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여론 조사 전문 기관인 입소스가 지난해 세계 28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갈등 지수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1등을 했다. 그것도 조사 항목 12개 중 빈부·정당·이념·성별·나이·종교·학력 7개 항목이 1위로, 그야말로 압도적인 수치로 ‘갈등 공화국’이란 오명을 얻은 것이다. 2008년 4위, 2018년과 2016년에는 3위였다니, 우리 사회가 갈수록 더 갈등이 더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전경련도 지난해 이와 유사한 조사를 했는데, 여기서는 OECD 30개국 중 갈등 지수 3위, 그 갈등을 해결하려는 갈등 관리 지수는 27위였다. 30개국 중 헝가리, 그리스, 멕시코 세 나라만 우리 뒤에 있었다.
입소스 조사에서 우리가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정당과 이념 부분에 각기 91%, 87%인데, 이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겪으며 격심한 정치적 갈등을 겪은 미국의 85%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웃 일본과 중국은 진보와 보수 갈등이 존재한다고 답변한 비율이 각각 39%, 37%로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낮았다. 우리의 갈등 지수는 위험하리만큼 높고 갈등 관리 지수는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낮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정치인들의 영향이 상당 부분 작동하였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정치는 표를 매개로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그러기에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표를 계산하면서 행동하고 말한다. 입으로는 정의와 선(善)을 얘기하지만,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국민을 대상으로 정치 호객행위를 하면서 편가르기나, 줄서기를 강요한다. 개별 정치인의 양심이나 인품과는 별개의 정치적 능력으로, 이게 신통치 않으면 도태되니 어쩌겠는가?
‘갈등 공화국’은 그런 결과치가 상당수 반영된 성적표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제 정치인들이 드는 깃발에 무조건 따라가거나 선전과 선동에 줄을 서는 일은 그만해야겠다. 그 대신 정치인 말과 행동에 의도를 따지고 판단하는, 정치 문해력으로 대응해야 할 것 같다. K-pop으로 시작해서 영화, 드라마 등 우리의 문화가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데, 유독 정치 부문에서만 정치놀음에 휘둘려서 될 일이 아니다. 왜 우리 국민이 진보와 보수로 두 동강이가 나 있어야 하고, 왜 이대남, 이대녀로 극명하게 갈라져야 하고, 왜 여성가족부 존폐문제로 정치 논쟁에 휘말려야 하느냐 말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지능을 지닌 우리 국민들이 정치인들에게 무비판적으로 줄을 서는 대신, 정치 문해력이란 판단의 잣대를 마련해주면 우리의 정치인들이, 우리의 정치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래서 갈등 공화국이란 오명도 벗고, 최저 수준의 갈등 해결 지수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만 정치 수준도 높아지고, 국민통합도 이뤄지면서 진정한 문화 국민으로서 자부심도 누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