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 아고라] 나의 깨어진 독 ‘신풍미술관’
[한마 아고라] 나의 깨어진 독 ‘신풍미술관’
  • 언론출판원
  • 승인 2021.08.2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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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계신 구순의 시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귀향을 하고, 칼날 같은 추위에 지은 집과 주위의 염려 속에서 12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신풍리의 삶이다. ‘정직한 농사로 예술의 씨앗을 심겠다고, 우리의 사명은 민족의 중흥이고 미술관은 내 개인의 사명’이라고 겁 없이 중얼거리던 말들이 결국은 씨앗이 되어 일상이 되었다. 지난 시간 중 힘들었던 가족의 한마디 “깨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일을 왜?”였다. 공적인 역할에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재정과 운영은, 사립미술관=소탐대실 가진 것 내어놓고 작은 기쁨을 탐하는 일! 나름의 해석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깨진 독에 물 붓기’의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 만일 온전한 독에 물을 부었다면 가득 찬 물과 갇혀 있는 물이 썩는 줄도 모르고 교만과 게으름으로 살았을 텐데, 깨어진 독에 부은 물은 작은 시내를 만들고 바다로 흘러 결국은 바다를 보는 일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러한 나의 녹록치 않은 삶에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게 생각을 심어 준 두 스승이 계신다.

  “내 아이를 보낼 수 없는 학교에서 강의를 한다는 것은 교육자적 양심에 위배되기에 내 아이들을 설득해서 진학을 시켰다. 나는 잠시 강의하고 떠나는 선생이 아니라 경남대학교의 학부모이자 영원한 경남대인이다.” 20년 전 내 아버지 이석주 교수의 정년퇴임사이다. 존경하는 나의 첫 번째 스승님이시다. 우리 자매들은 모두 경남대학교 동문들이다. 대학 진학을 할 때면 어김없이 다가오는 아버지와 피할 수 없는 면담의 질문은 딱 두 가지 “서울대?”, “경남대?” 그림을 전공하고 싶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경남대학교 사범대 미술과에 입학을 했다. 동생은 다른 지방의 약대를 가고 싶었지만 그 역시 아버지의 질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나는 나름대로 자유롭고 신나는 대학 생활을 보냈기에 후회는 없었지만 동생들의 상황은 좀 억울한 점이 있었다는 생각에 가끔은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퇴임식장에서 우리 자매들을 감동시킨 아버지의 퇴임사! 자녀인 우리들의 삶에 큰 모토가 되었다. 내 아이에게 시키지 못할 일을 어린 직원에게 시키지 않는다는 나에게 “관장이 그런 일도 하느냐?”는 말을 들을 때도 있었지만 숨기지 못할 아버지의 가르침의 실천이다.

  “너의 아픔을 그림으로 승화시켜라.” 내가 길지 않은 삶 속에서 너덜거리는 맘을 안고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나에게 용기를 주신 이경석 교수님이 나의 두 번째 스승님이시다. 전공 교수님이시기도 하셨던 이경석 교수님의 부드럽고 단호한 가르침은 전공에 대한 자신감과 어학에 대한 안목을 기를 수 있는 자세를 만들어 주셨다. 신풍리로 삶의 터전을 옮긴 나에게 교수님은 또다시 말씀하셨다 ‘시골이라고 시골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실은 그곳에 있지만 여러 매체를 활용하여 생각과 정신은 세계적이어야 한다.’

  나는 경북 예천에서 사립미술관인 ‘신풍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인근에 제법 큰 도시들이 있지만 유일한 사립미술관으로 올해 10년을 맞았다. 작은 미술관에서 일 년에 6번의 전시와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가끔 현장에 대한 고민과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 지친 나에게 “보이는 것이 모두가 아니야 지금은 이성의 시대를 지나고 감성의 시대를 넘어 영성의 시대란다. 보이지 않는 깊은 세계를 볼 수 있도록 노력해라.” 참으로 멋진 스승님의 말씀으로 난 다시 가슴을 펴고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다. 노령인구의 비율이 30%를 넘는 시골 생활로 만난 할머니들과 노인들의 우울증과 높은 자살률, 그리고 미술을 통한 삶의 변화 ‘우리는 그림 그리는 할머니 화가니더.’라는 고백은 가슴 벅찬 감동이다. 스스로를 ‘밥버러지’라고 하셨던 시간을 넘어 독일 전시 초청으로 해외전시를 할 정도로 당당히 존재감을 높이고 지금은 지역의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지난해에는 「농업인의 삶의 질 향상과 농촌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받았다. 미술관 관장이 농림축산부 상을 받았냐는 짖궂은 말도 있었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의 최상의 보상이다. 최고의 작가에서 시골의 할머니 화가까지 포용할 수 있는 사립 미술관을 나는 운영하고 있다. 내 인생의 두 분의 스승님으로부터 보고 들은 가르침으로 한마의 정신으로 또 자랑스러운 제자가 되기 위해 이곳 경북에서 최선의 시간을 살고 있다.

이성은(미술교육과 졸업, 동문신풍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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