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10·18 문학상 현상 공모 -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설국의 동백꽃'
제36회 10·18 문학상 현상 공모 -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설국의 동백꽃'
  • 정유정 기자
  • 승인 2022.11.23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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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 부문 당선:  한상민(역사학과·2)

 

설국의 동백꽃

 

  그녀와 처음 만난 게 언제냐고 물었나요? 글쎄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사실은 그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잠깐 꿈을 꾼 게 아닐까요?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때 새하얀 설국의 눈밭에서 핀 새빨간 동백꽃만큼 처음 그녀를 본 그 순간만큼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당시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방직 공장을 유산으로 받았습니다. 영길리에서 기계를 수입하여 조선에서 장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딱히 공장 경영에는 관심이 없어 공장을 처분하고 북으로는 철도를 타고 중국도 여행하고 남으로는 호남선을 타고 호남평야를 보고, 금강산을 구경 가고…. 아무튼 여러 곳을 여행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또 오늘은 어디로 여행을 가볼까? 생각하던 중 경성제대에서 같이 대학을 다녔던 친구가 결혼한다는 전보를 받고 친구가 있는 원산으로 갔습니다.

  오랜 친구는 '하이칼라' 또는 '모던보이'라고 불리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아버지가 원산에서 큰 비료공장을 하여서 부족함 없이 자란 친구였죠. 무엇보다 소극적인 저와 다르게 사교성이 좋아 경성 여자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는 영국인 교사와 만나서 결혼을 한다고 전보에 적혀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방직 공장일로 일본과 조선의 여러 곳을 다녔지만, 원산은 아주 어렸을 때 갔던지라 마침 가고 싶었는데, 오랜만에 친구 얼굴도 보고 비록 겨울이지만, 송도원도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며칠 뒤 결혼식 날 저는 원산에 도착했습니다. 오랜만에 도착하였지만, 원산역 앞의 풍경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 내심 반가웠습니다. 결혼식은 원산 시내에서 가장 큰 교회에서 서양식으로 치러졌습니다. 그 친구는 식이 끝나고 저와 다른 오랜 친구들과 함께 피로연을 가졌습니다. 그때 부산에서 내지 상품을 수입하는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제법 어른 행세를 하는 오랜 친구가 말하길

  "우리도 슬슬 결혼해야 할 나이가 아닌가? 다들 마음에 둔 여인이 있는가?”

  저는 쓴웃음으로 대답을 대신에 하였지만, 딱히 결혼 생각은 없고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게 더 재미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나이에는 아직 즐길 게 많지 않은가? 가정이 생긴다면 나보다는 가정을 먼저 생각 해야 하고….”

  머리가 복잡해진 탓에 앞에 있는 사케를 들이켰습니다. 머리의 두통과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계속 마셨고, 제 몸이 불덩이가 될 정도로 끊임없이 사케가 저의 식도를 타고 흘러 내려 갔습니다.

  취기가 제법 오르고 분위기도 제법 풀어지니,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절과 같이 잠깐이나마 젊었던 그 시절을 누렸습니다.

 

 앞에는 마시다 만 압생트 한잔, 저만치 거울에 비친 무언가는 기괴하기 짝이 없다. 저 사람의 나이는 몇 살일까? 머리는 군데군데 하얗지만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젊은이의 분위기가 난다.

 

  그러나 눈.

 

  눈만큼은 세상의 모든 더럽고 치사한 것을 본 듯한 무념한 인생을 담은 눈이다. 뱀 허물과 같은 얼굴을 지나 목 아래로는 가을의 바짝 마른 장작 처럼 앙상하기 짝이 없다. 난로를 쬐다가 바짝 마른 육포와 같이 천천히 말라 죽을 것 같다.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다.

 

  그날 밤 어떻게 하여 근처 작은 여인숙의 다다미 넉 장 정도의 방에서 쓰러지듯 잠을 청하려던 차, 술기운 때문에 온몸이 뜨거웠던 저는 여인숙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밖은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던 겨울이었지만, 저의 몸은 불덩이 같아서 그렇게 춥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저의 몸을 식힐 겸 계속 생각하며 바닷바람이 부는 원산 골목을 밤새도록 돌아다니다가, 생각에 지쳐가며 길거리에서 결국 밤을 새웠고 불덩이 같은 몸은 얼음장과 같이 차가웠고 속 또한 차갑고 온몸이 아렸습니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몸은 근처 대중목욕탕에 갔습니다.

