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내가 너무 못마땅해 내 기준에 못 미치는 날이 되고 어떤 날은 만족스럽게 느껴지는 날이 된다. 생각해 보면, 잘 해내 칭찬받는 날에는 날 좋아하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미워했다. 내 최고의 모습을 진짜 모습이라 착각해 그렇지 않은 모습을 혐오하고 부인했다. 그런 내가 딛고 일어서기 시작한 계기는 작은 변화였다.
스무 살이 되고 쇼핑을 좋아하게 된 건 두려움 때문이었다. 유튜브나 SNS를 켜면 연예인, 인플루언서들이 다양한 자기 관리템을 소개했다. 내가 보는 세상 속의 그들이 평균이라 생각해 ‘나는 왜 저렇지 못하지?’라는 두려움에 쇼핑을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세일 때는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물품을 다 사곤 했다.
취향을 알아가는 시간은 내게 도움이 됐지만 나를 가꾸는 것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닌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집념으로 변해갔다. 분명 내 취향을 찾는 건데 타인에게 맞추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좁은 기숙사 방에 물건들이 쌓여갈수록 어질러진 방은 스트레스가 됐고, 집중력이 흩어져 제대로 쉬기도 어려웠다. 그저 나한테 맞지 않는 건데 잘못된 선택을 한 것처럼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찾아보고 또 다른 취향으로 나를 꾸미기 급급했다.
이런 쳇바퀴에서 벗어나게 해준 건 역설스럽게도 유튜브 영상이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유튜버, 많은 잡동사니로 채운 방에 사는 유튜버도 있었다. 다른 취향이지만, 하나는 같았다. 집이 ‘나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후에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이건 나중에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정리를 어렵게 만들었지만 지금 당장 쓰지 않을 것들은 안 보이는 곳에 두거나 버렸다. 방이 정돈되는 만큼 복잡했던 마음도 정리됐다. 짐이 다 수납돼 있으니 방에 오면 느꼈던 답답함도 사라졌다. 자신을 챙기고 바라보기에 좋은 환경이 된 것이다.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만든 나만을 위한 공간이 생기자 나를 챙길 여유가 생겼다. 내 취향이 아니었던 것들을 정리하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완벽해야 할까?’ 방에서 치웠던 물건들은 어쩌면 나중에 가서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가서 다른 제품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조금 부족하지만, 삶에 지장이 가지는 않는다. 쇼핑도 마찬가지였다. SNS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날렵한 턱선, 얇은 몸매, 예쁜 화장품 등 다 갖추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달리 이러한 것들이 2차 수입으로 이어지는 사람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들과 같아지면 내가 완벽해지는 걸까?’에 대한 답은 ‘아니다.’였다.
그 뒤로 나는 ‘내려놓기’를 시작했다. ‘완벽하면 좋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강박이 ‘꼭 완벽해야만 하나?’라는 반문으로 서서히 풀렸다. 아직도 세상에 지는 날이 너무 많지만 이제는 강박 속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안다.
윤희정 (수학교육과·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