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자신에게 빛난다는 표현을 사용할 때는 언제일까? 일반적으로 빛난다는 표현은 사물이 반짝거리거나 윤이 날 때, 밝고 환하게 비칠 때, 누군가의 행복한 순간, 자랑스러운 이야기 혹은 멋있었던 경험 등을 나타내는 말로 자주 사용되곤 한다. 나는 이러한 의미가 담긴 말들을 하나로 모아 간추린다면 빛나는 순간이란 ‘어떤 사건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던 가치를 찾았을 때’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가 등 자신만의 가치를 찾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빛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에게 있어 가장 빛나던 순간은 작년 2학기 전공 실기에서 A0를 받았던 때라고 말할 수 있다.
고등학교에서 친한 친구들과 각자의 길을 찾아 이별하고 대학에 입학한 뒤 나는 내가 원하는 음악교육과에 들어왔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앞으로의 진로를 어떻게 가꾸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불안함도 있었다. 더욱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시험을 치기 위해서 피아노를 연습하고 대학교에 입학했기에 나의 미숙한 실력은 항상 걱정거리였다. 더욱이 주변 친구들의 연주를 의식해서 피아노 연주에 자존감이 매우 낮았다. 이전까지 음악 교사가 되고 싶다는 목표 하나만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였으나 전공과목과 실기시험이라는 거대한 벽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느껴졌다. 이러한 생각들은 나의 연주를 소극적으로 만들었고 연습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더욱이 감정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잘 표현하지 않았기에 스트레스가 쌓여 쉽게 화를 낼 때가 많아졌고 그 때문에 나는 끝나지 않는 터널 속에 갇혀 무작정 걸어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긴 터널이라도 끝을 향하는 빛은 있는 법이라는 걸까. 전공 교수님은 항상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의 연주가 아름답다고,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하시며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셨다. 그런 교수님 덕분에 피아노 연습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일단 무엇이든 해보자고 다짐했다. 이후 나는 연습이 끝나면 이를 녹음해서 듣고 내가 부족한 부분을 고민하고 일지를 작성하거나 다른 연주자의 영상을 찾아보며 나의 연주를 꾸준히 고쳐나갔다. 시간이 흘러 실기시험 날짜가 다가왔다. 그동안의 연습을 통해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실하지 않아 약간의 불안함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쌓아온 연습과 교수님의 말씀을 믿고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것과 자신감을 담아서 당당하게 연주로 표현하고자 생각하며 시험을 치르러 갔다.
적막한 시험장에 들어서서 심사위원의 차가운 눈빛을 뒤로하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눈앞의 수없이 많은 건반을 바라보며 ‘틀리면 어떡하지?’, ‘연주 중에 실수할 것 같다.’와 같이 걱정에 사로잡혀 연주를 시작하였고 내 눈은 바쁘게 손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지금 나의 연주가 아슬아슬하고 불안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 불완전하고 아쉬운 연주가 계속 이어질 찰나, 문득 생각을 버리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머릿속을 지나갔고 이내 나는 몸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듯이 생각하고 있던 모든 걱정을 다 털어내고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연주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었다. 또한 건반만을 바라보던 눈을 고개를 들어서 주변을 바라보며 선율이 여유로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연주를 마치고 시험장을 나왔을 때 전공 교수님에게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내가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좋았고 그 누구보다 나의 연주가 마음에 든다는 교수님의 메시지를 보고 그동안의 불안과 긴장감이 풀리면서 눈물이 흘렀다. 걱정하고 있던 실기 연주에서 나는 사실 누구보다 빛났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2학기 전공 실기에서 A0를 받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성적을 잘 받아서 좋은 기분과는 별개로 내가 보여준 연주가 남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 실기를 통해 나는 나의 내면의 소중한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학점이 단순한 점수의 높고 낮음을 나타낼지라도 이를 통해서 나의 연주가 누구보다 훨씬 빛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소중한 순간이다. 조개의 표면은 울퉁불퉁하고 거칠지만 아름다운 진주를 그 속에 품고 있다. 나의 가치 또한 조개와 같다고 생각한다. 나를 응원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자존심을 되찾았을 때 나는 누구보다 세상에서 가장 빛났다.
김범영(음악교육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