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변하는 소비 트렌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선택을 요구한다. 무엇을 입을지,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에 이르기까지 선택의 기준은 점점 더 외부로부터 주어진다. 유행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일종의 압력으로 작동하며, 개인의 취향마저 그 흐름 속으로 편입시키려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선택’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된다는 점이다.
새벽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의 풍경이나, 특정 장소에 길게 늘어선 대기 줄은 이제 낯설지 않다. 많은 사람이 찾는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상은 곧 ‘가치 있는 것’이 되고, 우리는 그 가치를 의심하기보다 빠르게 수용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나의 욕망으로 착각하게 된다. 이처럼 타인의 선택을 자신의 욕망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의 기준은 점점 흐려진다.
이러한 흐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영향이기도 하다. 알고리즘은 다수의 선택을 바탕으로 취향을 추천하고, 우리는 그 경로를 자연스럽게 따른다. 수많은 후기와 평점, 인증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며 다른 가능성을 지워버린다. 선택은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정해진 길 위를 걷고 있는 셈이다.
유행을 따르는 일이 항상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소통의 언어가 되기도 하고, 공통의 경험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순간, 소비는 취향의 표현이 아니라 동조의 행위로 변질된다. 남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선택하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소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점점 희미해진다.
특히 ‘인증’은 이러한 경향을 더 강화한다. 무엇을 소비했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보이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소비는 하나의 성과처럼 기능하고, 우리는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선택을 조정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감각은 점점 설명되지 못한 채 뒤로 밀려난다.
유행에 쉽게 동조하지 않는 선택은 때로 불편함을 동반한다. 모두가 같은 것을 이야기할 때 다른 선택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를 요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종종 ‘틀리지 않기 위해’ 유행을 따른다.
그럼에도 자신의 취향을 지키는 일은 자신을 이해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경험에 의미를 두는지를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은 많은 시간과 인내를 요구한다. 때로는 유행과 어긋나고, 타인의 평가와 충돌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경험한 모든 것은 비로소 ‘나의 취향’이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유행을 따르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남들이 좋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좋은 것을 구별해내는 일. 빠르게 흐르는 트렌드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감각을 확인하는 일. 어쩌면 우리는 그 지점에서야 비로소 ‘소비하는 인간’이 아니라 ‘선택하는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