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았다. 아이들의 순수한 행동이 전부 눈에 들어왔지만, 한 장면이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트로트 가수 장윤정의 아들인 연우가 나온 장면이었다. 연우는 심부름하던 중 사랑의 모금함을 발견했다. “이게 뭐예요?”라는 질문에 직원은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거다.”라고 답했다. 연우는 지폐를 꺼내 심부름 값을 뺀 나머지를 넣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써주세요.” 나는 순수하고 선한 모습이 귀여우면서 한편으로 따끔했다. 남을 위한 일은 나이가 들면 더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기부란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가진 걸 나누는 행위이다. 내가 가진 현금, 식품, 물품, 재능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나라가 살기 좋다고 모든 사람이 잘사는 건 아니다. 소외계층, 무연고 아동, 분쟁 지역 주민 등 사회이면은 여전히 어둡다. 세이브 더 칠드런, 유니세프, 월드비전 같은 구호 단체가 만들어지는 이유다. 모두가 그들을 돕는 일에 동참하면 좋겠지만, 대가 없는 일에 나서긴 어렵다.
지난 2월, 코로나19 사태가 ‘심각’ 단계로 격상됐다. 모든 국민이 외출을 꺼렸고 단체 생활은 제재가 가해졌다. 일상생활이 멈춰 자연스럽게 경제도 어려워졌다. 어려운 상황 속 수많은 기업과 연예인은 기부 행렬을 펼쳤다. 하루에 몇십억이 모이는 기부액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 금액이다. 그러나 돈이 모일수록 엉뚱한 분노가 표출됐다. 기부에 동참하지 않은 연예인들을 향한 질타가 대표적이다. 어느샌가 기부를 하지 않으면 죄인이 되었다. 심지어 100만 원을 기부한 연예인은 기부액이 적다는 이유로 악플에 시달렸다. 내가 하지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할 필요가 있을까? 기부가 타인의 강요로 이뤄질 필요는 없다.
이런 선한 마음을 악용하는 사례도 물론 존재한다. 2014년 ‘새희망씨앗’이라는 후원단체는 소외계층인 아동·청소년을 돕는다고 128억 원을 기부금 명목으로 후원받았다. 실제로 기부된 금액은 2억밖에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회장의 사리사욕에 쓰였다. 최근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모은 모금액 운영도 문제로 불거졌다. 이용수 할머니는 모금한 돈이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쓰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상세히 공개하지 않는다. 좋은 곳에 쓰이길 바랐던 돈이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안일한 기부 방식을 바꿔야 할 때가 왔다.
삶은 순환 구조를 가진다고 한다. 어제까지 어려움이 없던 사람도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다. 사람은 살면서 한 번쯤 예상치 못한 일을 겪기 마련이다. 내가 준 도움이 언젠가 부메랑처럼 돌아오기도 한다. 어쩌면 기부는 남을 위한 일이기 전에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내가 가진 작은 재능과 물품이 그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으로 바뀐다.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을 아끼면 타인이 그토록 필요로 하는 양식이 되기도 한다. 벼랑 끝에 다다랐을 때 누군가 내밀어 준 손 하나가 사람을 살린다. 내 작은 움직임이 누군가를 붙잡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