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부문 가작: 김민(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4)
선_______
소풍 날까지 수아와 함께여야 한다니. 나는 수아가 싫었다. 낮은 코에 눈꼬리가 위로 올라간 작은 눈, 그리고 한두 박자씩 느린 말과 행동. 수아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은 학기 초부터 진작에 알아차렸다. 선생님은 수아가 우리들과 조금 다를 뿐 똑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리송한 말뜻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수아더러 창가 쪽에 앉으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러고는 의자의 경계선을 따라 손가락을 죽 그었다.
“여기가 금이야. 넘어오면 안 돼.”
“넘으면?”
“넘으면……”
미처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 벌칙이 필요하긴 했다.
“……넘으면 네 도시락 다 내 거야.”
내 말에 수아는 히죽거렸다. 제대로 알아듣기나 한 건지. 아마 이것도 놀이의 일종으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난 말했다. 넘어오지 말라고.”
짐짓 위압적으로 말했지만 수아는 재미있다는 듯 웃음기를 거두지 않았다. 주먹 쥔 손에 검지만 펴서는 경계선 부근을 콕콕 건드리기까지 했다.
“야!”
나는 수아의 손등을 툭 쳐냈다.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져서 재빨리 선생님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선생님은 아직 기사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너 진짜……”
수아가 인중을 오므렸다. 곤란할 때마다 짓는 표정이었다. 나는 저 버릇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면 될 것을 뭘 저렇게 버티는지.
“마지막 경고야. 이 선 넘지마.”
나는 선심 쓰듯 주의를 일렀다. 그리고는 몸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나와 친한 친구들이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원래대로였다면 내가 저들 중 하나와 짝이 됐었어야 하는데. 선생님의 부탁을 괜히 들어준 것 같다는 후회가 들었다.
며칠 전, 수아가 물에 한 바가지나 젖는 일이 있었다. 청소 중이라고 여자애들이 화장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모양이었다. 볼일이 급했던 수아는 하는 수 없이 남자화장실에 들어갔던 것이고. 이를 그냥 지나칠 리 없던 남자애들이 수아에게 물세례를 퍼부으면서 물난리가 났다. 화장실 청소 당번 때 물장난을 하는 건 흔한 일이었지만 그날따라 유달리 소란스럽다고 느낀 나는 지나가던 길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던 중에 내 바지에 물줄기가 옮겨붙은 것이다. 화가 난 나는 당장 호스를 들고 있던 남자애한테 달려들었다.
“너 몇 학년이야. 3학년이 4학년한테 이래도 돼?”
2층 화장실은 3학년의 청소구역이었다. 세면대 근처에 있던 남자애가 얼른 수도꼭지를 걸어 잠갔다.
“별로 묻지도 않았으면서……”
개중에 한 녀석이 입을 배죽 내밀었다. 옆에 있던 다른 녀석도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러냐고 거들었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 걸음을 멈추면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들의 말처럼 내 옷에 묻은 물 자국이 크지는 않았다.
“나 말고 얘 말야!”
순간 나도 모르게 손끝으로 수아를 가리켰다. 지켜보던 아이들의 시선이 수아에게 집중됐다. 입술을 머금은 채로 어쩔 줄 몰라 하던 수아는 그대로 울음을 빵 터뜨렸다. 담임선생님이 온 것도 바로 그때였다.
그날 종례시간에 선생님은 반 아이들 앞에 나를 세워두고 내 선행을 칭찬했다.
“여러분도 친구가 곤란한 처지에 놓였을 때 모른 체해서는 안 돼요.”
같은 반 아이들의 박수 소리가 옆반에 들릴 정도로 컸다. 멋있다, 대단하다, 친한 친구들이 한마디씩 보탰다.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곁눈으로 수아의 빈 자리가 보였다. 물에 쫄딱 젖은 수아는 벌써 수아네 엄마가 데려가고 없었다.
‘그런 게 아닌데…….’
나는 이 모든 게 오해라는 걸 알았지만 기분이 좋아서 아무 말 않고 가만있었다.
“네가 수아를 근처에서 살펴주는 것은 어떠니?”
그 제안을 선뜻 거절할 수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선생님에게 난 용감하고 착한 학생일 테니까. 내 대답을 기다리는 선생님의 눈망울이 맑게 빛났다. 뭐랄까, 기대감 같은 게 잔뜩 어려있는 눈빛이었다.
“……저는 상관없어요.”
아무리 말을 그렇게 했다지만 소풍 날까지 수아를 떠넘기는 건, 정말이지 선생님이 너무했다.
