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한 조사에 따르면 성인 4명 중 1명은 정신질환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병은 이렇게 현대인의 고질병이 되었다. 이런 모두의 아픔을 악용하고 있는 사례가 보인다. 범죄를 저지르고 자신이 심신미약 상태라며 감형을 받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일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 사람은 왜 심신미약자로 인정하여 감형시키는가?' 매번 나오는 질문이지만 뚜렷한 답변은 들리지 않는다. 이제는 이러한 상황을 직시하고 ‘심신미약 감형’을 올바른 방향으로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 사회부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이 끌고온 심신미약 감형'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 강서구 한 PC방에서 손님과 아르바이트생의 다툼이 있었다. 경찰까지 부른 이 다툼은 손님이 PC방을 나가면서 끝이 났다. 하지만 그는 PC방을 나가 집에 있던 흉기를 챙겨 다시 돌아왔다. 경찰이 돌아가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아르바이트생은 다툼 상대였던 손님의 흉기에 수차례 찔리게 되었다. 그렇게 손님은 피의자, 아르바이트생은 피해자로 한순간에 바뀌었다.
피해자 얼굴은 피의자가 흉기로 30여 차례 찔러 원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라고 알려졌다. 피의자는 사건이 발생한 그 자리에서 곧바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끔찍한 범행 방식과 모델을 꿈꾸던 성실한 20대 청년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을 들은 국민은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피의자 가족이 경찰서로 와서 건넨 것은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닌 피의자의 우울증 진단서였다.
가족은 10년째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는 아들이 심신미약자라고 주장했다. 그 사실이 알려지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언제까지 우울증, 정신질환, 심신미약 이런 단어들로 처벌이 약해져야 합니까.’라며 유감을 표했다. 그 청원 글은 국민청원 페이지가 생긴 이래로 최다 동의를 얻은 글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심신미약 감형’을 반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심신미약이란 법률용어로 시비를 변별하고 또 그에 의해 행동하는 능력이 상당히 감퇴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정신병, 백치, 마약 중독, 알코올 중독이 여기 속한다. 심신미약자는 한정적 책임능력자로서 그 형이 감형된다. 범죄를 저질러도 법률상 책임능력이 제한되어 있어서 책임을 전부 물을 수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평범한 사람은 무기징역이 판결나도 심신미약자 경우 감형된 형이 나온다. 형법으로 명시된 법이라 판사의 재량으로 형을 높게 줄 수도 없고 의무적으로 감형을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심신미약 사례
심신미약이 인정된 사건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조두순 사건’이다. 2008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한 교회 화장실에서 조두순은 8살 된 여아의 목을 졸라 기절시킨 후 강간했다. 그 후, 증거인멸을 위해 피해자에게 끔찍한 상해를 입혔다. 피해자는 복부의 장기가 음부 밖으로 노출될 만큼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이 일로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족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강간상해죄로 기소된 조두순은 처음에 무기징역 형을 구형받았다. 하지만 결국 1심에서 선고받은 징역 12년형이 확정되었다. 형이 감경된 이유는 범인의 나이가 많고 평소 알코올 중독과 통제 불능으로 인한 심신미약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조두순의 형량이 결정되고 많은 사람이 ‘술 먹은 건 선택인데 왜 심신미약으로 감형을 시켜주나?’라며 공분했다. 모두가 이해하지 못했지만, 판결대로 2년 뒤, 조두순은 출소 예정이다.
조두순 사건 이외에도 심신미약으로 화제가 된 사건들이 존재한다. 2014년 12월에 건물 3층에서 한 남성이 아기를 던져 사망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발달장애 1급으로 심신상실이 인정되어 무죄 판결이 났다. 2016년 5월 강남역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한 범인은 조현병으로 무기징역에서 30년으로 감형이 되었다. 목숨을 잃은 아기와 여성에 대한 책임은 그들에게 없었다.
이렇게 감형이 된 사례가 알려지다 보니 범죄를 저지르고 자신이 심신미약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2015년 수원의 한 PC방에서 한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일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조현병 환자인 심신미약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미리 흉기를 준비한 그의 행동을 계획적으로 보고 1, 2심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심신미약 감형을 악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 바뀌고 있는 법안
심신미약 감형으로 대표적인 ‘조두순 사건’ 때문에 심신미약 감형에 관한 법률에서 개정된 부분이 있다. 술에 취한 채 저지른 범죄에 대한 감형 관행이 사라졌다. 술에 취해 성폭력을 저지르면 더 이상 감형 대상으로 치지 않는다. 일명 ‘조두순 법’이라 불리는 이 법안은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술에 취해 저지른 범죄를 악용하는 사례가 없어지고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술을 먹고 저지른 범죄에 대한 감형만 사라지고 끝이었다. 조두순 사건을 시작으로 문제가 되는 심신미약자 감형에 대한 근본적인 대처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뚜렷하게 바뀌지 않았다. 무고한 사람을 죽인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 용의자가 심신미약자로 인정받아 감형을 받게 될까 우리는 걱정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뚜렷하게 변한 것이 없다.
국민은 지금도 심신미약에 대한 감형을 해주는 법안을 개정해 달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에 부응해 이번에 조현병 등 심신미약자에 대한 감경을 어렵게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구체적으로 심신미약자에 대한 필요적 감경규정을 임의적으로 개정한다. 그로 인해 사건의 경중을 보고 법관의 재량에 따라 판결할 수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다면 범죄 사실이 인정된다. 하지만 가해자가 심신미약자라고 벌을 받지 않는다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다. 이번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이 가져온 심신미약 감형을 우리가 지나쳐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다. 사소한 이유로 20청년은 목숨을 잃었고, 가해자는 우울증이 있다고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 이 사건이 감형된다면 앞으로도 다른 가해자가 범죄를 저지르고 심신미약 상태라는 이유를 들것이 분명하다. 이번 사건이 계기가 되어 더 이상 심신미약자라고 주장하는 범죄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심신미약 감형이 범죄를 늘리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