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념, 평화·교육을 향한 헌신
일념, 평화·교육을 향한 헌신
  • 경남대학보사
  • 승인 2026.05.22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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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동안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길을 걸어온 박재규 총장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박재규 경남대학교 총장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교육의 가치를 위해 한길을 걸어왔다. 냉전과 대립의 시대 속에서도 그는 학문과 대화를 통해 화해와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했고, 교육과 연구를 바탕으로 평화의 토대를 다져왔다. 학자이자 교육자, 정책가이자 실천가로서 남북관계의 중요한 순간마다 역사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그의 삶은 곧 한국 현대사의 평화 여정과도 맞닿아 있다. 본 기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의 설계자이자 평화교육의 선구자로 살아온 박재규 총장의 발자취와 그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 경남대학보

 

2000. 6. 15. 우리의 소원은 통일
2000. 6. 15. 우리의 소원은 통일

 

  박재규 경남대학교 총장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남북한의 통일, 그리고 인류 보편의 가치인 평화를 향한 교육과 연구에 일생을 바쳐온 석학이자 실천가다. 냉전의 시대부터 화해와 협력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는 학문적 탐구와 현실 정치의 영역을 넘나들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1972년 경남대학교 부설 통한문제연구소(현 극동문제연구소) 설립을 시작으로 경남대학교 교수(1973~1985)와 총장(1986~1999, 2003~현재)을 역임하며 50여 년간 교육자로서 헌신해 온 그는, 한국대학총장협회 회장(1997~1999), 동북아대학총장협회 이사장(2003~2010) 등을 맡아 고등교육의 발전에도 앞장섰다. 또한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직을 수행하며 문화와 학문을 통한 평화 정착구현에 힘썼다. 통일부 장관직을 물러난 이후에도 대통령 자문기구인 통일고문, 대통령 소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 통일준비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며 우리 사회의 원로로서 국론 결집과 사회 통합을 위해 끊임없이 봉사해 왔다.

  이러한 그의 헌신과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청조근정훈장(2002)을 수훈했으며, 국제적으로는 미국 F.D.U. Global Understanding상(2001), 제1회 한반도평화상(2004)을 수상했다. 특히 2009년에는 프랑스 시라크재단으로부터 분쟁방지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평화 운동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박재규 총장의 삶과 업적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조망할 수 있다.

 

평양에서 개최된

제2차 남북장관급회담 당시

보여준 결단력은
평화에 대한 그의 굳은 신념을

증명한다.
당시 군사 문제에 대한 합의가

난항을 겪자,
그는 김정일 위원장을 설득하러

밤새 기차를 타고 자강도까지

달려갔다.

 

- 한반도 평화의 설계자, 남북 화해 시대를 연 주역

  그는 한반도 평화의 설계자이자 남북 화해의 시대를 연 주역으로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아왔다. 

  박재규 총장은 대한민국 제26대 통일부 장관 겸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으로 재직하며 남북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특히 2000년, 분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의 최고 당국자가 만나는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의 추진위원장을 맡아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는 불신과 대결로 점철되었던 한반도의 역사를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이라는 민족사의 대전환점을 마련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❶2000. 8. 29.-31. 제2차 남북장관급회담❷ 2000. 9. 1. 자강도 특별초대소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군사문제를 비롯한 남북 현안에 대해 집중 토의❸ 2000. 4.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❶ 2000. 8. 29.-31. 제2차 남북장관급회담
❷ 2000. 9. 1. 자강도 특별초대소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군사문제를 비롯한 남북 현안에 대해 집중 토의
❸ 2000. 4. 최규하, 전두환, 노태
2000. 6. 14. 김정일 위원장 옆 자리에 앉아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중요한 대화를나눴다.
2000. 6. 14. 김정일 위원장 옆 자리에 앉아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중요한 대화를나눴다.

  당시 그는 6월 14일 만찬 자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이산가족 문제 해결, 경의선 철도 연결, 사회문화 교류 및 협력 등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고, 이러한 노력은 ‘6.15 남북공동선언’이라는 역사적 결실로 이어졌다. 정상회담 이후에도 그는 공동선언의 합의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남북장관급회담의 우리 측 수석대표로서 대화의 원칙과 기준을 정립하며 남북관계 도약을 주도했다.

  특히 평양에서 개최된 제2차 남북장관급회담 당시 보여준 그의 결단력은 평화에 대한 그의 굳은 신념을 증명한다. 당시 군사 문제에 대한 합의가 난항을 겪자, 그는 김정일 위원장을 직접 설득하기 위해 밤을 새워 김용순 북한 대남비서와 함께 기차를 타고 자강도까지 달려갔다. 그곳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조찬을 함께하며 끈질긴 설득 끝에 남북국방장관회담 개최에 대한 약속을 받아냈고, 시드니 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극적인 노력의 결과로 제2차 장관급회담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의 발판이 된 군사당국자회담 개최 합의라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프랑스 시라크 재단이 그에게 분쟁방지 특별상을 수여한 것 또한 이러한 남북 화해·협력 정책 수행을 통해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 한반도 평화 교육의 선구자

  그는 척박했던 환경 속에서 한반도 평화 연구의 토대를 닦고, 닫힌 장벽을 넘어 학술교류의 길을 개척한 선구적인 교육자다.

