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꼂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다소 긴 인용이지만, 이 시에서 말하는 ‘이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국수’다. 예를 든 것은 백석 시인(1912~1996)의 시다. 다소 긴 인용이지만, 백석의 시 ‘국수’의 마지막 부분이다. 백석은 평안도 정주가 고향이다. 북쪽 고향의 추운 겨울밤, 얼음이 언 ‘동치미국’에 말아먹던 ‘수수하고 심심한 것’이 국수다. 그 국수를 북의 특미인 ‘랭면’이라 해도 정답이다. 시에 등장하는 고향 사투리 또한 곱씹을수록 구수한 맛이다.
요즘 외식 메뉴는 단연 ‘평양냉면’이 대세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만찬 이후 냉면 집마다 불이 난다. 그 붐이 일본에까지 건너갔다고 한다. 남북 대화의 바람을 타고 평양냉면의 본산인 ‘옥류관’ 서울 지점을 차지하려고 야단이라고도 한다. 지금까지 비빔밥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인데, 앞으로는 냉면이 그 자리를 빼앗을 것 같다. 세계인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을 경쟁력의 맛이 그 냉면에 들어 있다.
평양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던 기억이 입속에 남아 있다. 2005년 6월 북에서 열리는 남북작가대회 남측 대표단으로 방북한 적이 있다. 방북일정 식사 중에 옥류관 냉면이 들어 있었다. 군침이 도는 식사였다. 대동강변 옥류관에는 냉면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옥류관에 들어가니 물수건을 주었다. 서서 손을 닦고 물수건을 돌려주고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먼저 쇠고기 요리가 조금 나왔다. 쇠고기 요리를 먹고 난 뒤 냉면이 나왔다. MSG와는 거리가 먼 ‘슴슴한’ 육수에 구수한 메밀면이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맛이지’ 생각하다, 먹을수록 평양냉면이 주는 깊은 맛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북에서는 몇 그릇이라도 드시라고 권했지만 나는 한 그릇으로 충분했다. 남쪽에서 먹는 평양냉면이 얼마나 강한 양념 맛인지 비교가 되었다.
‘덕후’까지는 안 되지만 나는 냉면을 좋아한다. 김천과 풍기에 평양냉면과 비슷한 맛을 가진 단골 냉면 식당이 있다. 여름이면 꼭 들르곤 한다. 그런데 가끔 젊은 제자들과 동행할 때가 있다. 제자들에게는 먹어 내기 곤란한 음식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음식의 맛은 세월의 맛이며 나이의 맛이다. 나이에 따라 맛의 기준이 다르다. 남북의 왕래가 자유로워지는 날이 오면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에 평양 옥류관에 다녀오고 싶다. 추운 날에 ‘쩔쩔 끓는 아랫목’에서 냉면을 먹는 그 슴슴한 맛을 기대해본다. 그때쯤 제자들도 나이가 들어 그 맛을 제대로 알았으면.
시인,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