 

  수증기 속에서 알몸으로 수증기가 가득 찬 욕탕은 원산 앞바다의 해무와 같았습니다. 큰 바다를 가리는 해무. 하지만 그 속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 것처럼 부자든 가난뱅이이건 모두 똑같이 벌거숭이로 몸을 씻지만 결국 그 속까지 깨끗하게 씻을 수 있을까?

 

  약간 뜨겁게 느껴지는 욕탕에서의 시간을 보내던 중, 수증기 넘어 웬 노인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이 동네는 처음인가? 못 보던 얼굴인데?”

  나는 노인 쪽이 아닌 욕탕 바깥쪽을 보며 짧게 대답을 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래. 어쩐지 이 시간대에 보통 젊은이들은 근처 비료공장에서 일하지 이렇게 목욕탕에서 목욕을 즐기는 경우는 드물지. 그래 원산에는 무슨 일로 왔는가?”

  “결혼식으로 잠깐 원산을 들렀습니다만, 조금 생각할 게 있어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조용하게 생각한다면 복잡한 원산보다는 외곽으로 조금만 가면 청흥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생각을 해보는 게 좋네. 그곳에 삼나무 군락과 그 위에 눈이 쌓인 모습이 참 아름답네.”

  처음에는 웬 미친 노인네가 헛소리하는 것 같았는데, 그가 말하는 것에 묘한 설득력이 있어 그곳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남은 일정도 없어 경성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원산역에서 청흥으로 가는 기차 시간이 경성보다 먼저면 가볼 생각으로 원산역으로 갔습니다.

 

  역 앞에는 여전히 흐린 날에도 생계를 위해 머릿수건을 하고 노점을 하는 아낙네, 다음 손님까지 틈을 두고 담배 한 개비를 피우는 인력거꾼.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만, 복잡한 역 앞에 있는 사람 중 나만 혼자 다른 공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 안을 들어가 보니, 역 밖과 달리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금방 매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경성하고 청흥 중 어떤 게 먼저 출발합니까?” 매표 직원은 피곤함에 눈이 내려간 눈빛으로 다소 이상하게 잠깐 나를 응시하더니, 이상함을 의심하는 자체도 피곤한지 특유의 울리는 목소리로 답을 하였습니다.

  “경성행은 이미 오늘 표가 다 나갔고, 청흥행은 조금 있다가 출발합니다.”

  “경성이 매진이라고요?”

  대답하는 것도 피곤한지 특유의 죽어가는 눈이지만 명확한 발음으로 다소 화가 난 상태로 답을 하였다.

  “경성행이 원래 1일 5번 운행하였는데 눈이 많이 내려서 감축 운행으로 오늘은 3번 운행합니다.”

  잠시 생각하려던 차

  “내일 경성행 열차표로 드릴까요? 아니면 오늘 청흥행 열차표로 드릴까요?”

  정신이 번쩍 들어 말을 더듬으면서

  “처…. 청흥행 일등석으로 하나 부탁드립니다.”

 

  10엔짜리 지폐 한 장을 주고 거슬려 받은 돈은 상당히 많았지만, 세지 않고 도망치듯이 표를 받고 열차를 타러 갔습니다.

  역의 승차 역사로 다가가니 흐른 하늘에서 싸라기눈이 하늘에서 내렸습니다. 날개 없는 천사가 미처 하늘로 가지 못하고 다시 땅으로 떨어져 비가 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마치 저와 같았습니다.

  얼마 뒤 멀리서 지축을 흔드는 소리와 함께 앞이 동그란 철로 된 장성과 같은 기차가 왔습니다. 기차에 천천히 올라가 내 자리를 찾으니, 오른쪽 창문으로 바깥의 풍경이 아주 잘 보이는 자리였습니다. 기차는 자리에 앉자마자 또다시 지축을 울리는 경적과 함께 천천히 앞으로 나갔습니다.

  하늘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싸라기눈은 기차가 달리자 휘날리는 눈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니, 본질은 천천히 떨어지는 싸라기눈이겠지요. 결국, 본질은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싸라기눈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던 중 목욕탕을 다녀와서 그런지 잠시 잊었던 피로로 몰려와 저도 모르게 잠을 자버렸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저는 노면 열차의 흔들림에 그만 잠을 깨고 말았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창문을 보니 마치 동반자가 없는 저처럼 겨울의 추위라는 세월 속에 생기를 잃어버린 앙상한 가지들이 보였고, 기차의 앞쪽에는 기차만큼 새까만 터널이 있었습니다. 잠시 뒤 기차는 그 새까만 터널 안으로 들어갔고, 첫사랑처럼 빠른 속도로 그리고 무심하게 터널을 통과했습니다.

