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2023년 11월 18일, 마산 첫눈의 적바림
[정일근의 발밤발밤] 2023년 11월 18일, 마산 첫눈의 적바림
  • 언론출판원
  • 승인 2023.11.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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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일, 우리나라 남쪽 끝 마산에도 눈이 오셨다. 축복 같고 선물 같은 눈이었다. 전국적으로 골고루, 빠진 데 없이 내린 눈이었지만 마산에는 귀한 눈이었다. 그것도 11월에 내린 ‘첫눈’이었다. 신이 이곳, 따뜻한 남쪽 끝까지 눈을 뿌려주고 가셨다니! 고맙고 반가운 눈이었다. 세상을 평등하게 설국으로 만드는 함박눈은 아니었지만, 눈이 오셨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한 아침이었다. 전국적인 눈 소식에 우리만 쏙 빼지 않아 좋았다.

  북위 35도에 있는 마산의 첫눈은 조용히 오셨다. ‘터널을 지나자 눈의 나라였다.’라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문장처럼, 자고 나니 눈이 당도해 있었다. 기습적이었다. 새벽 기도 다니는 후배는 그날 새벽 4시 지나서 첫눈이 오셨다고 했다. 낮고 가난한 지붕 위에, 시멘트로 칠한 도시의 조그만 빈 땅에, 자동차 위로 눈이 제법 하얗게 쌓여 있었다. 

  눈이 오시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서둘러 눈 구경을 나섰다. 서서히 해가 뜨고 있는 시간이었다. 눈은 그 햇살에 사막의 신기루인 듯 뭉텅뭉텅 사라지기 시작했다. 푸른 잎을 단 늦가을 나무 위에 잠시 몸을 의지한 눈은 햇살이 스치자 스르르 몸을 풀고 사라졌다. 어릴 때는 겨우내 응달엔 눈이 쌓여 있는 곳이 많았는데 그마저 귀한 풍경이 되었다.

  눈이 귀하다 보니 눈을 뭉쳐 만드는 눈사람은 더더욱 귀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날 아침 나는 내 사는 동네 어디에서도 눈사람을 보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드는 방법을 모르고 사는 건지, 아침이 바쁜 도시 사람들에게 그런 여유가 사라진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귀한 첫눈이라 가포에 있는 창원기상대에 직접 문의해 보았다. 마산의 첫눈은 18일 4시 45분에 시작해 5시 45분까지 1시간가량 내렸다고 했다. 적설량은 0.3cm를 기록했다. 그러나 마산의 11월 첫눈이 얼마만의 선물인지에 대한 문의에는 아직 자료를 정리 중이라고 했다. 그날 올라온 SNS의 기록들을 찾아보다 마산에 산 지 70여 년 만에 11월 첫눈을 보았다는 기록을 보고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라도 창원기상청의 공식 답변을 듣겠지만 11월 18일의 마산 첫눈은 역사적인 기록이 될 것 같다. 발표되면 우리 생에 정말 귀한 눈이 오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동네 정자 옆에 놓인 작은 평상 위에 쌓인 눈에 ‘2023년 11월 18일 마산 첫눈’이라 손가락 글씨로 적고 사진을 찍어 남겼다. 지나가면 이 또한 역사가 될 것이니. 

  집으로 돌아오다 나는 은목서 이파리에 쌓여 있는 눈을 보았다. 얼마 전까지 꽃을 피워 향기를 자랑하던 은목서였다. 우리 마산에서 은목서 흰 꽃과 흰 눈이 만날 확률은 얼마일까? 하늘이 돕고 신이 돕는다는 천우신조(天佑神助)의 일이라야만 가능한 일일 것인데 마른 꽃 위에 흰 눈이 새로 피는 꽃인 듯 피어있었다. 눈을 감고 숨을 들이키자 하늘에 핀다는 꽃의 향기가 밀려오는 듯했다. 이 역시 축복이었다.

석좌교수, 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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