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 아고라] try or cry
[한마 아고라] try or cry
  • 언론출판원
  • 승인 2018.03.25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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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아이가 어렸을 적 나에게 만약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바로 지금’이 가장 좋아서 돌이키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는데 자꾸 캐묻기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가장 빛났던 젊음의 시기, 스무 살 무렵이 떠올랐다. 교문 앞에서는 하루도 최루탄이 터지지 않는 날이 없었던 치열한 민주화의 시기, 그 와중에 우리는 공부하고 사랑하고 시대를 걱정했다. 그리고 월영지 주변에 모여서 데모 뒤풀이로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

  경남대학교의 캠퍼스는 전국에서도 이름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교정 곳곳에 아기자기하게 숨겨진 예쁜 장소들이 많은데 그중의 압권은 월영지와 메타세콰이어 길이다. 내가 다녔던 문과대학은 바로 월영지 곁이어서 강의실에서도 눈만 들면 바로 내려다 보였다. 봄의 월영지 벚꽃은 정말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예쁘다.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 속에서도 봄이면 어김없이 벚꽃이 피어서 우리의 마음을 강의실 밖으로 불러냈다. 어느 봄날 눈처럼 피어나 최고의 순간에 여지없이 꽃잎을 떨구는 벚꽃의 한때는 짧아서 더 애틋했다. 낙화 뒤 월영지 위에 눈처럼 떠다니던 벚꽃잎도 또 그대로 운치가 있어서 벚꽃은 개화부터 낙화, 모든 순간이 절정이었다.

  문과대 건물의 뒤편에서 건강과학대학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으로 죽 큰 키를 자랑하며 메타세콰이어가 늘어서 있다. 키 큰 나무 사이로 난 좁은 계단은 올라가는 길에도, 내려오는 길에도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캠퍼스 커플들이 공강 시간에 손을 잡고 그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은 쓸쓸한 솔로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멋진 풍광은 혼자서 즐기기엔 뭔가 아쉬웠다. 둘이 함께하는 모습은 배경이 되는 숲길마저 더욱 근사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월영지의 벚꽃이 봄의 절정이었다면 메타세콰이어의 단풍은 가을의 절정이었다. 커피색으로 잎들이 물들어 가면 덩달아 우리의 마음도 물들어 학교 앞 막걸리 집이 붐비곤 했다.

  몇 년 전 수지와 김우빈 주연의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를 경남대학교 캠퍼스에서 촬영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드라마가 경남대학교 캠퍼스의 아름다움을 광고하는 데 보탬이 되었는지 한동안 사람들이 많이 구경 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보통의 경우는 텔레비전에 근사하게 보여서 정작 가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경남대학교 캠퍼스는 부분적으로 보였던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보다 훨씬 멋지게 느꼈으리라 짐작해 본다.

  내 젊음은 경남대학교에서 꽃처럼 피었다. 경남대학교는 창원시 마산합포구가 아니라 마산시 월영동 449번지에 있었고 그곳에는 멋진 풍광과 좋은 선생님, 다정한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지난 해 봄부터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추억의 한 자리로 물러나 있던 캠퍼스가 다시 나의 현재로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리고 학교는 내가 다니던 때보다 훨씬 멋지고 근사해졌다. 봄이면 어김없이 벚꽃이 피는 것은 똑같지만 연못 주변은 예쁘고 깔끔하게 다듬어져서 어느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도 더할 나위없는 풍광이 살아난다.

  물론 학교의 풍광이 아름다워졌다고 학생들의 미래까지도 그렇게 장밋빛이 된 것은 아닌 듯하다. 아이들은 취업 걱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다들 각자 마음에 하나씩의 불안의 바윗돌을 올려놓고 사는 듯하다. 우리 학교의 졸업생으로, 딱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무엇보다 아이들의 고민을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글쓰기 선생님으로 나는 아이들의 현실이 안타깝고 마음 아프다. 그러나 우리는 삶의 순간마다 try or cry를 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러니 좋은 선택을 하자고, 우리의 기대를 희망에 걸자고 아이들을 독려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30년 전의 내가 그랬듯, 지금 우리 학생들도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스스로 원하던 삶이 어느새 곁에 다가와 있으리라고, 이 봄 개화를 앞두고 설레는 꽃봉오리들도 혹독한 겨울을 이겼기에 온 존재로 꽃필 수 있는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설레고 벅차다. 멋진 장소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고 있는 중이다. 열심히 강의에 귀 기울이는 아이들의 뒤편에, 달그림자 동네의 월영지에 스무 살의 나도 함께 앉아 있다.

윤은주(동문 수필가, 국어교육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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