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아요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아요
  • 박예빈 기자
  • 승인 2019.04.15 15:2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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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여자가 먼저 유혹한 거 아니야?” 피해를 받은 사람에게 오히려 따지는 목소리. 범죄가 발생하면 사건은 한동안 다른 사람 입방아에 오른다. 피해자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은 한순간 ‘왜’라는 질문으로 바뀌고 그들은 가십거리로 변한다. 온전히 피해자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소문. 비통한 일이지만, 우리 주위에 자주 있는 일이다. 이렇게 범죄를 당한 사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행하는 2차 가해를 알아보자. / 사회부

  흉악한 범죄를 당한 사람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다른 사람들은 피해자를 어떤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까? 당연히 동정과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러나 몇몇은 그 눈빛 속에 서린 의심을 지우지 않는다. 가해자가 아닌 온전히 피해자에게 치우친 관심과 말들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 2차 가해, 제대로 알고 가자!

  피해를 본 사람에게 가해지는 2차 가해는 무엇일까? 2차 가해는 범죄행위로 1차 피해를 본 사람에게 피해 사실과 관련해 2차적 피해를 주는 행위를 일컫는다. 사건이 일어난 뒤 사법기관, 가족, 친구, 언론 등에서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그 반응 전부가 2차 가해에 해당한다. 쉽게 말해서 2차 가해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다. 이로 인해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불이익은 상당하다.

  작년, 우리나라는 용기 있는 사람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성폭력과 성희롱을 청산하기 위해서 시작된 ‘미투(Me Too) 운동’은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은 용기 있는 피해자의 발언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미투라는 해시태그에 누군가 덧붙였다. “여자가 꽃뱀 아니야?” 말도 안 된다는 사람 속에서도 동의하는 여론은 물론 생겼다. 그 여론 때문에 미투 운동이 가진 의미는 잠시 흐려졌다.

  온라인에서 2차 가해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2차 가해는 성범죄가 일어나고 인터넷에 사건이 퍼지면서 시작된다. 익명을 앞세워 그들은 피해자에게 다양한 이유를 붙인다. 옷차림, 행실 등 모든 것을 문제로 삼았다. 심지어 저항을 심하게 하지 않았다는 이유도 들었다. 근거도 없는 말 때문에 피해자는 두 번 울게 된다.

 

- 당신은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2차 가해라는 개념이 퍼지고 피해자를 지키자는 움직임도 확산됐다. 실제로 피해자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 피해자가 괴로워하는 일을 꺼내지 않고 보호하여 그들을 지켰다. 그들은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들 속에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어가며 삶에 적응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만 하는 그들에게 2차 가해는 없어져야 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피해자를 보호하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자신에게 있었던 일은 없었던 일이 될 수가 없다. 그들은 철저히 자신이 당한 일을 외면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사건과 떨어뜨려 놓는 일을 마냥 옳다고 할 수 없다. 보호라는 명목 안에 그들이 맞서야 할 일과 분리했다. 우리는 피해자가 사건을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하도록 무력하게 만들었다.

  사건을 파악하기 위한 심문 과정을 제지하는 사람이 많다. 피해자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꺼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경찰의 수사 없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피해자를 범죄사실로부터 무조건 떼어놓는 일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힘든 일이지만, 피해자는 똑바른 상황을 보고 수사를 도와야 한다. 악순환되는 연결을 끊기 위해서 그들의 용기는 절실하게 필요하다.

 

- 2차 가해, 제대로 알고 가자!

  2차 가해의 빈도수는 생각보다 많다. 범죄가 발생했다는 기사에 달리는 무성한 댓글을 보면 파악이 가능하다. ‘가만히 있는데 그랬겠냐?’는 자신만의 생각과 ‘당한 사람도 무슨 문제가 있다.’라는 앞뒤 없는 확신의 글은 자주 보인다. 온라인으로 퍼져나가는 소문에 피해자는 다시 사회로 나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처벌은 잘 이루어지고 있을까? 2차 가해는 일상 속에서 일어난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뒷담과 의심의 눈초리 모두가 해당한다. 다른 사람이 수군거리는 말과 생각을 바꾸는 일은 무리다. 이렇게 우리는 흔한 2차 가해를 보고서도 외면했다. 법적 조치도 할 수가 없는 수군거림에 피해자는 한없이 고립되었다.

  하지만 2차 가해를 아는 사람도 분명 늘어났다. 그들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불편해한다. 그리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댓글에 쓴소리를 남긴다. 사회는 점차 변화하고 있다. 피해자를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피해자도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들에 의해 사회에 다시 적응한다.

  피해자가 가진 아픔을 캐묻고 궁금해하는 사람은 그들의 상처를 들쑤신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궁금증은 가혹하기만 하다. 피해자를 괴롭게 하는 모든 일에 ‘2차’라는 명칭은 필요하지 않다. 2차 가해는 분명 그들을 옥죄는 또 다른 범죄다. 우리는 그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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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 2019-05-22 10:24:14
2차 피해는 1차 피해와 다르지 않을 정도로 나쁜 것이라는 기사를 읽고서 정말 공감이 되었던 것 같다.

0261843 2019-05-20 11:39:53
2차가해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있었는데 명확하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유익한 기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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