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온다. 바람이 그 변화를 먼저 안다. 한낮의 볕은 아직 뜨겁지만 아침저녁 공기에는 서늘한 기척이 묻어난다. 계절이 책장을 넘기고 있다. 청년이여, 우리도 책을 펼 시간이다. 사실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를 보고 산다. 손안의 화면에는 쉬지 않고 뉴스 속보가 뜨고 영상이 흐른다. 누군가의 말이 밀려오고, 또 다른 말이 그것을 덮는다. 하지만 정보는 넘쳐나는데 생각할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많이 아는 것과 깊이 아는 것은 다르다.
책에는 느림의 미학이 있다. 나는 그 느림이 좋다. 마음을 치는 한 문장은 시간을 멈추게 한다. 밑줄을 긋게 한다. 책장을 덮고 잠시 먼 곳을 바라보게 한다. 그 순간 비로소 생각이 시작된다. 독서는 단순히 글자를 읽는 일이 아니다. 세상을 읽는 일이다. 그리고 끝내는 자기 자신을 읽고 생각하는 일이다.
청년의 오늘과 내일은 실로 만만하지 않다. 누구에게든 취업의 좁은 문이 기다린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취업 뒤에는 생존이 기다린다. 미래는 늘 무겁다. 세상은 자꾸 서두르라고 한다. 남보다 빨리 가라고 한다. 뒤처지면 실패한 것처럼 겁을 준다. 하지만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다. 방향이다.
책은 바로 그 방향을 묻는다. 남보다 앞설 것인가보다 어떤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무엇을 가질 것인가보다 무엇을 끝내 지킬 것인가. 좋은 책 한 권에는 한 사람의 생애가 들어 있다. 사랑이 있고 실패가 있다. 절망이 있고 다시 일어서는 새벽이 있다.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수많은 날들이 그 안에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 사람은 한 번의 생으로 여러 생을 산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과도 마주 앉을 수 있다. 수백 년 전의 질문을 오늘의 질문으로 받을 수 있다. 누군가 평생을 걸어 도착한 생각을 우리는 한 권의 책으로 만난다. 이보다 큰 행운이 어디 있겠는가. 독서는 타인을 이해하는 연습이기도 하다. 나와 다른 생각 앞에 오래 앉아보는 일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일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쉽게 미워하지 않는다.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
청년에게 가장 필요한 재산은 생각하는 힘이다. 많은 꿈을 포기할 수 있다. 직장은 바뀔 수 있다. 유행은 지나간다. 그러나 자기 생각하는 힘을 가진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책은 그 힘을 만든다. 많이 읽지 않아도 좋다. 하루 열 쪽이면 충분하다. 한 달에 한 권이면 또 어떠랴. 중요한 것은 책을 곁에 두는 일이다. 습관이 되고 버릇이 돼야 한다. 때로는 한 권보다 한 문장이 사람을 살린다. 어느 날 우연히 책에서 만난 한 문장이 길을 잃은 사람에게 이정표가 된다. 절망한 사람에게 작은 불빛이 된다. 포기하려는 사람의 어깨를 조용히 붙잡아준다.
청년이여, 가을이다. 책을 펴자. 세상이 어려울수록 책을 펴자. 앞날이 불투명할수록 책을 펴자.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기 위해 책을 펴자. 가을은 짧다. 청춘은 더 짧다. 그러나 청춘에 읽은 한 권의 책은 오래 남는다. 그 안에서 만난 한 문장은 가을을 지나 겨울까지 따라온다. 먼 훗날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 실은 책이 조용히 나를 한 장씩 써 내려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내가 완성돼 가고 있었다는 것을.
석좌교수, 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