  냉전이 한창이던 1972년, 박재규 총장은 북한 및 한반도 문제와 주변국 관계를 심층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를 설립했다. 당시 북한에 대한 객관적 연구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상황에서, 그는 학문적 토대 구축을 위해 무엇보다 북한 관련 원전 자료 수집에 주력했다. 그 결과 오늘날 극동문제연구소는 사회과학 분야 4만여 권의 장서와 610종의 정기간행물, 그리고 북한 특수자료실 내 2만여 권의 북한원전 자료를 소장하게 됐다. 이는 국내 민간 연구기관 중 최대 규모로, 북한 연구의 이론적 기반을 닦는 사회과학자들의 산실 역할을 해왔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수교 이전부터 공산권 국가들과의 ‘학술 외교’를 통해 닫힌 문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한국과 중국이 수교 전인 1986년 9월, 박재규 총장은 중공 정부와 일본 무역회사의 협조로 베이징을 방문하여 공산권 연구를 위해 한국 대학생과 교수들을 위한 ‘체험 교육프로그램’ 추진을 성사시켰다. 이는 경남대가 인원을 선발하고 중국이 교육을 지원하는 획기적인 합의였다. 1986년 가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1988년부터 한국 대학들이 중국 대학들과 직접 학술교류협정을 맺는 기폭제가 됐으며, 경남대는 중국 인민대학 등 유수 대학과 협정을 체결하여 국내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러한 노력은 소련으로도 이어졌다. 한국과 소련이 수교되기 전인 1989년 2월, 소련 정부 및 동방학연구소의 도움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한 그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와 소련 동방학연구소 간의 학술교류 및 ‘소련 체험 교육프로그램’ 지원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박재규 총장이 수교 이전에 시작한 이러한 공산권 체험 교육과 학술 교류는 훗날 한국이 공산권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하고 수교를 맺는 데 있어 보이지 않는 큰 기여를 했던 것이다.

  나아가 그의 학술 교류 노력은 중국과 소련을 넘어 북한으로까지 확장됐다. 1998년 9월 26일,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한 박재규 총장은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하고 김책공업종합대학과 학술교류 의향서(MOU)에 서명하는 역사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남북한 대학들이 상호 교류하고 협력하는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고 실질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것으로, 남북 학술교류를 선도하고 연구의 문을 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❹ 1998. 8. 25. 김책공업종합대학과 학술교류 MOU 체결❺1998. 9. 김일성종합대학 정문 앞에서
❹1998. 8. 25. 김책공업종합대학과 학술교류 MOU 체결 ❺1998. 9. 김일성종합대학 정문 앞에서
2004. 6. 15. 통일관 개관식
2004. 6. 15. 통일관 개관식

  이러한 현장 경험과 축적된 성과를 바탕으로 1989년 국내 대학 최초로 행정대학원 내에 ‘북한학과’를 개설하여 평화통일 시대에 필요한 전문 교육을 본격화했다. 이를 기반으로 1998년에는 남북 교류 협력 시대를 대비한 국내 최초의 북한 전문 대학원인 ‘경남대 북한대학원’을 개원했고, 2004년에는 이를 ‘북한대학원대학교’로 승격·독립시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와의 협업을 통해 연구-교육이 상호 연계되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모범적인 모델을 완성했다. 북한 관련 연구와 교육을 접목하여 실질적인 효과를 창출하고 연구의 기반 구축과 질적 제고를 이뤄낸 것이다.

  2004년 6월 15일, 서울 삼청동에서 열린 북한대학원대학교 통일관 개관식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북측의 리종혁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 고위 관계자들이 직접 참석하여 축하했는데, 이는 박재규 총장이 구축한 학문적 성과와 남북 관계의 신뢰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박재규 총장의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인류애를
겸비한 삶의 궤적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문학의 숭고한 정신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 평화담론의 확산(촉진)자

  국제적으로 권위가 있는 사회과학 영문 학술지 발간을 통해 한국의 평화 담론을 국제사회로 확산시켰다.

  박재규 총장은 한반도 문제를 넘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세계적 시각에서 조망하기 위해 1977년 영문 학술지 『Asian Perspective』를 창간했다. 창간 이래 동북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변화를 분석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국내외 석학들의 우수한 논문을 엄정한 심사를 거쳐 게재해 왔다.

2025. 10. 14. IAUP 창립 60주년 기념 국제세미나서 공로상 수상
2025. 10. 14. IAUP 창립 60주년 기념 국제세미나서 공로상 수상

  학술지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지속됐다. 1995년 10월부터 미국 포틀랜드주립대와 공동 출판을 시작했으며, 1996년과 1997년에는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이 선정하는 사회과학 분야 우수 국제 학술지로 연속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끊임없는 질적 향상 끝에 2008년에는 사회과학 논문의 세계적 권위인 SSCI(Social Sciences Citation Index)에 등재됨으로써 명실상부한 국제적 학술 저널로서의 위상을 확립했다. 2019년부터는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인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대학원(SAIS)과 공동으로 출간하며,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관한 담론을 전 국내외에 공유하고 있다.

  이처럼 박재규 총장은 일생을 통해 분쟁과 갈등의 현장에서 평화의 가능성을 길어 올리고, 학문과 교육을 통해 그 가치를 다음 세대로 계승해 왔다. 또한 연구소와 대학에서 수 많은 학자들과 전문가들을 양성·지원하는데에도 모든 것을 바쳐 길을 내는데 집중해 왔다.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인류애를 겸비한 그의 삶의 궤적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문학의 숭고한 정신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 정리: 경남대학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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