버스가 출발하고도 나는 옆자리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초콜릿이나 쿠키 같은 간식거리도 뒷자리 친구들하고만 나누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우리 사이에 수아도 끼고 싶었는지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았다. 나는 수아를 의식하면서도 아무런 내색을 않았다. 수아와 나 사이엔 분명 지켜야 될 선이 있었다. 그럼에도 수아는 자꾸만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수아가 남들보다 잘 안 보이고 안 들린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았다. 그래서 좀 더 가까이서 보고 들으려고 그러는 건가. 하지만 나와 친구들은 매번 얼굴을 들이미는 수아를 부담스러워 했다. 내가 수아를 챙기게 되면서부터는 나한테도 그런 분위기를 풍겼다. 불편하고 껄끄럽다는 게 말끝과 눈끝에서 느껴졌다. 아무래도 수아는 어딘지 묘하게 거북하니까…… 우리와 다르면서도 똑같은 거? 나는 그런 거 모른다. 단 한 가지 분명한 건, 수아는 우리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거였다.
“……혹시 밥까지 같이 먹어야 되는 건 아니겠지?”
혜지의 말에 윤아가 설마, 하고 웃었다. 나도 얼른 따라 웃었지만 친구들이 주고받는 눈길이 미묘했다. 나는 잽싸게 수아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조그맣게 속삭였다.
“나한테 다 생각이 있어.”
사실이었다. 네 번째 현장학습이지만 그때마다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은 아무렴 친구들끼리 둘러앉아 도시락을 꺼내 먹는 점심시간이었다. 엄마가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싸준 김밥과 유부초밥…… 과일까지. 친구들과 나눌 목적으로 넉넉하게 준비했지만 수아와 공유할 순 없었다.
“뭔데, 뭔데?”
혜지와 윤아가 천진하게 물었다. 나는 알려줄 듯 분위기를 고조시키고는 비밀이라며 쉿, 하고 검지에 바람을 넣었다. 친구들과 나는 뭐가 그리 웃기다고 한참을 낄낄대며 웃었다. 우리들의 웃음을 비집고 수아도 함께 킥킥댔지만 아무도 알은체하지 않았다.
버스가 멈춘 곳은 넓은 주차장을 낀 공원이었다. ‘자연휴양림’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우거진 수풀로 온 사방이 푸릇푸릇했다. 나들이를 나온 할머니와 할아버지들도 많이 보였다. 차에서 내린 우리들은 앞반을 따라 길게 두 줄로 섰는데, 어디든 이동할 때마다 우선인 앞반이 부러웠다. 혜지와 윤아, 그리고 나는 날쌔게 선생님 앞에 섰다. 그러나 수아가 보이지 않았다.
“야, 김수아!”
나는 맨 뒷줄에 선 수아의 팔뚝을 꼬집었다.
“왜 안 따라오고 여기 있어. 너 때문에 나까지 맨 뒤잖아.”
“나도 너 찾으려고……”
“아 됐어. 앞이나 봐.”
나는 수아의 말을 끊었다. 선생님이 말씀 중이었다. 예전엔 이렇게까지 수아를 무시하지 않았는데 요새는 수아가 무슨 말을 하든 귀찮아 죽겠다.
“조금만 이동하고 밥 먹을 거예요. 다들 도시락과 돗자리 챙겼죠?”
“네!”
그간 들어왔던 같은 반 아이들의 목소리 중에서 지금 게 제일로 컸다. 모두들 나와 같은 생각인지 큰 소리를 내어 웃었다. 아마 다들 나처럼 들뜨고 설레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대열을 유지한 채로 숲길을 걸었다. 저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짝꿍과 장난을 쳤다. 다들 신이 난 모습이었다. 아무 말 없이 조용한 건 나와 수아뿐이었다.
“멀리 가지 말고 이 근처에서만 식사하도록 하세요.”
하지만 나는 금세 활기를 되찾았다. 널찍한 잔디밭에 서니 친구들하고 밥 먹을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선생님은 정자 아래 다른 선생님들 곁으로 돌아갔다. 우리도 서둘러 그늘을 찾아보자며 혜지가 말했다.
“잠깐만, 나는 수아랑 어디 좀 다녀올게.”
나는 수아의 손을 붙들고 잔디밭 외곽으로 향했다. 화장실 부근, 친구들과 얼마간 동떨어진 자리에 나무 의자가 놓여있었다. 나는 그곳에 수아와 마주 앉았다. 의아하다는 듯 수아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다른 애들은……?”
“쉬 좀 싸고 싶어서 너 데려왔어.”
아하, 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기다려줘.”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는 척 애써 태평하게 자리를 떴다. 그러나 등 뒤가 싸해서 발걸음이 무거웠다. 나는 괜한 걱정이 들어 도로 수아에게 돌아갔다.
