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2929] 비어 있기에 얻을 수 있는 것
[톡톡2929] 비어 있기에 얻을 수 있는 것
  • 박수진 기자
  • 승인 2026.09.11 15: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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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백의 미’라는 말이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우기보다 비워둠으로써 오히려 아름다움이 완성된다는 뜻이다. 동양화를 떠올려보면 이 말의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산과 나무, 인물이 화폭 일부에만 자리하고 있고 나머지는 텅 비어 있다. 처음에는 미완성처럼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여백이야말로 화가가 가장 깊게 고민하여 남겨둔 자리인 것이다.

  여백은 그리다 만 실패의 흔적이 아니다. 무엇을 그릴지 못지않게 무엇을 그리지 않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다. 화가는 여백을 통해 보는 이에게 마음껏 상상할 자유를 내어준다. 빈 공간을 부드러운 물결로 채우든, 그저 비어 있는 채로 두든 그것은 온전히 당신의 몫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여백과 자유가 참 닮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은 대개 공백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생의 시간표는 촘촘하고,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연속된다. 나 또한 하루를 빈틈없이 채우는 것이 성실함의 증거라 믿어왔다. 일상의 틈이 생기면 오히려 불안해지곤 했다. 하지만 여백의 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비어 있는 시간을 대하는 마음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었다. 채우지 않은 시간은 그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정해지지 않은 가능성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백이 당신에게 상상의 자유를 선물하듯, 삶의 여백은 자신에게 선택의 자유를 준다. 그림이 빈틈없이 그려진 날에는 다음 행동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답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시간 앞에서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게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 물음에 답하고 행동하는 과정 자체에서 자유를 실감할 수 있다.

  물론 여백을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화가가 빈 공간을 남기기 위해 더욱 신중하게 붓을 들었듯, 삶의 여백 역시 저절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갑자기 주어진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의미 없는 정보로 그 시간을 채워버리곤 한다. 자유가 주어져도 그것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셈이다. 어쩌면 우리는 공백이 주는 낯선 불확실함을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하루의 한 조각을 비워두려 애쓴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은 채 마음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거나, 읽다 만 책을 펼치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눈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그 시간이야말로 나를 가장 온전히 채워가는 순간임을 점차 알 수 있었다.

  여백의 미는 비워냄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는 자신을 채워 나갈 자유가 담겨 있다. 삶의 모든 순간을 여유 없이 메우기보다, 곳곳에 여백을 남겨두는 용기가 필요한 이유다. 그 여백이야말로 내가 나답게 숨 쉬고, 진짜 자유를 발견하게 되는 가장 눈부신 자리일 것이니까.

정채윤(간호학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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