 

  화악

 

  갑자기 앞쪽에서부터 눈부신 빛이 들어섰습니다. 아니, 그것은 빛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그야 말로 설국(雪國)이었습니다. 새하얀 눈이 온 산을 뒤덮었고, 나무에 맺힌 상고대는 한층 더 설국의 아름다움을 자아냈습니다. 새하얀 설국의 모습을 보니 청흥행 기차를 타기 전 타는 듯한 느낌은 달려가는 열차 사이의 철로 사이에 녹아가는 눈처럼 사라져 갔습니다.

  이윽고 청흥 역에 도착하였고 역을 걸어 나오자 가까이에서 본 설국(雪國)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역 앞에 있는 설산에는 동백꽃이 만개한 동백나무가 군데군데 있었습니다. 청흥 역에 들어오기 직전의 풍경이 청순한 소녀의 모습이었다면, 역 앞의 산들은 양갓집 아가씨의 단아함을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은 새하얀 눈 속에 동백나무에 피어난 새빨간 동백꽃이 새하얀 설산을 수 놓은 것이었습니다.

 

  역 앞에 대기하고 있던 인력거꾼에게 가까운 료칸을 묻자, 조금 외곽에 있는 마츠마에(松前)라는 료칸을 추천하여 시가지를 벗어나 설국을 달렸습니다.

  청흥은 원산과 달리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산을 넘어가는 길에서는 사람 발자국이 없어 동백꽃은 눈꽃이 되어 꽃의 얼굴이 주눅이 들어 은색 달빛에 비추어 반짝거렸습니다.

  저녁 하늘에 보름달이 떠오를 때쯤이 되니, 저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저택이 있었습니다.

  료칸에 도착하니, 안주인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날도 추운데 이렇게 멀리까지 자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의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안주인께서는 인사를 하였습니다.

  “식사를 먼저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목욕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친절한 목소리로 물어보았습니다.

  날이 상당히 추웠던 만큼 목욕을 먼저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아까 목욕을 하였지만 청흥의 날씨가 상당히 추워 몸이 식어 상당히 으슬으슬하게 추워 목욕을 먼저 하고 싶었습니다.

 

  목욕을 끝내고 나와서 제 방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있던 방의 창가에는 눈이 쌓인 침엽수 나무와 작은 실개천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그 풍경은 병풍처럼 창가 전체를 채워 저의 가슴을 요동치게 하였습니다.

  실개천을 따라 시선을 옮겨 가보니, 그 실개천은 료칸의 온천 욕탕과 연결되었습니다. 그 노천 온천은 설산의 단아함과 웅장함이 공존하는 멋이 온천에 고스란히 녹아든 것만 같았습니다.

  방에서 온천을 끝내고 노곤한 상태로 따뜻한 말차를 마시던 중 장지문 뒤편에서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저만치 계단에서 올라오는 소리와 천이 끄는 소리가 나더니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실례합니다.”

  “아, 들어오십시오.”

  오래된 미닫이문이 열리며 나온 문밖에 있는 사람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밖에 있는 사람은 감색 기모노를 입은 안주인이 아닌 동백꽃처럼 검붉은색의 기모노를 입은 있는 작은 아가씨가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아야코?”

  그 아가씨는 분명히 아야코였습니다. 조선인 여인 아야코.

  어렸을 때 경성에서 우리 공장의 물건을 받는 도매상의 딸이었습니다. 저희 둘은 같은 보통학교에 다니고 아버지의 사업으로 자주 만나 사실상 정략결혼이 예정된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 날 가벼운 감기를 앓더니, 점차 병세가 악화하여 제가 보통학교를 졸업하기 얼마 전 눈이 녹기 시작하던 초봄에 폐병으로 죽었습니다.

  “네?”

  아가씨는 상당히 놀란 듯 검은 눈동자가 동그랗게 모여 저를 응시하였습니다.

  “아…. 아닙니다. 예전에 친했던 친구가 생각나서…. 혹시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까?”

  “마에다 라고 해요.”

  “혹시 성 말고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날씨가 추운지 얼굴에 홍조가 생기더니, 나지막하게 말하길

  “쓰네코 라고 해요. 마에다 쓰네코….”

