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가 열리기 전, 당시 우리나라에는 PC통신 ‘천리안’이 생겼다. 글 중독자인 ‘글쟁이’들에겐 역사적 사건이었다. 지역 모임, 전국 모임 등 다양한 모임을 만들며 친목 단체로 확산하여 갔다. 처음 PC통신에 연결해 우루루루 글을 쓰기 시작한 때가 1995년으로 기억한다.
그때, 지금은 ‘베이비붐 세대’로 밀려난 우리 세대는 천리안을 시작으로 하이텔, 나우누리 등을 통해 PC통신에 열광하며 즐겼다. 이후 ‘www.’ 신세계가 열렸지만 천리안 이후 이미 그곳에서 이런저런 험한 꼴을 다 본 나는 SNS에 별 관심이 없었다. 지금껏 카톡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다 나는 지난해 8월1일부터 적바림 삼아, 일기 삼아 카카오 스토리(약칭 카스)에 내 글과 사진 기록을 남겼다. 하루하루가 아니라 생각날 때마다 기록을 남겼다. 카스를 하다 보니 놀랍게도 천리안 시절의 동지들이 그곳에 모여 그때의 전성기를 다시 누리고 있었다. 댓글로 안부를 전하고 새로운 소식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나의 부정기적인 SNS가 시작되었다.
카스를 하다 보면 내 글을 구독하고 싶다는 친구 신청이 온다. 반가운 친구에겐 당연히 문을 연다. 그렇지 않을 경우도 많다. 정체가 불명인 사람은 거부한다. 카스 친구란 부담이 없어야 하는데, 부담감을 느끼는 신청이 올 때가 있다. 당연히 거부다. 그런데 작년 연말쯤 주한 미군 대위라 밝힌 ‘스테판 존슨’(물론 거짓 이름이겠지만)이 친구 신청을 했다. 처음엔 우리말을 또박또박 쓰는 그가 대견해 보였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우리말을 어디서 배웠느냐?’ 그 친구는 나에게 ‘당신은 마음이 착한 여성이다.’라고 동문서답을 하지 않는가! 이게 무슨 수작이지 지켜보니, 자기는 주한미군인데 이라크에 나와 있다 등등 나는 그 친구의 수작을 다 알 것 같았다. ‘나는 남자다. 나이가 너의 아비뻘이다.’라고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그 친구는 내가 퍼붓자 미쳐버렸다. 낚시 미끼를 문 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열심히 ‘릴’을 감았다. ‘돈을 빌려주면 한국에 가면 갚겠다.’라는 이야기까지 나와 차단해 버렸다. 즉시 내 카스에 그 친구 얼굴을 보여주며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렸다. 내가 올린 주의하라는 카스에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이미 그 친구의 수작을 경험한 ‘카친’이 많았다.
미군을 사칭하는 친구가 여기저기 어떤 피해를 남겼는지 모른다. 그것이 이른바 ‘로맨스(romance) 스캠(scam)’, 연애 빙자 사기이다. 기업가 김우중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했지만, 이들에겐 ‘SNS 바다는 무한하고 사랑의 낚시로 건질 물고기는 많다.’라는 것이었다. 경찰에 잡힌 조직도 있었다.
편리함 뒤에는 꼭 이런 마(魔)가 있다. 천리안 시절 한국인 ‘마’들이 설쳤다면, 지금은 국제적인 마가 우리에게 달려들고 있다. 마는 방심하는 사이 피해를 주고 달아나는 위험한 짐승이다. 주의해야 할 일이다.
석좌교수·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