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동 출신이다. 고향이라는 말은 언제나 아련한 향수와 애정의 대상이지만 하동은 그 느낌이 조금 더 특별하다. 하동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성장기는 생각만으로도 빛이 나는 듯하다. 하동의 자랑은 비단 자연환경만이 아니다. 하동은 전라도와 인접해 있어서 그야말로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에서처럼 전상도와 경라도라고 할 만큼 영호남의 두 문화권이 어우러진 문화의 용광로 같은 곳이다. 어린 시절 화개장터에 가면 전라도 사람들도 많이 장을 보러 오곤 했다. 다리 하나 건너 광양군이니 자연히 두 문화권이 어울렸다. 우리는 스스럼없는 이웃이었고 정을 나누는 동네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좀 철이 들고 보니 세상은 우리의 어우러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대립하고 반목하며 철저히 두 문화권으로 지역을 나누었고 더러 서로를 적대시했다. 나는 이런 대립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대학 시절부터 어떻게 하면 적대적인 지역감정을 없앨 수 있을지 고민했고 전라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정치인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진면목을 알고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 대학 시절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였을 때, 나를 따라다닌 많은 루머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내가 전라도 사람인데 경상도 하동 사람인 척한다는 것이었다. 순수해야 할 학생회장 선거조차 이렇듯 지역감정의 희생양이 된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때 나는 좀 더 시간이 지나고 우리들이 노력한다면 이런 지역감정은 없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몇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속의 지역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행정구역이 달라지는 것이 현실인데 그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가 뭐 그리 중요한 일인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이 견고한 혐오가 결국은 우리 삶에 균열을 가져온다.
섬진강의 강물은 전라도 강물과 경상도 강물로 갈라져 있지 않다. 다만 사이좋게 흐르다 바다에 이를 뿐이다. 지리산은 경상도에서 올라도 전라도에서 올라도 종국에서 천황봉으로 이어진다. 우리들이 아직도 낡은 지역감정의 이분법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하동의 맑은 강물과 웅장한 지리산에게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나는 하동 사람이다. 창원에서 청년기를 보냈고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하동 사람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름다운 하동,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하동이 내 삶의 근원인 것이 참 좋다. 이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나의 남은 시간들을 사람들이 가진 못된 편견과 선입견을 깨는 일에 쓰고 싶다. 우리 모두는 영남 사람, 호남 사람이 이전에 자랑스러운 우리 조국 대한민국 사람이니 말이다.
한명철(행정학과 졸업 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