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인터넷에서 『파우스트』에 대한 글을 본 적 있다. ‘파우스트’. 제목부터 강렬하게 다가왔다. 삶에 대한 고독함과 진지함이 잘 느껴진 단어였다. 『파우스트』에는 내면의 갈등을 겪는 고독한 학자 파우스트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등장한다. 이들은 다양한 모험을 떠나며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마침, 아레테 수업 목록에서 ‘파우스트’가 눈에 띄었다. 삶의 진리를 배울 기회라고 생각해 아레테의 『파우스트』 수업을 수강했다.
“인간은 지향하는 한 방황한다.” 이는 파우스트를 유혹시키겠다고 말하는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신이 전하는 말이다. 이 문장을 보기 전까지 방황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다. 방황을 생각하면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이리저리 휩쓸리는 무기력한 이미지가 그려졌다. 『파우스트』는 그런 나에게 방황은 지향을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줬다. 처음 『파우스트』를 읽을 때 괴테가 평생에 걸쳐 쓴 만큼 굉장히 어려웠다. 책을 해석하고자 계속 곱씹으며 고뇌했다. 그때의 기억이 모여 『파우스트』는 뇌리에 강하게 남아 삶의 태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진로를 제대로 정하지 못했다. 스스로 진로에 관한 질문을 할 때마다 이렇다 할 답이 내려지지 않았다. 막연하게 하고 싶은 것들만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그마저 현실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인지, 정말 하고 싶은 것인지 불확실했다. 이런 고민을 안고 지내다 보니 불안만 점점 커졌다. 진로를 찾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봤지만, 의문은 지속됐다. 목표에 대한 방황이 이어져 공포심도 느껴졌다.
학기 중 대학생활문화원에서 심리검사 안내를 받아 검사를 했다. 이후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상담 선생님께서 먼저 연락을 주셔서 해석 상담을 받았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갔지만, 상담을 받으며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진로와 나의 적성을 제대로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섰다. 그렇게 한 번만 하고 끝날 줄 알았던 진로상담은 겨울방학에도 이어졌다. 다양한 심리검사와 직업 탐색을 통해 나의 진로를 찾아갔다. 흐릿하게만 느껴졌던 생각들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상담을 돌이켜보며 문득 파우스트의 모습이 떠오른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와 온갖 쾌락을 경험하지만,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다. 마침내 그는 다른 이들을 위한 인류애를 생각하며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를 외친다. 진정한 지향을 깨달은 것이다. 지금까지의 걱정과 불안은 파우스트처럼 자아 성찰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끝없이 ‘삶’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다 무엇을 해야 할지 방황을 겪을 수 있다. 왜 우리는 방황을 겪는가? 그 이유는 우리가 ‘노력’ 즉 ‘지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방황’이 더 성장하게 해주는 기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