  “실례했습니다. 전에 친했던 친구와 상당히 닮아 착각을 하였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러면 이어서 식사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작은 아가씨. 쓰네코는 어린 동백나무의 가지처럼 작은 손으로 작은 아가씨처럼 앙증맞은 가이세키 상을 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벚꽃 새우의 신조가 들어간 식전 국물 요리입니다. 또 이것은….”

  그녀가 나온 음식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저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얼마 뒤 조용해지더니 옆에서 설명이 끝나고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옆에서 무릎을 꿇고 기다리고 있던 쓰네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 이제 돌아가셔도 괜찮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다소 놀란 듯이 흠칫 몸을 떨었지만, 곧 일어나 머리를 숙이고 방을 나갔습니다.

  그날은 잠자리에 일찍 들었지만, 한참을 뒤척였습니다. 한겨울이었지만,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습니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되지 않은 그 사이의 공간에서 저는 어떤 소녀를 마주 보고 서있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소녀였습니다.

  그 소녀는 새까만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 올렸고, 그녀의 눈은 아까 본 터널 속 어둠보다 깊고 어두운 검은색이었습니다. 그 소녀의 눈을 바라 보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현실을 완전히 잊어 버리고 그 속으로 영원히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습니다.

 

  눈을 뜨니 여명이 아직 하늘을 물들기 전인 해가 지는 저녁인지, 해가 뜨는 아침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몸이 뜨거운 나머지 산보를 하기로 하고 유카타에 가벼운 핫피를 걸치고 여관을 빠져나왔습니다.

  여관 앞에는 커다란 호수 위에 고목이 있고 뒤에는 커다란 설산이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썩은 고목인 줄 알았는데, 군데군데 동백꽃의 봉우리와 덜 핀 동백꽃이 남아 있었습니다. 남들은 아무것도 아닌 썩은 나무로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면 비로소 보이는 가치. 저도 이런 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호수 위 고목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빠지더니 산 능선 너머 따뜻한 햇볕이 느껴졌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려보니 몸이 상당히 으슬으슬하게 추워 왔습니다.

  그렇게 여관으로 돌아오니, 간밤에 내린 눈을 치우는 안주인을 만났습니다. 저를 본 안주인은 매우 놀라며

  “손님 간밤에 추운데 어디를 가셨습니까?”

  “새벽에 잠을 깨서 잠깐 주변을 산보하다가 왔습니다.”

  “이렇게 추운데 그러다가 감기에 걸립니다….”

  “하하하…. 그러지 않아도 상당히 몸이 춥군요.”

  그 말을 듣고 안주인은 들고 있던 빗자루를 벽에다 두고 종종걸음으로 어디를 다녀오더니, 말씀하시길

  “이거 어쩌죠…. 지금은 여탕 운영시간이어서 조금 있다가 몸을 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사달이 난 게 제 잘못이 큰데, 안주인께서 계속 죄송하다고 말씀하시니 더 죄송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닙니다. 우선 여기 따뜻한 물이 들어 있는 물주머니로 몸 좀 녹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안주인께서는 찻잎을 끓이는 주전자에서 따뜻한 물을 담은 주머니를 주고 저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방에는 아까 나온 이부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어 이부자리에는 약간의 체온이 있었습니다. 그 옅은 체온마저 따뜻하다고 느낄 정도로 몸이 차가웠던 저는 이부자리 속 물주머니와 함께 다시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어젯밤과 달리 평온하게 잠을 잤고 얼마나 지났을까요? 가볍게 미닫이문 소리가 미약하게 들렸습니다.

  무슨 소리가 났지만, 정말 오랜만에 깊게 잠자리에 들었던지라 미처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다시 깊은 잠에 빠지려는 순간, 갑자기 찬바람이 들어온 것 같아 다시금 눈을 뜨려는 순간, 눈 앞에 아야코. 아니 쓰네코가 있었습니다.

  순간 매우 놀라 이부자리를 박차고 나오는데 쓰네코도 놀랐는지 들고 있던 쟁반을 놓치며 뒤로 넘어졌습니다. 다행히 쟁반에는 뜨거운 차가 아닌 차가운 물로 적신 천만 있어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잠결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쓰네코가 아야코와 상당히 닮아 있어 금방 알아차렸 습니다.

  “쓰네코씨? 여기는 어떻게…?”

