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3·15청년문학상 현상 공모 - 소설 부문 당선작 '호호'
제7회 3·15청년문학상 현상 공모 - 소설 부문 당선작 '호호'
  • 언론출판원
  • 승인 2026.07.2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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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문 당선: 김경민(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4)

 

호호

 

  세상에, 너 호호야?
 
  나는 작은 철심 조각들이 뭉쳐진 덩어리를 보며 말했다. 조각들은 몇 분 동안 힘겹게 꿈틀대더니 서로에게 들러붙어 장난감 로봇 같은 모습을 띠었다. 이것은 호호의 몸속에 있던 것들로, 삼 년 전 다리 골절 수술 때 삽입했던 티타늄이었다. 불에 타지 않는 재질이라 화장 후 하얀 뼈와 함께 섞여 나왔다.

  따로 챙겨 드릴까요?

  화장터 직원의 물음에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직원은 조그만 지퍼백에 철심들을 담아 주었다. 도시 외곽의 한적한 곳에 자리한 동물 화장장에서 호호는 작은 꿀단지만 한 상아색 유골함에 담겨 나왔다. 장례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호호의 티타늄 조각은 내 바지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다. 

  집에 돌아와 조각을 지퍼백에서 꺼내어 가만 만져보다가, 유골함과 함께 책상 위에 올려둔 뒤 잠에 들었다. 새벽 밤, 건조한 공기에 마른기침을 하며 눈을 떴을 때 방은 짙은 어둠으로 덮여 있었다. 손을 더듬어 침대 바로 옆에 위치한 스탠드 조명 스위치를 켜자 노란 불빛이 촛불처럼 피어올랐다. 무심코 상체를 일으켜 책상 위를 올려다보았을 때 무언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지퍼백에서 꺼내어 둔 철심 조각들이 느릿하게, 그러나 분명한 의지를 가진 것처럼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조각들은 서로에게 꾸물꾸물 다가가 하나의 형체를 이루었다. 세로로 세워진 긴 슬레이트 판을 중심으로 나사 네 개가 다리처럼 아래쪽에 붙었고 위로는 가운데가 뚫린 둥근 모양의 조각이 붙어 마치 눈처럼 보였다. 적당한 자리를 찾지 못한 나머지 조각들은 뭉쳐진 형태 옆에 흐트러져 있었다. 

  나는 딸꾹질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그것들이 합쳐지는 과정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완성된 형체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호호가 내쉬던, 약간의 쇳소리가 섞인 콧바람 소리였다. 

  부드러운 털도, 촉촉한 코도, 내 손등을 핥던 분홍빛 혓바닥도 없었지만 이건 분명 호호였다. 나는 허술한 장난감 모형처럼 완성된 호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호호가 책상 위를 천천히 기듯이 다가오다 기우뚱 넘어졌다. 섣불리 손을 대면 부서질 것 같아 얇은 쇠젓가락을 가져와 일으켜 주었다. 호호는 젓가락에 판을 기대며 힘겹게 일어섰다. 젓가락을 가까이 잡은 손끝에 티타늄 조각이 닿자 순간 차가운 감촉이 스쳤다. 간신히 일어난 호호는 다가오기를 멈추고 다시 느리게 뒷걸음칠 치더니 유골함 옆에 자리를 잡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어떤 응답을 듣기를 바라며 계속 말을 걸었지만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둥근 티타늄 조각이 빙글빙글 돌아가거나 다리처럼 생긴 나사로 바닥을 툭툭 두드릴 뿐이었다. 호호는 조각을 조금씩 움직이는 것으로 내 말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이제 아프지는 않아?

  살아 있을 때 슬개골 탈구와 여러 관절 질환을 앓으며 고생하던 호호였다. 몸이 작고 허약해 수술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고심 끝에 딱 한 번 했던 골절 수술에서 쓰인 조각이 이렇게 다시 호호로 돌아오다니. 나는 그 수술을 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수술 이후 호호는 얼마간 산책도 무리 없이 다닐 수 있었다. 