“나 배가 많이 아파서 그런데……”
수아가 얼굴을 바짝 댔다.
“너 먼저 밥 먹고 있어도 돼.”
“응, 알았어.”
수아는 이번에도 걱정 말고 다녀오라며 손짓했다. 나는 화장실 건물을 에둘러서 수아가 보지 못하도록 몸을 숨기고는 친구들이 있을 법한 나무 그늘 쪽으로 내달렸다. 다행히 혜지와 윤아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김수아는?”
“다른 데서 밥 먹고 있으라고 했어.”
윤아는 그게 진짜냐며 잘했다고 내 어깨를 두드렸다. 전속력으로 뛰어와서 그런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물 마셔, 물.”
혜지는 가방에서 물을 꺼내 건넸다. 그러고 보니 수아도 따로 물을 챙겼을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찰나였다. 난 보기 좋게 물을 한입에 털어놓고는 어른 흉내를 냈다.
“캬, 좋다.”
친구들의 웃는 얼굴이 환했다.
차 안에서 먹을 걸 이미 먹어서 그런지 도시락을 몇 번 들추지 않았는데도 금방 배가 불렀다. 다른 반 남자애들이 어슬렁거리며 우리 음식을 하나둘씩 뺏어 먹기도 했지만 그래도 많이 남았다. 과일은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때였다. 선생님이 두리번거리며 수아를 찾기 시작한 것은.
“주희야, 네 짝은 어디 있니?”
“아…… 수아요.”
나는 수아가 화장실에 갔다고 일렀다. 금방 데려오겠다고도. 근데 선생님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
“화장실에도 없던데, 혹시 간 지 얼마나 됐니?”
나는 혜지와 윤아를 번갈아 봤다. 그들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한 삼십 분쯤……?”
선생님의 얼굴이 대번에 굳었다. 나도 불길한 마음이 스쳤다. 혹여나 나쁜 일에 휘말리기라도 한 게 아닌가…… 그럼 다 나 때문인데. 어른들이 나를 타박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실망감으로 뒤바뀐 선생님의 표정도. 나는 한번 찾아보겠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위험하니까 너희들은 여기 있어.”
선생님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그렇지만 수아를 화장실로 데리고 간 건 나였다.
“수아를 마지막으로 본 게 저예요.”
“……그럼 주희만 선생님 도와주겠니?”
나는 수아와 함께 갔던 방향으로 선생님을 이끌었다. 혜지와 윤아는 어쩌나 싶어 멀뚱멀뚱 쳐다만 봤다. 나도 무서웠다. 수아가 정말 어떻게 되기라도 했다면…… 아니다. 수아만 무사히 찾으면 된다. 그럼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아무런 일도.
하지만 내가 아까 수아를 내버려 두고 온 곳에는 빈 의자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수아의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선생님은 내게 수아를 마지막으로 본 곳이 여기가 맞느냐고 물었다.
“네, 아마 여기서……”
“여기서?”
나는 망설였다. 여기서 수아가 혼자 밥 먹고 있을 줄로만 알았다고 얘기한다면 내가 선한 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이 들통나고 만다. 그렇지만 나 때문에 수아가 큰일이 났을 수도 있다. 영영 되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내가 여기서 혼자 밥 먹고 있으랬다가 나쁜 일에 휘말린 것 같다고. 서둘러 경찰도 부르고 CCTV도 뒤져서 수아를 찾아내자고. 그렇게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데…… 목멘 것처럼 목구멍이 일렁여서 어떤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누군가 내 속내를 끄집어줬으면, 하고 바랐다. 그때였다. 수아가 선생님과 나를 부른 것은.
“둘이 뭐하세요?”
“김수아 너……!”
선생님과 나는 깜짝 놀랐다.
“주희랑 선생님이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아니!”
선생님이 수아의 등짝을 때렸다. 어디 가면 간다고 말을 해야될 것 아니냐고 꾸중을 놓았다. 수아는 어찌 된 일인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멍하니 서서 아무런 말도 않았다. 수아의 한 손엔 도시락 보따리가 멀쩡하게 들려있었다.
“친구들 있는 곳으로 가자.”
선생님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나와 수아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걸으며 이번에도 암말도 말았다. 수아는 왜 내 핑계를 대지 않았을까. 왜 밥을 먹지 않았을까.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도록 입을 다물다가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야 물어봤다.
“아까 거기서 뭐하고 있었어?”
수아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 찾고 있었던 거야?”
“네가 안 나오길래……”
“바보야. 뭣하러 그래. 내가 안 오면 먼저 밥 먹고 있으랬잖아.”