  쓰네코는 당황한 기색에 놀라 넘어지며 살짝 떠는 목소리로 말하길

  “안…. 안주인님이 점심 식사 여부 여쭤보고 감기에 걸리셨다고 차가운 물수건을 가져다주라고 하셔서요….”

  “그래요? 점심은 괜찮고, 수건은 감사하다고 말씀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쓰네코는 그 말을 듣고 서둘러 일어나려고 하던 찰나,

  “아얏”

  발목을 부여잡은 쓰네코는 미처 일어나지 못하고 앞으로 넘어지려고 하자 또 넘어질까 봐 앞으로 손을 뻗자 쓰네코는 저를 덮치듯이 주저앉았습니다.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녀는 더 매우 놀라며 거칠게 뒤로 몸을 밀어 다리를 절며 도망가듯이 방을 나갔습니다.

  그녀가 잠깐이나마 품에 안겼지만, 그 감정과 느낌을 잊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따뜻한 숨결과 옷 넘어 느껴지는 그녀의 체온은 마치 설원 위에 떨어진 한 아름의 동백꽃과 같았습니다.

  나무 천장을 보며 한 구의 시체와 같이 화로에서 점점 온몸이 굳어져 나이마저도 짐작할 수 없이 근처만 가도 불길하고 기분 나쁜 냄새가 날 것과 같은 저는 그녀로서 시체에서 마치 인간이 된 것 같았습니다.

 

  다시금 일어났을 때는 창문 사이로 저녁노을이 저의 눈을 간지럽혔을 때였습니다. 저녁노을은 두메산골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겨울이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름의 노을과 같이 분홍 빛과 호수에서 빛나는 주홍빛. 온 하늘과 땅을 뒤 덮었습니다. 비록 추운 겨울이었지만 하늘과 저의 심장은 살아 움직이는 것과 같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때 또다시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미닫이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실례합니다. 안주인입니다.”

  “아 들어오십시오.”

  “쓰네코가 보이지 않는데 혹시 어디 있는지 아시는지요?”

  순간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 나와 무의식적으로 되물어 보았다.

  “쓰네코요?”

  “네…. 아까 손님께 물수건을 드리러 가야 한다고 주방에 이야기하고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요….”

  예상외의 답변이 나와 더 놀라 나도 모르게 얼 빠진 소리를 냈다.

  “네? 안주인께서 쓰네코를 시켜서 저에게 물수건을 준 게 아니었나요?”

  안주인도 처음 듣는 사실인 듯, 눈가의 주름이 순간적으로 펴지면서 놀란 눈으로 말하길

  “저는 쓰네코가 주방에서 하얀 천을 적시고 있기에 물어보니, 창문을 닦는다고 깨끗한 천을 빨고 있다고 저에게 말한 적은 있습니다만, 쓰네코 한테 무엇을 해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의외의 대답에 저도 안주인처럼 놀랐습니다. 저의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안주인보다 더 얼빠진 표정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안주인에게 다급하게 되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면 쓰네코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곳이 어디인가요?”

  그 말을 듣고 잠깐 허공을 응시하더니 대답을 하였습니다.

  “아마…. 저녁 식사 준비로 창고에서 식자재를 옮긴다고 나간 뒤로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선 창고로 한번 가볼까요? 눈에 발자국이라도 있지 않을까요?”

  그 말을 들은 주인은 잠깐 우물쭈물 거리면서 말하길

  “저도 아까 그래서 창고로 가보려고 했는데 밖에 폭설이 내려 발자국이 다 지워져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선 여관에는 있지 않을 테니, 일단 나가보죠.”

  그 말에 수긍하고 안주인은 주방에 있던 주방장을 비롯한 여관 관계자들을 모아 여관 정문에 모였다. 밖을 나가보니 처음 청흥에 왔던 아름다운 설국의 모습이 아닌 온 세상을 뒤덮는 눈은 밤 하늘을 휘날려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날아오는 눈의 결정이 찬바람과 만나 얼굴을 때려 피부가 찢어질 것과 같은 추위가 몸을 때렸습니다.

  “지금 쓰네코가 저녁부터 보이지가 않습니다. 우선 주변을 찾아보고 호수와 산을 중심으로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주방장이 눈바람 때문인지 저를 잠깐 보면서 큰 소리로 말하길

  “우선 쓰네코가 길을 잃어버렸다면 가까이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멀리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저도 수긍하며 산으로 향하던 찰나 안주인께서 저의 옷깃을 잡았습니다.

