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49년 시(市)가 된 이후 마산의 중심이었던 ‘중성동’에 주소를 두고 삽니다. 어느새 한 해를 보내고 ‘마산 사람’으로 산지도 햇수로 2년이 넘어섰습니다. 중성동은 법정동입니다. 법정동이란 ‘법(法)으로 정(定)한 동(洞)’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행정처리를 맡은 행정동’은 ‘오동동’에 속합니다. 도로명 주소 또한 ‘오동서’ 길 번호를 달고 있습니다.
오동동이라 하면 누구나 자연스레 오동나무를 떠올립니다. 마산 오동동은 오동나무와 무관합니다. 자주 혼동하는 여수 오동도(梧桐島)는 오동나무 섬입니다. 마산부(馬山府) 시절 ‘오산’과 ‘동성’의 이름을 따서 ‘오동(午東)리’란 이름이 생겼다고 합니다. 오동동은 상남동, 중성동과 함께 일제 강점기에는 한국인의 거주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동동엔 대물린 그 남루의 흔적이 쌓인 골목길이 유독 많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주소를 두고 주권을 가진 주민으로 살면서 오동동에 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오동동은 면적 1.84㎢, 10,544가구에 인구 19,458명(2021년 5월 기준)의 주민이, 47통 235반의 행정구역에 살고 있습니다. 오동동은 주민도 주민이지만 많은 시민이 오동동을 찾아오는, 유동 인구가 많은 곳입니다.
통계를 확인해보지 않았습니다만, 그동안 오가면서 보아온 주민들은 노인들이 많고 학생과 청년은 적었습니다. 오동동이 포함하고 있는 창동, 어시장 등의 상권이 살아 있어 이곳에 주거하지 않고 일터인 오동동으로 출퇴근 사람들도 꽤 많을 것입니다.
오동동은 1990년 7월 1일 당시 마산시의 구청제 실시로 마산시 합포구 오동동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이후 여러 차례 동(洞) 통합에서 오동동은 많은 법정동을 끌어안았습니다. 1997년의 동 통합으로 중성동과 오동동이 합쳐 오동동이 되었습니다.
2010년 7월 1일 창원시 조례 제72호로 마산·창원·진해 통합으로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으로 변경되고, 또한 창원시 조례 제934호 소규모 행정동 통합으로 동서동, 성호동, 오동동이 합쳐 지금의 오동동이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오동동의 가장 큰 상징은 신민요인 ‘오동동 타령’입니다. 오동동을 소개할 때 이 노래처럼 좋은 비유는 없습니다. 오동동 타령은 야인초 작사, 한복남 작곡, 황정자 노래로 1955년에 나와 히트한 이후 지금도 불리는 노래입니다. 노래의 힘이 오동동을 회자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기에 마산의 3·15와 10·18이 오동동에서 있었습니다.
저는 오동동에 사는 일이 행복합니다. 어시장의 싱싱한 바다 내음과 창동과 창동이 품고 있는 예술촌, 푸짐한 먹거리, 다양한 볼거리까지 저에게 정겨운 곳입니다. 사람이 어디에 산다는 일은 자신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줍니다. 저에게 ‘지금 그리고 여기’인 오동동은, 앞으로 내가 쓰고 싶은 시 속에 이미 단단한 앉음새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골목을 돌아가다 맡는 만추의 강한 금목서 향기처럼, 자주 흥얼거리게 되는 오동동 타령처럼 말입니다.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십니까?
석좌교수, 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