  나는 호호와 합쳐지지 못한 나머지 조각들을 지퍼백 안에 다시 넣고 면으로 된 티코스터를 호호 앞에 두었다. 차고 딱딱한 마룻바닥을 싫어했던 호호였다. 책상의 딱딱한 면이 불편할 것 같았다. 책상 옆 저상형 침대 아래쪽에는 여전히 호호가 쓰던 분홍색 방석이 보풀이 일어난 채로 놓여 있었다. 나는 호호 가까이 티코스터를 밀며 손끝으로 그 위를 톡톡 두드렸다. 호호의 나사 조각이 빙그르 돌아갔다. 나는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로 히죽 웃었다. 


  잠든 사이에 혹여 호호가 부서져 버릴까 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웠다가도 상체를 들어 책상 위를 확인하고 다시 눕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뒤척이며 밤을 지새우다 아침이 되어 바라본 호호는 어제의 모습 그대로, 티코스터 위에 올라가 있었다. 내가 깜빡 잠든 사이 힘겹게 자리를 옮겼을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곧 출근해야 하는데, 호호를 이대로 두고 가도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다. 아르바이트생에게는 휴가도, 연차도 없었다. 잘못 건드렸다가 부서질 것만 같은 호호를 밖으로 갖고 나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중력을 간신히 거스르며 쌓여 있는 호호의 조각들은 고요해 보였다. 저 힘이 무너지면 호호는 사라지는 걸까. 나는 건조한 손바닥으로 얼굴을 비벼 마른세수를 했다. 그리고 결국 책상 위 스탠드 조명을 약하게 틀어둔 뒤 홈캠 화면을 호호 앞으로 바짝 붙여 놓은 후 나갈 준비를 했다. 현관문을 열자 밤새 쌓인 찬 공기가 목덜미를 거칠게 파고들었다. 

  일 년 전쯤부터 나는 피시방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음식점, 콜센터, 편의점, 카페, 예식장 등 다양한 곳에서 바쁘게 일했다. 하루에 두,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하는 날도 많았다. 그러나 호호가 스스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나서부터는 전보다 일을 줄여 호호를 간병하고 돌보는 일에 시간을 쏟았다. 

  출근하니 흡연실의 재떨이를 비우고 있는 다은의 모습이 보였다. 밝은 탈색모를 양 갈래로 땋은 다은이 나를 발견하고 어색하게 손을 들며 인사했다. 어제 호호의 장례 때문에 하루를 쉬었는데 그 일로 내 안색을 살피는 것 같았다. 다은에게는 가끔 호호의 사진을 보여주곤 했었다. 호호의 한쪽 눈은 실명되어 비눗물처럼 탁한 빛을 띠었는데 다은은 그런 모습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솜뭉치다 솜뭉치, 하며 호호의 사진을 휴대폰 액정 위로 쓰다듬었다. 

  나도 다은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한 뒤 각자 맡은 일을 시작했다. 이곳 피시방은 그동안 일해본 곳 중 특히 까다로운 편에 속했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오 층 상가 지하의 소규모 피시방에는 오후 시간에 일하는 직원이 나와 다은 둘 뿐이었는데, 사장은 어딘가에서 주기적으로 CCTV를 모니터링하며 우리가 근무시간 중 딴짓을 하지 않는지 감시했다. 잠깐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의자에 앉아 다리를 쉬고 있으면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 왔다. 

  ―근무 시간에 딴짓 금지.

  우리는 할 일을 다 마쳤거나 손님의 응대가 없을 때에도 계속 서 있어야 했다. 라면이나 음료를 쏟고 달아나는 사람도 많았기에 수많은 모니터 뒤에 얼굴을 숨기고 있는 그들을 지켜보기도 해야 했다. 다은은 사장이 가게에 나왔을 때 그의 휴대폰에 떠 있는 CCTV 녹화 화면을 확인하고 사각지대를 찾아 그곳에 작은 스툴을 두었다. 우리는 가끔 그 스툴에 앉아 번갈아 가며 쉬었다. 그마저도 의심스러워 사장이 전화를 걸어오면 다은은 주저 없이 욕을 내뱉었다. 

  소름 끼치는 새끼.

  동글동글한 얼굴에서 나오는 그 욕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아서 나는 속으로 웃음을 참곤 했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나보다 다섯 살 어린 다은의 얼굴은 무척이나 앳되어 보였다. 이 까다로운 일터에서 빨리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오로지 다은 때문이었다. 다은에게서는 익숙한 냄새가 났다. 약간의 쿰쿰한 옷 먼지 냄새 같은 것이었는데, 차갑고 외로운 방에서 나는 냄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고모 집에서 살고 있지만 고모와 살가운 사이는 아니라고 했던 다은의 말이 기억난다. 요즘엔 돈만 내면 다 갈 수 있다는 대학에 가지 않은 것도 나와 닮았다고 느껴져 동질감이 들었다. 

