 39만 명이었지만, 2020년엔 101만 5천 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이들을 가족이라 부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보호하지 않을 이유는 미약하다 본다. ‘생활동반자법’이 발의된 지 1달이 되어간다. 앞으로의 숙의 동안 건설적인 토론과 함께 차근차근 입법이 이루어 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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