  “쓰네코 때문에 죄송합니다.”

  “아 저는 괜찮습니다. 왠지 제가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호수까지 쓰네코를 찾으러 갔지만, 사람과 비슷한 무언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쓰네코!”

  “쓰네코!”

  “쓰네코!”

  주변에서 쓰네코의 이름만 울리고 그 대답은 차디찬 눈보라와 함께 저 멀리 떠나버린 듯 답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눈도 쌓이고 산도 점점 경사가 높아져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미끄러지는 바람에 결국 저마저도 점점 지쳐갔습니다.

  “우선 이 능선까지만 흩어져서 찾아보고 내일 날이 밝으면 한 번 더 찾아봅시다.”

  옆에서 주방장이 큰소리로 나를 향해 말했습니다. 잠깐 고민을 하였지만 이대로 계속 찾다가는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조난 당할 것이 틀림없었기에 모두 지쳐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흩어 졌습니다.

  산의 정상이 가까워지자 주변에서 쓰네코를 찾는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도 점점 지쳐 눈앞에 보이는 눈이 점점 가까워지는 듯 앞으로 몸이 가던 중 저 멀리 굴 같은 곳에서 저의 이름을 부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만, 그 순간 의식이 끊어졌습니다.

 

  얼마나 또 지났을까요?

  눈을 감았지만, 그 사이로 동백꽃과 같은 붉고 따뜻한 불빛이 느껴졌습니다. 눈을 떠보니 저는 동굴 안에 누워 있었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청흥의 하늘은 맑았으며 설국 속 설산에 핀 동백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제야 정신이 들어 쓰네코를 찾아보니 동굴 안쪽에 쓰네코가 앉아있었습니다.

  저는 놀라 쓰네코의 옷깃을 잡고 흔들었습니다.

  “쓰네코!”

  “쓰네코!”

  “쓰네코!”

  대답이 없던 쓰네코를 들쳐 엎으려는 순간. 입가에 동백꽃의 개화처럼 천천히 웃는 쓰네코를 보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안심을 하고 쓰네코의 동백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달이 아름답나요? 아니면 해가 아름답나요?”

  언제 한번 동백꽃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달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해는 보이지 않지만 달은 언제든 해와 달리 밤만 되면 볼 수 있잖아요?”

  동백꽃은 저에게 한 번 더 되물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달은 모습이 바뀌잖아요?” “사람이 한결같을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그 모양이 바뀐다고 그 아름다움은 바뀌지 않죠.”

 

10·18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소감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도로서 가장 오랜 시간을 쓰는 시간은 사색(思索)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사색의 심연속으로 나아가다보면 어느 순간의 광명을 보는 것이 아닌 느끼게 되며 그 순간 저를 투영하면 자연스레 스토리텔링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저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처음 썼던 게 중학생이었습니다. 당시 재미있게 읽었던 우타노 쇼고의 추리소설을 읽고 트릭을 연구하며 1년간 노력으로 100페이지 분량의 추리소설을 집필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냉대하였습니다. 그 뒤로 소설보다는 당장 읽고 싶은 책을 몰래 사기 위하여 백일장에 공모하며 상금으로 책을 사며 부모님 몰래 소설을 읽으며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공군에 입대하였을 때 소대의 선임부사관이신 전 상사님의 권유로 공군 헌병에 관련된 이야기를 기관지에 연재하였으며, 당시 공군 군사경찰 단장이신 이재섭 대령님께서 글을 잘 읽었다고 하며 서한을 보냈습니다. 처음으로 글을 써서 누군가가 인상 깊게 읽었다는 그 말을 듣자 뜨거운 쇳물이 다시금 흘러 용광로와 같이 심연 속 사색이 끓어 넘치며 여러 작품을 구상하였습니다.

  <설국의 동백꽃> 또한 한참 동안 서산에 눈이 내리는 다음 날 아침. 연병장에 떨어진 한송이의 동백꽃을 보고 이 작품의 틀을 구상하였으며, 중앙동아리 8to1에서의 문학 스터디에서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10·18문학상에 발표하였습니다. 집필하는 동안 누구보다 행복하였습니다. 다시금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주신 20전투비행단 공보정훈실과 군사경찰대대 전상오 상사님과 공군 군사경찰 단장님이신 이재섭 대령님, 문학 스터디에 있었던 경호보안학과 배보민 선배님, 경영학과 임요한 선배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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