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함양군은 지역의 역사, 문화 자원에서부터, 현재를 살아가는 함양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2022 함양 기네스북’을 발간했다. 기네스북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공림 상림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남계서원 등 옛 선비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문화재와 주민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담겼다. 경상남도 함양군에 위치한 남계 서원은 조선 전기 대유학자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학문의 덕행과 지조가 남달랐던 일두 정여창과 함양 남계서원에 대해 알아보자. / 문화부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하는 남계서원은 2009년 사적 제499호로 지정되었으며, 2019년 7월 6일에는 한국의 여덟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현재 등재된 서원은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총 9개의 서원이 있다. 그중에서도 남계서원은 경남에서 유일하다. 우리나라 서원 양식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남계서원은 세계인이 함께 보존해야 할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이다.
# 일두 정여창과 남계서원의 역사
일두 정여창은 조선 전기 예문관검열, 시강원설서, 안음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겸 학자로 알려져 있다. 성리학의 대가로서 경사에 통달하고 실천을 위한 독서를 주로 하였다. 정여창을 모신 서원은 전국적으로 9곳에 이르며, 그중 주된 곳이 남계서원이다.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남계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다.
남계서원은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의 유학 교육을 위해 조선 명종 7년(1552)에 지어졌다. 정여창의 고향인 함양군 지곡면 개평은 영호남의 경계에 있다는 지리적 특성으로 영호남의 문화교류와 왕래가 잦아 문향의 풍속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함양의 유림은 백운동서원의 건립에 자극받아 강익, 박승임, 노관, 정복현, 임희무 등의 주도로 남계서원을 건립하게 되었다. 서원 건립을 위해 지역 내 유림이 쌀과 곡식 등의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고, 당시 군수였던 서구연의 지원을 받아 건립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재해로 인한 흉년과 마을 사람들의 반대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강익의 노력으로 명종 14년(1559)에 마침내 서원이 세워졌다.
서원 건립 후 강익을 중심으로 한 함양 유림이 사액을 청하는 소를 올렸고, 명종 21년(1566)에 사액을 받게 됐다. 사액까지 받은 남계서원은 인근 사족들이 유숙하면서 학문을 강론하고 시를 지어 화합할 수 있는 지역의 중심 공간이 되어갔다. 그러나 이때 세운 서원은 정유재란(1579)으로 불타 없어지고, 선조 36년(1603)에 나촌에 옮겨 지웠다가, 광해군 4년(1612)에 옛터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지어졌다.
# 남계서원 알차게 이용하기!
남계천이 흐르는 서원, 함양 남계서원은 경남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길 8-11에 위치해 있다. 우리 대학에서 남계서원에 가려면 창원종합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함양행 버스를 타거나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 후 또 다시 함양행 시외버스로 1시간 10분간 이동하여 수동정류소에서 하차하면 된다. 이후 군내 버스인 함양지리산고속으로 2개의 정류장을 이동한 후 ‘남계’에서 내리면 소나무 숲에 숨겨진 남계서원이 보인다. 남계서원은 설날, 추석 휴무를 제외하고는 매일 10시부터 17시까지 운영한다. 남계서원을 더 제대로 알기 위한 관광해설 신청도 할 수 있다.
대청마루에 앉으면 고즈넉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함양 남계서원에서 하룻밤을 보낼 방법이있다. 바로 ‘남계 한옥스테이’다. 남계서원 바로 옆에 지어진 남계 한옥스테이는 매화관, 난초관, 국화관, 대나무관으로 구성되어 총 8개의 한옥 체험장으로 운영 중이다. 전통 가옥의 멋스러움이 곳곳에 배어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숙박을 체험해볼 수 있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숙박 예약은 남계 일로당 한옥스테이(www.hyhanokstay.com)에서 원하는 날짜와 객실을 선택하여 예약이 가능하다. 주변에는 상림공원, 용추폭포, 화림동계곡, 일두고택, 서암정사, 대봉산휴양밸리 등 다양한 관광지가 자리 잡고 있으니 꼭 한번 경험해보길 추천한다.
# 남계서원 더 알아보기!
남계서원은 물 맑을 ‘남(灆)’이라는 한자를 사용한다, 사용한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연화산 줄기 아래 들어앉은 서원의 앞으로는 너른 들판과 강을 끼고 있다. 또한, 인근에 남계라는 내가 흐르고 있어 자연스럽게 서원의 이름에 붙여지게 됐다.
조선전기 1552년, 정여창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된 곳으로, 1566년 ‘남계’라는 이름으로 사액 받은 사원이다. 사액서원이란 서원의 이름을 왕실에서 내리는 것으로 왕으로부터 편액·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국가가 공인했다는 의미다. 학문과 덕행의 지조가 남달랐던 정여창의 됨됨이를 후세에 알리고 계승하자는 취지로 이어졌다.
남계서원은 출입문인 풍영루와 강당, 동재, 서재, 경판고,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급한 경사지에 사당을 제일 높은 곳에 두고 출입문까지 일직선상으로 배치하였다. 서원의 누각은 치열하게 공부하던 유생들에게 휴식의 공간이 되어주곤 했다. 서원은 제향의 공간이며 자신을 갈고 닦는 신성한 학업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높은 성취를 위해서 휴식 또한 필요했기에, 유생들은 누각에서 맑은 공기와 함께 시를 읊조리거나 회식을 하였다.
1561년에 완성된 사당은 높은 곳에 위치하고, 강당과 적극적으로 격리시킨 덕에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당에는 정여창을 주벽으로 하여, 좌우에 정온과 강익의 위패가 각각 모셔져 있다. 다른 서원과는 다르게 두 개의 연당이 조영되어진 것이 특징이다. 1779년 남계서원 건립 200년 후, 일두 정여창, 동계 정온, 개암 강익 선생을 찬양하는 송덕비가 세워졌다. 비문에는 남계서원을 세운 과정과 세 명의 선생을 배향한 시기와 행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
서원은 조선시대 교육 기관이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물이자 지역의 대표적인 학자들을 기리는 정신적인 공간이다. 다양한 경남 소재 세계유산들은 오랜 기간 국내·외를 비롯하여 유명세를 떨쳤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서원에 대한 관심도는 비교적으로 낮다. 남계서원은 우리나라 서원의 전형적인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것을 기억하기 위해 먼저 찾아가보며 방법을 강구해보는 건 어떨까.
전은주·정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