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2929] 교복 주머니에서 나온 쪽지에 답장할 필요는 없더라
[톡톡2929] 교복 주머니에서 나온 쪽지에 답장할 필요는 없더라
  • 박수진 기자
  • 승인 2026.09.16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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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 정리를 하다 우연히 옷장 속에서 빛바랜 교복을 발견했다.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곱게 접힌 쪽지 하나가 나왔다. 중학교 시절 친구가 건넨 쪽지였다. 앳된 글씨를 한참 들여다봤다.

  ‘국어 수업이 지루하다. 오늘 급식이 맛없다. 중간고사를 망쳤다. 친구랑 싸웠다.’ 진부한 이야기들뿐이지만, 그리웠다. 그때의 시간과 추억, 손끝이 떨릴 만큼 반가운 기억이었다. 답장을 써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밀려왔지만 이내 알았다. 교복 주머니에서 나온 쪽지에 다시 답장할 필요는 없더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며 이전의 많은 관계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옅어진다. 매일 같은 교실에서 눈을 마주치던 친구도, 특별한 날 한 번씩 연락하다가 어느새 안부조차 묻지 않는 사이가 된다.

  오랜만에 뜬 생일 알림을 보고도 축하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조용히 화면을 꺼버린 적도 있다. 때로는 관계를 소홀히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SNS 창을 열었다가도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조용히 닫아버리기도 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분명히 서로 못 할 말까지 해가던, 자연스럽고 즐거웠던 사이인데, 이제는 안부 한마디조차 괜스레 어색하게 느껴진다. 아마 낯선 강의실과 새로운 얼굴들 사이에 있다면, 이 아쉬움과 그리움이 조금은 낯익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특별한 사건 때문에 멀어진 관계는 많지 않았다. 싸운 것도 아니고, 서로에게 실망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만나던 장소가 달라지고, 하루를 보내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렇게 가까웠던 사이가 별다른 이유도 없이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관계에도 각자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은 게 있다.

  관계가 끝났다고 그 관계가 실패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은근히 오래 지속되는 관계만이 ‘진짜’였고, 천천히 멀어진 관계는 어딘가 부족했던 관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관계에도 수명이 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듯, 인연도 저마다의 계절을 살다 간다. 어떤 인연은 한 학기, 어떤 인연은 몇 년, 어떤 인연은 평생을 간다.

  길이로 그 시절 우정의 진심을 재단할 수는 없다. 중학교 때 나눈 우정이 지금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때 우리가 나눈 마음까지 거짓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 지나간 쪽지에 굳이 답장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그 대신 오늘 그리고 앞으로 새롭게 다가오는 얼굴들에 마음을 열어주자.

  과거의 쪽지는 주머니에만 넣어두고, 지금 눈앞의 인연들에 정성을 쏟는 것. 흘러간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그 그리움 때문에 지금 만나는 인연을 놓치지는 말자.

김경건(게임학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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