  이용 시간이 끝난 빈자리를 치우던 중 옆자리의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여럿 모여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모습이 모니터 화면을 꽉 채웠다. 하나, 둘, 셋 하는 자막과 함께 사람들이 그대로 일어섰다. 처음에는 두세 명씩 짝을 이뤄 시작했지만 점차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등을 맞대고 일어서는 연습으로 이어졌다. 나는 저 장면을 알고 있었다. 

  헤드폰을 쓰고 모니터 앞에 턱을 괴고 앉은 남자는 중요한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화면을 노려보았다. 그 표정이 자못 진지해 보였다. 나는 어떤 표정으로 저 영화를 보았지. 손에 들려 있는 물티슈가 허공에서 마르고 있었다. 아무것에도 닿지 않은 평평한 등이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허전했다. 


  칠 년 전 나는 고시원에 살며 낮에는 식당에서, 저녁부터 자정까지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사방이 벽으로 막힌 좁은 고시원 방은 시간 감각을 상실하게 했다. 일을 마친 후 좁은 침대에 쓰러지듯 잠들었다 깨어나면 바깥이 낮인지 밤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집에서 나온 후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고시원이 겨우였다. 나는 자립 청소년이었고, 내가 알고 지내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은 다 나와 처지가 비슷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집으로 생활하던 시설에서 나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나를 가장 많이 도와준 건 지수 언니였다. 지수 언니는 나보다 세 살 많았고, 같은 시설에서 지냈었다. 언니는 나보다 먼저 자립한 사람으로서 부동산 계약하는 방법과 이사할 때 주의할 점 같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언니는 대학 등록금을 모으기 위해 바쁘게 살았다. 낮에도 다른 일을 하면서 저녁에는 대학가 근처 주점에서 일했다. 언니는 영화를 배우고 싶어 했다. 그 계기는 언니가 호감을 갖고 있던 사람과의 대화로 시작되었다. 그는 같은 주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주점 근처 대학의 영상미디어과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언니는 나와 만날 때마다 온갖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늘어놓았다. 나는 언니 덕에 영화에는 상업적으로 유명한 영화와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영화가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언니가 대단해 보였다. 크게 좋아하는 것도, 마음을 쏟고 싶은 것도 없는 나와 달리 무언가에 저렇게 열정적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언니가 추천해 준 영화 파일들을 받아 와 몇 번 보긴 했지만 나는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이고 그렇지 않은 영화인지 알 수 없었다.

  언니와 다르게 나는 막연하게 돈을 벌고 있었다. 아끼며 살았고, 하루 종일 일만 했기에 통장에는 차곡차곡 돈이 모여갔다. 나는 그저 반복되는 매일을 살고 있었다. 손님 앞에서 고기를 굽고, 밑반찬과 상추를 채우고, 주방에서 불판을 박박 닦았다. 어느 날 편의점에서 냉장고에 음료를 채우다가 투명한 유리문에 비친 내 얼굴이 새삼 낯설게 보여 그 얼굴을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시설에서 정해준 학교, 배정받은 방, 계획표대로 나오는 밥, 집에 가면 늘 보던 사람들, 그렇게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일은 이제 끝이 났음을, 이제는 오롯이 나 혼자 나를 책임지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시리게 스며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언니를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도 언니처럼 미래를 위해 보다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았다. 베이킹을 배워볼까, 아니면 네일아트? 그런데 내게 손재주가 있었던가. 미술 점수는 늘 형편 없었는데. 대학을 가기에는 부담스럽고……. 그러다 알게 된 것이 편집이었다. 당시 유튜브에서는 브이로그가 한창 유행이었고, 공중파 TV에서만 보던 연예인들도 자신이 직접 만든 영상을 업로드했다. 배우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었고, 혼자서도 일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편집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학원에 등록한 사실을 알리자 언니는 무척 기뻐했다. 

  나중에 네가 내 영화 편집해 주면 되겠다. 

  언니의 그 말에 나는 내가 제대로 된 길을 찾은 것 같았다.

