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영지] 나의 가장 큰 힘
[월영지] 나의 가장 큰 힘
  • 정주희 기자
  • 승인 2021.06.02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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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 사하구 감천동, 어느 한 달동네의 판잣집에서 12살 꼬마 소년이 뛰쳐나왔다. 낡아서 여기저기 해진 옷부터 시작해 종아리에 남아있는 아직 부어올라 있는 빨간 자국까지 그 소년의 외관은 성한 곳이 없었다. 집에서 나온 그 날은 쌀쌀한 초겨울이었다. “절대 저런 아빠가 되지 않을 거야.” 소년은 훗날 자녀들에게 ‘친구 같은 아빠’가 되겠다는 다짐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항상 아빠의 친척이 궁금했다. 내가 만난 아빠의 가족이라고는 친할머니, 고모, 삼촌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친척은 없냐고 물어보면 멀리 있어서 만나기 힘들다고 대답했다. 아빠에게 친척 얘기를 꺼낼 때면 아빠의 눈에는 분노와 슬픔이 공존한 것처럼 보였다. 내가 22살일 때, 부모님과 함께 간단하게 술을 마시며 대화 하던 도중 아빠는 내게 이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얘기해줄 때가 되었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5살 때부터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했던 이야기, 이렇게 맞다 보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12살에 가출했던 이야기 등 아빠의 어두운 어린 시절을 처음으로 자세히 듣게 되었다. 항상 든든하게 가족을 지키던 아빠의 어린 시절은 인자한 미소 뒤 가려진 한 편의 그늘이었다.

  아빠에게 어릴 적 이야기를 들은 후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 내게 아빠는 “내가 딸과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서 좋다”고 말했다. 나는 아빠가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했던 노력을 알고 있다. 친구 같은 아빠가 되기 위해 아빠는 나와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연예인을 좋아했을 때는 굿즈를 사거나 콘서트 비용을 지원해주고 같이 관심을 가졌다. 공부하다가 힘들어할 때면 같이 강의 동영상을 보며 공부했다. 또 역사를 좋아하던 나를 위해 역사책을 읽고 나와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사·상식을 알려주려고 주말이면 사회 문제에 대해 둘이서 열띤 토론도 했다.

  다른 무엇보다 나는 훈육의 매를 단 한 번도 맞은 적 없다. 내가 잘못한 상황에도 항상 먼저 “너의 얘기를 해줄래?”라며 따뜻한 차와 함께 대화로 해결했다. 내 입장을 먼저 듣고 생각해주었다. 들은 후에는 공감과 따뜻한 말, 따끔한 조언, 앞으로 어떻게 할 예정인 지에 대해 2시간가량 얘기를 나눴다. 부모님의 도움을 덜 받아도 되는 지금도 아빠와 대화를 위해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주말을 항상 기다린다.

  이런 아빠의 노력과 엄마의 지지가 합쳐져 우리 가족은 서로 간의 대화가 줄어들고 있는 현대 사회 가정과 달리 매일매일 웃음꽃이 피어난다. 우리 가족은 주말 중 하루를 온전히 가족과 시간 을 보낸다. 나는 매주 가족끼리 어떤 하루를 보낼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때마다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낀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한 치의 고민 없이 당연히 아빠의 딸로 태어나고 싶을 만큼 아빠는 항상 고마운 존재다. 나는 이런 가정이 될 수 있게 한 장본인, 그리고 나를 위해 열띤 노력을 한 아빠를 제일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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