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풀 꺾이고 있다. 길었던 여름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입추를 지났고, 처서가 가깝다. 아침저녁 바람에는 조금씩 가을 냄새가 묻어나는 것 같다. 여름이 시작될 때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뜨거운 햇볕도 그랬다. 긴 7, 8월 방학도 그랬다. 하지만 계절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느새 여름도 제 뒷모습을 바라볼 때가 되었다.
불교에는 시간을 말하는 재미있는 단위가 있다. 가장 짧은 시간 가운데 하나가 ‘찰나’다. 『구사론』의 계산을 따르면 한 찰나는 약 75분의 1초다. 눈을 깜박이기도 어려운 시간이다. 그 반대편에는 ‘겁’이 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긴 시간이다. 불교에서는 겁을 숫자로 설명하기보다 비유로 말한다.
거대한 성 안을 겨자씨로 가득 채운다. 아주 오랜 세월에 한 번씩 겨자씨 한 알을 꺼낸다. 마침내 그 많은 겨자씨가 모두 사라져도 한 겁의 시간은 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이런 비유도 있다. 거대한 바위가 있다. 장수천인이 아주 오랜 세월에 한 번씩 내려와 부드러운 옷자락으로 바위를 스친다. 그렇게 해서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질 만큼 긴 시간이 겁이다.
찰나는 짧다. 겁은 길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는 언제나 그 사이에 정해져 있다. 청춘들에게 시간은 특히 중요하다. 대학 시절은 길어 보인다. 1학년 때는 졸업이 먼 미래처럼 느껴진다. 시험도 다음 달의 일 같다. 취업도 아직 남의 일 같다. 꿈을 이루는 일도 천천히 해도 될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간다. 한 학기가 지나간다. 방학이 끝난다. 계절이 바뀐다. 친구가 졸업한다. 어느 날 자신도 졸업사진을 찍는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순간은 단 한순간도 없다. 휴대전화를 본다고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스스로 내일로 미룬다. 그러면서 조금만 더 쉬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작은 찰나들이 모여 한 시간이 된다. 하루가 된다. 한 학기가 된다.
꿈도 찰나에서 시작한다. 책 한 쪽을 읽는 시간. 영어 단어 하나를 외우는 시간. 친구에게 먼저 인사하는 시간.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하는 시간. 노트를 펴고 시 한 줄을 필사해 보는 시간. 그 짧은 순간들이 사람을 바꾼다. 큰일은 대개 작은 시간에서 시작한다. 불교에서는 한 생각을 ‘일념’이라 부른다. 한 생각이 마음을 바꾼다. 마음이 행동을 바꾼다. 행동이 하루를 바꾼다. 하루가 쌓여 인생이 된다.
가을이 오고 있다. 새 학기도 다가온다. 청춘들에게 새 학기는 새로운 시간이기도 하다. 시간을 아낀다는 것은 바쁘게만 사는 일이 아니다. 쓸데없이 흘려보내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 내가 정말 원하는 곳에 시간을 쓰는 일이다. 공부할 때는 공부하자. 사랑할 때는 사랑하자. 시간은 열심히 쓰는 자의 몫이다. 그 열심이 내일을 만든다.
여름은 다시 오겠지만 지금의 여름은 다시 오지 않는다. 대학 시절도 그렇다. 겁처럼 긴 인생을 꿈꾸더라도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시간은 언제나 찰나다. 그러니 오늘의 찰나를 아껴 쓰자. 지금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자. 인생은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사용한 찰나들의 합이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이 아니다. 여름을 뜨겁게 보낸 사람에게 찬란한 가을이 오는 것이다.
석좌교수, 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