  어느 날 언니가 손에 과자 몇 봉지를 들고 고시원에 몰래 찾아왔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날 좁은 방 안에서 서로의 등을 맞대었다. 양쪽 어깨와 등을 잘 밀착시킨 후 중심을 잡고 일어서는 연습을 했다. 두 사람이 함께 앉아 있을 만한 바닥 공간이 협소해 우리는 침대 위에 앉았다. 나는 몸에 닿는 누군가의 체온에 나른한 기분을 느꼈다. 뱃속 어딘가가 간질거리고, 목 안이 살짝 뜨거워지는 듯했다. 괜히 기침이 나올 것 같아 마른침을 삼켰다.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는 언니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몇 번 어긋나다가 결국 등을 딱 붙인 채로 끙, 하고 일어섰다. 다리를 다 펴기도 전에 머리가 천장에 닿아 구부정한 자세가 되긴 했지만, 우리는 서로를 등진 채 됐다, 하고 웃었다. 한 사람도 겨우 누울 만한 크기의 침대에 언니가 풀썩 누워버리는 바람에 나는 침대 끝 모서리에 다리를 오므리고 앉았다. 언니의 하얀 종아리가 내 발에 닿았다. 

  <해피 아워>라는 영화를 봤는데, 어떤 워크숍 장면이 나오더라고. 사람들이 서로 등을 맞대고 일어서고, 상대방의 중심선을 따라 이동하고, 서로의 아랫배, 단전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는 거야.

  언니의 설명으로는 도무지 어떤 장면이고, 어떤 영화인지 잘 상상되지 않았다. 

  근데 이게, 사람이 많아질수록 힘들어지거든. 서로의 중심에 맞춰서 일어서고 움직이는 게. 그런데 나는……

  언니는 말끝을 흐리며 벌떡 일어나 바닥에 내려가 상체를 침대에 기댄 채 과자 한 봉지를 뜯었다. 두꺼운 감자칩 과자가 파삭 부서지며 으깨지는 소리가 났다. 

  상상이 안 되는 거야. 누군가랑 등을 붙이고 있는 내 모습이.

  그때 언니의 얼굴은 깊은 바닷속에 오랫동안 가라앉아 숨을 참고 있는 사람의 것 같았다. 처음 마주한 언니의 외로움이 너무 멀고 까마득하게 느껴져 나는 그 바다에 손을 뻗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날 등에 닿았던 언니의 작은 체구와 어깨뼈의 감각이 오랫동안 등에 남아 있었다. 나중에 찾아본 그 영화는 러닝타임이 무려 다섯 시간이 넘었다. 중간중간 끊어 보긴 했지만 영화를 보는 긴 시간 동안 나는 몇 번이나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 가만히 앞으로 흘러가는 줄 알았던 나의 시간이 엉망진창으로 흔들리는 것 같았다.

  언니는 대학 등록금 명목으로 나에게 팔백만 원을 빌려 간 뒤 연락을 끊었다. 그 숫자를 떠올릴수록 애초에 천만 원쯤이 필요했던 게 아닐지 생각했다. 팔백이라는 애매한 숫자가 어쩌면 언니의 망설임일지도 몰랐다. 팔백만 원은 나에게 무척이나 큰돈이었고, 처음 느껴보는 사람에 대한 배신감에 속이 뒤틀렸지만 등을 맞댔던 사람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그즈음 편집 프로그램을 공부하던 것도 시들해졌다. 고시원에서 원룸으로 이사하는 데 보증금이 빠듯하여 학원에 추가 등록하는 것이 꺼려졌기 때문도 있었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찍은 영상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일이 그때의 나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멍하니 옆 사람의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다은이었다. 손에는 핫도그와 라면이 담긴 트레이가 들려 있었다.

  언니?

  주변의 인기척에 남자가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황급히 시선을 돌려 손에 들고 있던 물티슈로 책상을 닦은 뒤 카운터로 돌아갔다. 곁눈질로 나를 바라보는 다은의 시선을 피하며 괜히 카운터 위의 먼지를 닦았다. 다은이 든 쟁반 위 젓가락을 보자 호호가 떠올라 마음이 불안해졌다. 당장이라도 집에 가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호호를 봐줘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두고 오면 안 되었던 건……

  나는 수시로 휴대폰을 열어 홈캠 화면을 확인했다. 흰 털을 날리며 돌아다니는 호호 대신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티타늄 조각의 호호가 보였다. 계속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나에게 다은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언니, 무슨 일 있어요?

