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No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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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현 기자
  • 승인 2019.08.2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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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습니다'.'사지 않습니다'

 

▲일본 제품 관련 매장에 한국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모습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거리 곳곳에 자리했던 일본 브랜드 매장은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한일 관계는 썩 좋지 않았다. 가슴 아픈 우리 역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어떠한 계기로 우리나라가 일본 제품 불매운동까지 하게 되었을까?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보자. / 사회부

불매운동의 시작은 무엇일까?

  먼저 강제노역 피해자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신천수, 여운택 할아버지 두 분이 일본 법원에 일본 제철(옛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소송은 강제노역에 대한 손해배상 요구 및 밀린 임금 지급에 관련된 내용이다. 그러나 그 소송은 끝내 패소하고 말았다. 일본 법원은 그때 일본 제철과 지금 일본 제철은 다르므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일 양국이 1965년 맺은 ‘청구권협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이 협정은 한일 양국과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이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뜻을 담았다. 일본은 한국 정부에 약 1,080억 원과 유상 약 720억 원의 공공 차관을 제공했다. 그것으로 다 끝난 일임을 확인시켰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그 판정을 인정 할 수 없었고 김규수, 이춘식 할아버지와 함께 결국 2005년 서울중 앙지법에 재소송했다. 이후 13년 8개월이 지나 마침내 승소했다. 한국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30일 “일본 제철은 피해자들에게 강제노역하였다.”며 피해자 1명당 1억 원씩 배상할 것을 요구했다. 앞서 말한 ‘한일청구권협정’ 에서 피해자 개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인정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의 판결에선 승소했지만, 13년이라는 기나긴 싸움에 할아버지 네 분 중 세 분이 세상을 떠났다. 이춘식 할아버지만 승소 판결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다른 할아버지들을 떠올리며 “판결이 조금만 일찍 났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할아버지 얼굴에서 많은 의미가 담긴 눈물이 흘렀다. 감격도 한때였다. 이 판결에 일본 정부는 “국제법에 어긋난다.”라며 대법원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은 중재위원회를 열어 한일청구권협정 분쟁을 해결하자고 했다. 이후 지난달 1일, 불매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인 ‘수출 규제’가 시작됐다. 일본은 우리 경제에 큰 이익을 주는 반도체에 필요한 원료 세 가지를 수출 규제한다고 발표했다.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었다. 이 선포를 계기로 우리 민심이 들끓어 일본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일본 제품 보이콧

   현재 한국 산업에서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반도체다. 이런 반도체 원료 공급 차단은 우리나라보고 아예 굶어 죽으라는 소리다. 따라서 한국 민심은 “너희들이 우리에게 물건을 팔지 않겠다면, 우리도 너희 물건을 팔리지 않게 하겠다. 즉 보이콧하겠다.”라는 여론이 들끓어 본격적인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여러 기사가 터져 나오고 SNS에서는 불매운동 인증 영상들이 올라오고, 대중들이 잘 모르는 일본 제품들을 알려주며 불매운동이 확산한다. 우리 대학 학우들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어떤 입장일까? 우리 대학 신재환(국제무역물류학과·1) 학우는 “한국경제를 지배하는 일본이 얄미워서 불매운동을 시작했어요.”라며 불매운동 시작 동기를 설명했다. 더불어 신재환 학우는 “원래 일본 제품을 잘 쓰지 않아 불매운동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를 위한 운동에 끝까지 동참하겠습니다.”라고 전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일본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학우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우도 존재한다. 익명의 학우는 “저 하나 일본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을 미칠까요? 게다가 일본 제품 중 좋은 제품이 많아서 저는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아요.”라며 불매 운동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또 다른 익명의 학우는 “일본 이 잘못한 것은 맞지만, 우리나라에서 일본 제품을 판매하는 가게 주인은 한국인 아닌가요? 그들은 무슨 죄가 있기에 경제적인 타격을 입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라며 불매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누가 옳고 그른가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불매운동은 자유이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그동안 일본에 희생당한 수많은 피해자를 생각해보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늘 우리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일본에 계속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을 것인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 효과

   일본 불매운동은 일본 제품은 무조건 사지 말자는 단순한 1차원 적인 운동이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 및 개인에게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있다면 불매 리스트에서 제외해야 한다. 일본의 상징적인 기업, 브랜드, 제품만을 불매하는 게 진정한 불매운동이다. 우리나라 불매운동이 오래 지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유니클로와 수입 맥주 매출 1위를 찍었던 아사히를 포함한 일본 맥주류가 불매 리스트에 포함된다. 일본 가전제품과 자동차, 그리고 제일 큰 타격을 입힐 일본 여행 역시 주요 불매 목록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불매 리스트를 완성해가고 있다. 특히 전범 기업은 리스트 1순위다. 목표와 목적이 분명하자 불매운동은 엄청난 효과를 나타냈다. 관련 매장에서 사람 찾기가 힘들 정도다. 직접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수치를 알 수는 없지만 유니클로는 약 30% 이상 매출이 떨어졌다. 일본 맥주 역시 절반 정도로 매출이 떨어졌다.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는 수입 맥주 4캔에 만 원 정도로 행사를 주로 하곤 한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행사지만 쇼핑 리스트에서 일본 맥주는 빠져 나간 지 오래다. 지난해 우리나라에 입점한 단일 의류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1조 3,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유니클로가 그 타 깃의 대상이다. 수입 맥주 매출 1위였던 아사히를 비롯한 맥주류도 그에 포함된다. 날이 더운 여름에 가까울수록 맥주 소비와 수입이 동시에 증가한다. 그러나 이번 여름은 확실히 달랐다. 일본 맥주 수입액은 4, 5, 6월에는 원래대로 늘어나는 추세였지만, 불매 운동 시작 이후 7월에는 반 토막으로 급감했다. 일본 여행은 제일 큰 효과를 얻어냈다. 사람들은 일본 여행 취소 인증을 SNS에 업로드 했다. 하루 1,200명이 갈 정도로 성수기였던 일본 여행은 400여 명이 겨우 찾는 수준이 됐다. 국내 기업 역시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게 바뀌어갔다. 떨이 행사를 하는 대신 불매 운동을 인증하면 할인해주거나 사은품을 주는 이벤트를 열어왔다. 불매운동의 여파가 여기저기 분명하게 나타나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과거에도 불매운동을 시행한 적이 여러 번 있으나, 단 한 번도 성공한 사례가 없다. 많은 분석가는 우리나라 국민의 냄비근성으로 오래가지 않는다고 추측한다. 그들의 추측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끈끈하게 뭉쳐왔다. 우리 모두 더욱 힘을 합쳐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다가가야 한다. 물건을 구매할 때 번거로움이 있지만, 반드시 원산지 확인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수많은 희생자와 피해자들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빛을 발휘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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