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채식주의자』로 쏠린다. 이러한 열풍에 합류해 책을 찾아봤다. 다른 이들의 서평에서 ‘처제와 형부의 부적절한 관계’라는 문구가 생각을 사로잡았다. 처제와 형부의 본능적인 욕구가 책의 중점인 건가. 아니면 다른 예술적인 면모를 표현하지 않았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의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책을 집어 들었다. 삶의 깊은 상처를 가진 ‘비정상적’인 이들을 마주한다는 건 색다른 도전이며 두려움이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무언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세 중편소설이 모여 하나의 장편 소설을 이룬다. 한 여자를 바라보는 세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 본다.
남편은 줄곧 아내의 ‘평범함’을 언급한다. 특별한 매력 없는, 특별한 단점도 없는. 그러나 곧 평범함과 대조되는 피 묻은 꿈이라는 아내의 ‘낯섦’이 등장한다. 이윽고 붉은 피가 낭자한 무의식이 우리에게도 스며든다. 생명의 근원인 피는 때론 죽음을 연상케 함을 일깨운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 따르면 ‘꿈’을 통해 무의식, 억압된 욕구가 표현된다.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마침내 영혜는 꿈을 통해 학대와 억압이 뒤섞인 트라우마를 조우하기 시작한다.
처제의 몽고반점은 형부의 예술적 감각을 깨운 시발점이 됐다. 또한, 사회적 도덕성과 예술적 욕망의 경계선에 서게 만들었다. 영혜는 이때부터 자신을 식물이라고 정의 내린 것 같다. 식물은 격렬하게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이 모습이 보통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영혜의 덤덤함과 닮았다. 영혜의 담담함을 표현할 다른 장치는 있지 않았을까. 형부의 욕망은 사회적으로 결코 용인될 수 없는 행위다. 영혜의 내면에 공감하는 찰나 관계의 도덕성에만 집중하게 돼 흐름이 잠시 끊겼다. 법의 경계를 넘는 모습을 보여준 점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내 몸에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영혜는 완전한 식물이 되려 한다. 번잡한 세속을 벗어나는 몸부림이라 느껴진다. 이는 현재 2030 청년들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무한경쟁 속 청년들은 지쳤다. 학업, 취업의 억압에 눌려 벗어나고자 회피한다. 영혜도 언니의 노력을 애써 무시하며 고통을 회피하고 있던 건 아닐까. 작가는 책에 대해 “이 세계의 폭력에 저항하면서 그 저항의 방식으로 채식을 택한 여자가 나온다.”라고 설명했다. 영혜를 살리기 위해 원하지 않는 치료를 지속한다는 것은 언니의 또 다른 폭력이 될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폭력을 저지르지 않는지 성찰하게 만든다.
특히 정신건강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처음에는 영혜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오랜 시간 그녀를 알아가며 이해하게 된다. 이를 통해 정신 환자들이 겪는 트라우마와 고통에 더 공감 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책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는 것을 권장한다. 혼란스러운 장면을 단숨에 읽기에는 생각할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