  다은은 얼그레이 티백을 머그잔에 담고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허전한 등 뒤와 텅 비어버린 집의 공허함이 티백에서 찻물이 우러나듯 몸 안에서 서서히 퍼져나갔다. 마땅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사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얼마 채워지지 않은 좌석을 빙 둘러본 후 카운터 쪽으로 다가왔다. 그가 불쑥 찾아오는 일은 자주 있었기에 나와 다은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의 방문은 불시 검문 같은 성격이어서 볼일만 보고 금방 돌아가기도 했고, 냉장고에서 음료 몇 개를 집어 들고 그대로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우리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의례처럼 별일 없지? 하고 인사했다. 그리고 흡연실과 조리 공간을 쭉 휘둘러보았다. 사장은 포스기로 음료 몇 개를 찍은 뒤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종이봉투에 담았다. 마실 음료를 가지러 온 모양이었다. 금방 나갈 태세를 갖춘 그를 보고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가 옆에 있으면 일하는 데 괜히 더 신경이 쓰였다. 카운터 안을 어슬렁거리며 이것저것 살펴보던 그는 출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녕히 가세요, 하고 인사하는데 그가 돌연 몸을 돌려 나와 다은을 훑어보았다.

  좀 웃고 있어라. 손님들 보기 좋게.

  그의 시선이 내 얼굴을 지나자 몸 전체가 밋밋해지는 것 같았다. 옆을 바라보니 다은의 얼굴도 반쯤 지워진 것처럼 흐려져 있었다. 


  유난히 손님이 없는 날이었다. 바쁘지 않아서인지 나는 자꾸만 휴대폰을 손에 쥐고 계속 홈캠을 확인하며 일했고, 이용권을 잘못 결제하거나 커피를 흘리는 등 잔 실수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다은이 묵묵히 나의 실수를 수습해 주었다. CCTV 화면에서 큰 문제로 보이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근무시간이 끝난 후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자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송이가 제법 굵었다. 뒤에서 따라 나오던 다은이 재채기를 했다. 

  나 때문에 힘들었지. 미안해, 내일부턴 안 그럴게. 

  쭈뼛거리며 말하는 나를 바라보던 다은은 운동화 코끝으로 바닥에 눌어붙은 전단지 하나를 긁어냈다. 축축한 바닥 위에 흩뿌려진 광고물 조각에 눈송이가 떨어지자 순식간에 녹아 사라졌다. 

  언니 솔내역 쪽으로 걸어가죠? 저도 오늘 그쪽에 볼 일이 있어서. 같이 가요.

  다은의 집은 이곳에서 반대 방향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역 근처에 몇 년 동안 공사하던 대형 쇼핑 센터가 완공되어 오픈했는데 그곳에 볼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살랑거리며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나란히 걸었다.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도 겨울의 저녁 하늘은 밤처럼 어두웠다. 까만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하얀 눈이 수명이 다해가는 오래된 스노우볼 속 눈보라처럼 힘없이 흔들거렸다. 


  호호를 처음 만난 날도 눈이 왔다. 언니가 사라진 뒤 나는 종종 혼자 영화를 보러 다녔다. 그리고 극장을 나올 때마다 그 영화에 대해 언니에게 이것저것 말하는 상상을 했다. 상상 속의 언니는 내가 하는 말을 묵묵히 듣기만 했고, 나는 그런 언니 앞에서 내 감상평을 잘난체하며 떠들었다. 언니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내게서 돈을 가져갔으니까. 그 사실 때문에 나는 언니에게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다. 언니가 가져간 돈은 내 머릿속에서 그렇게 사용되었다. 

  돈이 없으니 겨울은 더 춥게, 등 뒤는 더욱 삭막하게 느껴졌다. 나는 언젠가 언니가 다시 나를 찾아오기를 바랐다. 그래서 내가 언니가 가라앉아 있는 그 깊은 물 속에 손을 넣어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여느 날처럼 혼자 영화를 본 뒤 영화관 밖으로 나왔을 때 세찬 눈보라가 내리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은 각자의 일행과 몸을 바싹 붙이고 우산을 펴 정류장이나 지하철역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점퍼 안에 입은 후드 모자를 푹 덮어썼다. 영화관에서 고시원까지는 버스로 세 정거장 거리였다. 나는 번화가의 환한 불빛 틈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길을 걸었다. 걷는 동안 하얀 눈이 머리와 어깨 위로 차곡차곡 쌓였다. 얼굴에 닿은 눈송이는 차가운 물로 녹아 흘러내렸고 반질반질하게 닳은 검은색 운동화는 축축하게 젖어갔다. 

