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나의 연구, 나의 교육] 문화의 융합에 대한 성찰
[교수칼럼-나의 연구, 나의 교육] 문화의 융합에 대한 성찰
  • 언론출판원
  • 승인 2024.03.2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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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의 중요한 행사 중 부활절이 있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에 기독교 전통을 지키는 많은 문화권이나 단체에서 이른바 ‘부활절 달걀’을 만든다. 삶은 달걀에 예쁜 색깔을 칠한 후 나누어 먹기도 하고, 날달걀에 구멍을 내어 내용물을 뺀 후 아름답게 꾸며서 부활절 기간 집 안팎에 장식품으로 배치하기도 한다. 요즘은 달걀모양의 초콜릿을 만들어서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부활절 이벤트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부활절 달걀’은 기독교 고유의 전통이 아니다. 많은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중동에서 기독교가 발생했을 때에도, 로마에서 기독교를 공인했을 무렵에도 ‘부활절 달걀’은 없었다. 반면 게르만 민족의 설화 중에는 봄이 되면 토끼가 달걀을 사람들에게 전해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많은 연구자들은 게르만 민족에게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때 봄철 달걀과 관련된 토착문화가 기독교 문화와 접목되었고, 이후 유럽식 기독교가 세계에 전파되면서 4월 부활절 달걀 문화라는 ‘융합문화’가 전 세계에 퍼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필자도 이 설명이 부활절 달걀에 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문화인류학적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파묘』의 인기가 뜨겁다. 한국 오컬트라는 별명이 붙은 이 영화에는 한국의 장례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한국의 제사 및 장례문화는 다양한 이질적 요소들 간 교류의 산물이다. 불교를 통해 들어온 인도 문화, 한문을 통해 들어온 중국 문화, 식민지 시대에 들어온 일본 문화, 선교사와 미국을 통해 들어온 기독교 문화의 복합적 산물이다.

  인간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타 문화를 받아들여 지속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해 왔다. 대학에서 문화, 철학, 종교 등 인문사회학적 주제를 연구하고 공부한다는 것은 우리의 현재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성찰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단순히 많은 정보를 ‘암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에게 친숙한 문화에서는 이질적 요소를 찾아보고, 나에게 낯선 문화에서는 동질적 요소를 찾아보며 문화의 본질에 대해서 성찰하는 것이다. 이런 훈련을 해본 사람이라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낼 힘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취업을 위해 전문화, 세분화된 능력을 요구하는 요즘 사회에서도 여전히 인문사회 교양교육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남대학교 교양교육연구소는 아레테아카데미 고전 100선을 선정하고 지속적으로 정비하고 있다. 아울러 아레테고전강독 강좌를 개발 및 지원하고 있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은 특정 시대 및 지역의 한계를 넘어 인류 공통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낯선 문화에서 작성된 작품에서도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에서 전지구적 가치를 확인하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전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전을 독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갈 힘을 얻기 위해 고전을 읽어보지 않겠는가.

최성호(교양교육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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