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꽃을 지켜야 할 시간
[정일근의 발밤발밤] 꽃을 지켜야 할 시간
  • 언론출판원
  • 승인 2023.05.10 13: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월 초입에 여름 장맛비 같은 세찬 비가 월영캠퍼스를 휩쓸고 갔다. 그 때문인지 우리 곁의 숲이 더욱 무성해진 모습이다. 주변으로 예년보다 빨리 성하(盛夏)의 모습이 벌써 펼쳐진다. 봄 속에서 여름이 일어나는 입하(立夏)가 시작됐지만, 주변 풍경은 여름 분위기다. ‘출입 통제’의 완장을 차고 팔짱을 낀, 무리 지은 숲을 바라보면 갑자기 오싹해진다. 저 숲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춘서’(春序)라는 옛말이 있다. 봄꽃이 피는 순서를 옛사람은 그렇게 불렀다. 이는 봄이 오는 순서의 다름 아니었다. 올해는 춘서가 완전히 무너졌다. 4월에 피던 꽃들이 3월에 찾아와 피었다. 5월에 피는 꽃들이 4월로 몰려와 우르르 피었다. 이러다 계절의 여왕으로 불렀던 5월에 무슨 꽃이 남아 있을까 싶다. 사실 이건 꽃의 잘못이 아니다. 사람의 죄다. 우리가 지구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병이기도 하다. 기억해야 한다. 죄에는 반드시 벌이 따른다는 것을.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벚꽃 개화 시기가 100년 전에 비해 한 달이나 빨라졌다. 내가 어릴 적 전국적인 진해의 벚꽃 잔치인 ‘군항제’는 벚꽃의 개화 시기에 맞춰 4월 5일에 시작했다. 그 시작이 자꾸 앞당겨지다가 올해는 3월 25일에 시작했다 4월 3일에 막을 내렸다. 옛날 같으면 군항제를 시작하기 전에 끝이 난 셈이다.
  생각해보자. 그러면 다시 100년 후엔 어떻게 변할까? 학자들은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100년 뒤 진해의 벚꽃이 지금보다 한 달 가까이 일찍 피어 매년 열리는 ‘군항제’가 2월 말에 열릴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더 최악인 경우는 벚꽃이 피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꽃도 꽃축제도 모두 사라진다는 끔찍한 경고였다.

  어디 벚꽃뿐이랴. 모든 꽃이 사라진다면 그 세상엔 사람이 먼저 사라지고 없을지 모른다. 꽃에 민감한 곤충이 벌과 나비다. 나는 아직 3, 4월의 꽃에 그 많았던 벌, 나비가 찾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벌의 실종은 아주 위험한 현상이다. 세계식량기구(FAO)에서는 지구에서 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할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꿀벌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지난 2010년 이후 미국 내 꿀벌 25%가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농촌진흥청 조사 결과 전국 360여 개 양봉농가의 절반 이상에서 여왕벌 양성군 비율이 10% 미만이었다. 여왕벌이 없으면 벌이 모이지 않는다. 이는 양봉과 토종벌인 한봉의 개체 수 급감을 나타낸다. 꿀벌이 없으면 꿀도 같이 없어진다. 꿀벌을 지키기 위해 지구를 지키기 위해 결국은 우리 자신을 위해 꽃을 지켜야 할 시간이다.

  흔하다고 꽃이 아니다. 귀하니까 꽃이다. 꽃은 청춘의 상징이다. 지금 우리 학우들의 나이가 꽃 같은 나이다. 꽃의 목적은 열매에 있다. 청춘의 꽃은 결실이 목적이다. 대학 시절이 꽃의 시간이다. 꽃마다 향기로운 과일을 달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무의 꽃이든 대학의 꽃이든 그 꽃을 지키기 위해 할 일이 많은 5월이다.

석좌교수, 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 (경남대학교)
  • 대표전화 : (055)249-2929, 249-2945
  • 팩스 : 0505-999-211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은상
  • 명칭 : 경남대학보사
  • 제호 : 경남대학보
  • 발행일 : 1957-03-20
  • 발행인 : 박재규
  • 편집인 : 박재규
  • 경남대학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2024 경남대학보.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