  온통 하얗게 변한 골목 어귀 삼 층짜리 고시원 건물 앞 전봇대의 불빛이 깜빡거렸다. 전기가 불안정한 듯 불빛이 파르르 떨렸다. 저 전봇대 뒤에 언니가 숨어 있으면 어떡하지? 골목길이나 길에 정차되어 있는 커다란 트럭 옆을 지날 때면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저 뒤에서 아주 미안한, 아주 곤란한 표정을 하고 언니가 나타난다면.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일부러 전봇대 앞을 느리게 지나갔다. 우울한 기분이 되어 그대로 길을 걸어가는데 전봇대 아래 웅크려 있던 흰 눈덩이가 고개를 들었다. 눈덩이의 한쪽 눈은 가로등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머금지 못하고 탁하게 굳어 있었다. 분홍빛 혓바닥을 내민 채 헥헥 숨을 뱉는 그것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나는 고시원 입구 쪽으로 어기적 걸어갔다. 

  오른쪽 발 뒤에서 가벼운 것이 눈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눈덩이가 나를 따라왔다. 건물 입구에서 옷에 쌓인 눈을 터는 동안 그것은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하얀 털은 뭉치고 갈라져 엉켜 있었고 눈 주변은 짙은 눈물 자국으로 갈색빛을 띠어 흰 털과 더욱 대비되어 보였다. 그것은 절룩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와 나의 젖은 신발 옆에 몸을 붙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발을 뗀 뒤 천천히 방으로 올라갔다.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운 뒤에도 마음이 불편해 계속 뒤척이다 결국 몸을 일으켜 다시 건물 입구로 내려갔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그것이 보였다. 죽은 건가 싶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가까이 다가가 손을 대어 보니 힘겹게 팔딱대는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들어 안았다. 눈보다 가벼웠다. 바싹 마른 몸에서 뼈마디가 고스란히 만져졌다. 두 팔로 조심스럽게 감싸안고 가슴께에 붙이자 그것이 몸을 더 둥그렇게 말아 품을 파고들었다. 호호는 그렇게 등 뒤가 아닌 내 가슴 앞으로 와주었다.


  저기, 언니.

  나란히 걷던 다은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비닐 포장 안에는 흰 강아지 캐릭터의 핀 배지가 들어 있었다. 

  별거 아닌데, 호호랑 닮은 것 같아서 샀어요. 

  배지 위로 눈 한 송이가 떨어졌다. 길가의 몇몇 사람들이 우산을 펼쳐 들었다. 나와 다은 사이에 놓인 강아지 배지는 다은의 손바닥 위에서 혓바닥을 내밀고 웃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으면서, 꽁꽁 언 다은의 손을 잡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 손이 차, 하고 아무렇지 않게 다은의 손을 감싸 쥐었다가 놓고 싶었다. 

  나는 다은의 손을 잡는 대신 그녀의 손이 얼른 외투 주머니로 다시 들어가도록 두었다. 고맙다고 말하며 손에 배지를 꼭 쥐었다. 

  저는 할머니 배지 있어요. 여기.

  다은은 어깨에 걸친 에코백에서 도트무늬 파우치를 꺼냈다. 파우치 한쪽 귀퉁이에는 인자한 눈웃음을 짓고 있는 할머니 캐릭터의 배지가 달려 있었다. 뽀글거리는 파마머리에 꽃무늬 스카프를 두른, 전형적인 할머니 캐릭터의 모습이었다. 파우치의 화려한 도트무늬 속에서도 할머니 배지는 선명하게 빛났다. 

  할머니 좋아하는구나?

  내 말에 다은이 미소 지으며 파우치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네. 할머니가 절 다 키우셨거든요. 재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는 당황했다. 다은의 가방 속으로 사라진 인자한 할머니의 눈웃음과 다은의 얼굴이 겹쳐졌다. 다은은 찬바람에 코를 훌쩍이며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에서 이미 한차례 지나간 깊은 시간의 흔적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난처한 듯 입을 우물거리자 다은이 얼른 화제를 바꿨다.

