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7일, 중국 우한에서 최초 보고되어 전 세계를 강타한 SARS-CoV-2(이하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난 지 약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긴 시간 동안 지구촌은 씻기 힘든 상처를 입었지만, 사람들의 노력 끝에 세계는 다시 일어서려고 한다. 바이러스의 풍토병화로 인한 팬데믹의 끝, 엔데믹 시대가 드디어 열린 걸까. 코로나가 우리에게 어떠한 상처를 남겼는지, 우리가 엔데믹 시대를 선언할 수 있을지, 그렇다면 이에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어떠할지를 알아보자. / 사회부
미국과 유럽의 일부 선진국은 지난 4월 28일 기준으로 대유행의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의 하루 확진자 수준은 5만 명가량으로, 2020년 1차 대유행과 올해 오미크론 변이 유행 이후 비교적 낮게 유지되고 있다. 유럽 또한 인구의 70%가량이 코로나19에 감염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독감과 비슷한 수준으로 남아 있으며, 당국은 백신을 맞으면 대응이 가능한 단계라고 발표했다. 다만 표면상으로 코로나를 극복한 것처럼 보이나, 아직 세계는 그때의 상흔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가 지구촌에 남긴 상처
국제통화기금 IMF는 2020년에 코로나로 촉발된 경제 위기를 ‘대 봉쇄(Great Lock down)’라 명명했다. 코로나가 2009년 글로벌 경제 위기를 이을 만큼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불러일으켰다고 천명한 셈이다. 20년도 세계 경제 성장률은 -5% 정도였으며, 이는 국제통화기금이 1980년대부터 시작한 세계 경제 성장률 공식통계 집계 이후 최저치였다.
경제의 역성장은 소득 수준의 감소와 고용 감소를 불러일으킨다. 세계은행(WB)은 대 봉쇄 시기 전 세계 9,700만 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하였다고 발표했다. 세계적으로 극빈곤층이 증가세로 전환한 건 20년 만이다. WB는 21년도에도 빈곤층의 생활 개선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올해도 비슷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학자 피케티가 운영하는 세계불평등연구소는 코로나19로 떨어진 경제 수준을 부유층은 평균 7개월이면 회복하나, 빈곤층은 회복에 10년 이상 걸린다고 분석했다. 이는 빈곤층 전락 방지책은 부족한 데에 비해, 기존 계층으로 회복시켜줄 사회적 조치는 부족함을 의미한다.
팬데믹으로 인한 국제 공급망의 차질로 각국의 원자재 수입 가격 증가로 인한 식량 문제 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이는 경제 정상화 과정에서 회복되는 수요를 공급망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물가가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물가 상승을 고려한 가계의 무리한 임금 인상과 기업들의 상품 서비스 가격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의 고착화를 일으킨다. 이는 식료품 지출 비중이 부유층보다 높은 서민층과 소외계층에게 더 치명적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20년도 기준 전 세계적으로 기아에 직면한 사람들을 7억~8억이라 추정했다. 코로나 유행 전인 2019년보다 약 1억 명가량 늘어난 수치다.
정신보건 측면도 간과해선 안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격리 등으로 초래된 사람 간의 소통 부재로 정신적 이상인 ‘코로나 블루’ 또한 잔여하고 있다. 작년 10월 의학저널 란셋(Lancet)에 기고된 세계 정신건강 질환에 관한 논문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우울장애는 27.6%, 불안장애는 25.6%, 남녀 연령대 없이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우린 엔데믹을 맞이했는가?
우리는 코로나19란 질병으로부터 물리적으로 해방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엔데믹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감염병이 특정한 지역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 또는 그런 병’이다. 이는 국가 혹은 기관이 질병의 발생 시기와 장소, 규모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며, 의료체계가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3월 WSJ의 전망처럼 우리나라가 엔데믹을 공식적으로 선언할 첫 번째 국가가 될까? 5월 1일 기준 우리나라의 국민 중 87%가 기본접종(2회 접종)을 완료하였으며, 누적 확진자는 전체인구 3명 중 한 명인 1,700만 명 정도이다. 중환자 병상 가동률은 26%, 누적 치명률은 0.1%까지 떨어졌다. 이는 풍토병으로 관리 가능한 수치인 계절 독감(0.05~0.1%)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천대 길 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엔데믹이 되려면 새로운 변이에 의한 유행이 안 생겨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내 확진자는 대폭 줄었으나, 노년층이 밀집한 요양 시설 등은 아직까진 위험성이 남아 있다. 겨울철이 다가오면 바이러스의 활동력 또한 강해질 수 있고, 새로운 변이와 이로 인한 대유행의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엔데믹 자체도 코로나19의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록펠러 재단 팬데믹 예방 연구소의 새뮤얼 스카르피노는 “엔데믹이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당국자들이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라고 언급했다. 옥스퍼드대 바이러스 진화 유전체학 교수 아리스 카츠라키스는 “엔데믹이라는 단어가 오용되고 있다.”라며 “엔데믹이 코로나19의 종식이나 무해함을 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어서, 정책 입안자들이 어떤 조치를 하기 위해 풍토병이라는 단어를 쓰는 점 또한 지적했다.
그럼에도 다가올 시대를 맞이하려면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최종화 신산업전략연구단장은 엔데믹을 맞이하며 네 가지 주요 변화를 인식해야 한다고 전했다. 바로 온라인화를 넘은 가상 공간으로의 확장, 평균 인당 거주 공간의 확장 욕구로 인한 도시 공간의 저밀 평탄화, 물리적 비접촉 지향으로 인한 온-택트 사회의 가속화, 공유 경제의 위축에 따른 ‘독점적 전유’라는 새로운 생존 방식의 지향 유행이다. 이는 새로운 기술로 사회적 수용성이 증가하며 발생한 변화를 시사한다. 굳어진 우리나라 경제 사회 시스템의 발전에 새로운 동력을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의 핵심 변화인 협업과 협력의 강화 또한 주목해야 한다. 숙명여대 경제학부 강인숙 교수는 협업을 통해 성공적인 혁신을 이루는데 필요한 건 ‘개방성’이라 강조했다. 무늬만 협업으로 포장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기술 융합 생태계 형성에 주력하고, 민간 부분의 공개혁신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제도를 완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축소되고 미뤄졌던 지역 축제들과 행사들, 문화 활동 분야에서의 제약 또한 풀려 흔히 코로나 학번들도 드디어 대학다운 대학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거라 전망된다. 다가온 시대에 대비하는 일도 좋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우선해야 하는 건 코로나로 인해 가진 걸 잃은 사람들과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리지 못한 자들에 대한 배려다. 지난 2년 동안 서로 힘들었던 만큼, 이제는 서로 좀 사랑하자. 우리가 모두 울었던 만큼 웃을 수 있길 바란다.
정희정 기자, 조현석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