수아는 또 입술을 물었다. 짜증이 났다. 수아 말고 나한테.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면 될 것을 나는 또 뭘 이렇게 버티고 섰는지. 차마 미안하단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우리 둘의 대화가 시끄러웠는지 뒤에서도 알은체했다.
“아니……”
그 순간 나한테서 좋은 생각이 났다. 수아에게 사과하지 않고도 미안한 마음을 덜어내는 유일한 방법. 나는 등받이 쪽으로 몸을 돌리고서 머리를 위로 빼꼼 내밀었다.
“우리 학교에 도착하면 남은 도시락으로 저녁 놀이할래?”
“저녁 놀이?”
“응, 소꿉놀이처럼.”
예상대로 혜지와 윤아의 반응이 좋았다.
“좋다, 그거. 근데 우리 도시락 셋이 먹기엔 부족하지 않을까.”
나는 이번에도 대단한 비밀이라도 숨어있는 양 ‘그쯤이야’ 하는 표정으로 주의를 끌었다. 혜지와 윤아가 뭔데, 뭔데, 하며 귀를 기울였다.
“수아도 데리고 가는 거야.”
“뭐?”
혜지와 윤아의 눈동자가 동시에 커졌다.
“내가 봤는데, 수아 도시락 하나도 손 안 댔더라고.”
“그래도 그건 좀……”
혜지와 윤아는 서로 흘끔 쳐다보더니 혀를 내둘렀다. 자기 이름이 불리는 걸 알았는지 수아도 어깨를 살짝 들썩였다. 나는 태연하게 굴었다.
“수아야, 도시락 뭐뭐 쌌어?”
“응?”
수아가 뭔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되물었다.
“도시락 반찬, 뭐냐고.”
“아, 판다 주먹밥이랑 문어 소시지, 토끼 사과……?”
“토끼 사과?”
혜지와 윤아의 눈빛이 반짝였다. 수아의 도시락은 1학년 때부터 주변 아이들의 관심사였다. 항상 선생님과 먹거나 저 혼자였지만, 수아네 부모님이 신경을 쓴 게 한눈에 보일 정도여서 주위를 서성이던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도 한입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때?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놀면 될 것 같은데.”
혜지와 윤아는 서로 눈치를 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수아 너는?”
수아가 입술을 달싹였다.
“……좋아.”
“아싸!”
소리가 컸는지 선생님이 똑바로 앉으라며 주의를 주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샌가 나와 혜지, 윤아, 그리고 수아까지 넷은 모두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웃고 있었다. 창밖에는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우리가 지나왔던 숲이 점점 멀어지는 중이었다. 수아가 저것 보라며 창가를 가리켰다. 무언가가 선을 긋듯 구름을 찢으며 날고 있었다. 나는 자세히 보기 위해 수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나와 수아 사이에 아무런 경계도 없었다.
3·15청년문학상 동화 심사평
동화는 깊고 그윽하고 아름다워야
올해 신설된 분야라서 그런지 응모 편수가 적은 것도 아쉬운 일인데, 전체적인 수준마저 미흡해 아쉬움이 크다.
예심에서 올라온 세 편중에서 <검정 돼지>는 그림책을 연상하게 하는 문장 형태가 동화 쓰기의 기본을 의심스럽게 하고, 주인공 선정과 그 여정에 통찰과 깊이가 부족하다.
<한 번만 더 보고 싶어>는 그리움의 대상인 저 세상의 주인공들을 판타지로 소환했지만, 문방구의 정체와 공책 등의 설정과 전개에 개연성이 부족하다.
마지막으로 <선->은 주제를 설정하고 완성도를 높이려 노력했으나 접근하는 방법이 제멋에 넘치고 제목이 너무 소설적이다. 또, 등장인물의 성격 설정이 섬세하지 못하고 문장 또한 치밀하지 못해 가벼운 느낌을 주는 소년소설이다.
세 작품 중에서 아동 심리를 들여다보는 여문 눈이 두 작품보다 돋보인 <선->을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뽑는다. 이는 한 계단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 보인다는 암시기도 하지만, 더 멀리 내다보고 끝없이 정진하라는 격려이기도 하다.
동화, 그중에서 단편 동화는 한 편의 시나 다름없다. 깊고 그윽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그 위에 재미를 더해야 한다. 어쩌면 젊은이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장르일 수도 있지만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동심이 있기에 가장 빛나는 작품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응모한 모든 분에게 박수를 보내며, 입상한 분에게는 꾸준히 나아갈 것을, 그래서 또 하나의 새 별이 되길 당부드린다.
심사 위원: 배익천·김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