  오늘 홈캠은 왜 계속 확인한 거예요? 계속 휴대폰을 보고 있어서 옆에서도 보였어요. 그냥 책상만 보이던데. 

  나도 모르게 제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그대로 앞으로 걷던 다은이 허둥대며 다시 내 쪽으로 돌아왔다. 

  미안해요. 나도 다 알면서 그런 말을. 

  다은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심장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다은이 무언가 알고 있는 걸까?

  저도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한참 동안 휴대폰으로 할머니 방 사진을 봤어요. 

  아. 순간 힘이 들어간 어깨에 뻐근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음 한켠에 서서히 들어오는 밀물 소리를 들었다. 잔잔한 모래밭에 파도가 철썩이며 밀려왔다. 슬픈 울렁거림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치고 있었다. 

  다은은 할머니와 함께 살던 집을 정리하면서 짐들이 다 치워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방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그 사진을 보고 있으면 언제라도 할머니가 평소처럼 등을 동그랗게 말고 방에 누워 있을 것 같았다고. 다은의 눈가가 물에 젖었다. 얼굴에도 맞을 만큼 눈이 더 많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 해변에서 파도에 실려 온 티타늄 조각의 호호를 보았다. 철심 조각으로라도 나를 한 번 더 만나러 와준 호호가 고마우면서도, 언제 다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나는 호호를 놓아주지 못하고 있었다. 지수 언니를 기다렸던 것처럼, 호호도 영영 그렇게 기다리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마음 깊은 곳의 화상 자국이 다시 화끈거리며 통증을 일으켰다. 너무 무섭다고, 무서워서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다은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움켜쥔 다은의 팔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어깨 뒤를 감싸안았다. 나는 나보다 한 뼘 정도 키가 작은 다은에게 안겨있는 꼴이 되었다. 다은이 코를 훌쩍였다. 우리는 잠시 그렇게 함박눈을 맞으며 서로 포개어져 있었다. 

저는 울면 콧물이 너무 나와요. 못생겨져.

  다은이 코를 킁킁댔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가까이 맞댄 채 길을 걸었다. 나는 티타늄의 호호가 아닌 복슬복슬하고 따뜻하던 호호에 대해 말했다. 잠들기 전에 원하는 자세가 잡히기 전까지 제자리에서 몇 번이나 뱅글뱅글 돌던 호호의 습관, 아침에 일어나면 나를 깨우는 건 호호의 얼굴이나 혓바닥이 아닌 엉덩이였다는 것, 산책길에서 유독 노인들에게만 작게 짖곤 하던 쉰 목소리. 몸이 약해진 뒤로 집에서 처음으로 배변 패드가 아닌 방바닥에 소변을 본 후 스스로 수치스러워하며 반나절 동안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호호의 등이, 엉덩이가, 꼬리가 생각나서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은은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할머니의 된장찌개에는 두부와 호박만 들어갔었는데, 식당에서 여러 채소와 고기가 들어간 된장찌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할머니에게서는 언제나 희미한 나프탈렌 냄새가 났고, 힘들어도 꼭 자신과 다은의 속옷만큼은 손빨래를 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특별히 믿는 종교도 없으면서 방 한켠에 놓인 십자가에는 늘 먼지 한 톨 없었고, 여름이건 겨울이건 동백꽃 그림이 수놓아진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나가시곤 했다고. 한번 재채기를 크게 하면 농도 짙은 노란 콧물이 입술까지 흘러내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는 말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도로를 지나는 차들의 헤드라이트가 크리스마스트리의 알전구처럼 반짝였다. 그러고 보니 이제 곧 십이월이었다. 매년 성탄절이 다가오면 피시방 카운터에는 산타 모자를 쓴 루돌프 인형이 놓이곤 했다. 조만간 사장이 앙증맞은 루돌프 인형과 각종 크리스마스 소품을 창고에서 꺼낼 것이다. 우리는 그 인형을 보면서 우리에게 산타 모자를 씌우지 않는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잘 웃는데, 그죠.

  오늘 사장의 말에 베인 건 나만이 아니었나 보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살펴보았다. 나는 빙그레 웃는 다은의 얼굴이 정말 귀엽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역 앞에서 헤어졌다. 다은은 쇼핑 센터 쪽으로 가지 않고 지하철역 입구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점퍼 주머니 안에 든 배지 포장지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어두운 방 안에서 노란 전구 빛이 달처럼 둥글게 떠 있었다. 호호는 무너지지 않고 처음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내 발소리에 호호의 나사 조각 하나가 빙글 돌아갔다. 나는 주머니에서 다은이 준 배지를 꺼냈다. 포장지를 걷어내고 배지가 끼워져 있던 종이판을 빼냈다. 그리고 그것을 호호의 옆에 두었다. 호호의 유골함과 티타늄 조각의 호호, 캐릭터 모양 배지의 호호가 나란히 놓였다. 새끼손가락 끝을 천천히 앞으로 밀어 호호의 조각 끝과 닿게 했다. 차가움도, 따뜻함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면이 닿았다. 

  호호를 만나고 난 후부터는 언니를 전보다 덜 떠올렸다. 등이 허전할 때마다 호호가 가슴을 파고들었기 때문에 나는 부드러운 털에 얼굴을 묻고 잠들 수 있었다. 

  나는 은빛의 호호를 오래 바라보았다. 쓰다듬을 수도, 안아줄 수도, 맛있는 간식을 줄 수도 없는 호호였다. 

  알고 있었던 거지? 내가 계속 불안해할 거라는 거. 널 잃고 나서 끝없이 슬퍼할 거라는 거. 

  철심 조각의 호호는 조용했다. 나는 호호에게 산책을 더 많이 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좋아하던 군고구마를 못 먹게 해서 미안하다고, 밤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는 너를 보내줄 수 있어. 괜찮아. 

  나는 노트북으로 영화 한 편을 틀어두고 밤새 호호 곁을 지켰다. 유골함 뒤편 창문 너머로 눈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흔들렸다. 새벽 세 시가 넘어갈 즈음 호호의 스트레이트 판 아래쪽에 붙어 있던 나사가 툭 하고 떨어졌다. 도르르 굴러간 나사가 배지에 부딪혔다. 

  호호는 틱 하는 옅은 소리와 함께 완전히 부서졌다. 힘없이 널브러진 호호의 조각들을 보며 나는 울었다. 화장장에서 호호를 보내던 날 이상하게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그제서야 줄줄 흘러나왔다. 


  다음 날 나는 피시방에 출근해서 다은에게 가방 앞주머니에 달린 호호의 배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은에게 조만간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다은이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피시방 카운터에는 산타 모자를 쓴 루돌프 인형이 올라와 있었다. 다은과 함께하는 저녁이 크리스마스가 될지도 몰랐다. *

 

 

제7회 3·15청년문학상 소설 부문 심사평

  제7회 3·15청년문학상 소설 부문에는 총 13편의 작품이 응모하였다. 올해 응모작들은 전 반적으로 완성도가 높았으며, 다양한 제재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문학적으로 형상화 하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특히 〈호호〉, 〈진행형 사진〉, 〈힘을 내요, 사랑 봉쇄〉, 〈윤우〉, 〈받음, 풀리지 않는〉은 끝까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읽은 작품들이다.

  그 가운데 〈호호〉는 가장 독창적인 상상력과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이다. 화장 후 남은 티타늄이 다시 강아지의 형상을 얻어 주인공 앞에 나타난다는 설정은 매우 신선하다. 죽은 존재가 영혼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익숙한 방식이 아니라, 몸속에 남아 있던 작은 물질을 매개로 다시 관계를 이어 간다는 발상은 애도의 과정을 새로운 차원에서 사유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그 티타늄 강아지를 펫캠을 통해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은 상실 이후에도 완전히 끝나지 않는 사랑과 기억의 지속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작품의 기발한 설정은 단순한 아이디어에 머물지 않고 '존재란 무엇인가’, '애도는 어떻게 지속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능숙하게 만들어 내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영역은 문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학은 슬픔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느끼게 한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결을 독자의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문학이 가진 고유한 가치일 것이다. 〈호호〉는 바로 그러한 문학의 힘을 보여 주었다. 상실을 다루는 방식의 신선함과 그것을 독자의 감정으로 환원시키는 문학적 형상화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이 작품을 소설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한다. 

김은정(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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