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하나로, 남북 정상회담
다시 하나로, 남북 정상회담
  • 이훈민 기자
  • 승인 2018.05.1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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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염원과 이산가족 상봉 재개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통일을 우리 힘으로 이루기 위해 담대한 발걸음을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하 문 대통령)의 ‘판문점 선언’ 중 일부 발표 내용이다. 피로 얼룩진 분단의 쓰라린 기억을 상기시킨다. 아픔을 딛고 또 한 번의 만남까지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다시 남과 북이 얼굴을 맞대고 앉았다. 역사를 공유하는 한민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남북정상회담. 앞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무엇일까. / 사회부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판문점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판문점                                                                         사진 제공/ 한국관광공사

 

▲남북 정상회담

  지난달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평화의 집 앞에서 남·북 최고 지도자들이 만남을 가졌다. 2007년 2차 정상회담 이후 11년 만의 만남이었다. 이날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선언’ 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적극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전 국민의 기대와 관심 속에서 이루어진 이번 3차 정상회담은 한민족 간의 전쟁이 낳은 비극의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이 회담의 결론 중 가장 큰 핵심은 단연 ‘종전 선언’이다. 종전 선언 이슈는 지난달 18일부터 인터넷을 뜨겁게 달궈 왔다. 군대 징병제와 모병제 질문에 대한 문의가 솟구치는 등, 종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이 쏠렸다. 남·북 합작 경제 발전에 대한 질문도 빗발쳤다. 이러한 종전에 대한 궁금증은 종전을 알리는 선언문 발표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종전 선언 발표 이후에도 군대와 경제에 대한 질문과 의견들은 멈추지 않고 쏟아진다. 국민의 이러한 시선 안에서 진행된 회담에 대해 정부는 정전 협정의 평화 협정 전환에 관한 추후 일정을 밝혔다.

▲종전 및 통일에 대한 시선

  “통일이나 종전 되면 군대 안 가도 되나요?” 인터넷에 종전 논의 소식이 올라왔을 때 가장 먼저 들려온 질문이다. 이 질문은 삽시간에 많은 네티즌을 통해 퍼져나갔다. 입장들도 제각기였다. ‘북한만 주적이고 일본, 중국은 아니냐.’부터 시작해서 ‘군대 많은 북한이 감당하면 되지 않나.’ 등, ‘달라질 게 없을 것이다.’ 와 ‘충분히 달라진다.’는 주장이 주된 입장이었다. 이 이슈는 우리 대학 학우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징병제가 모병제로 바뀔 일은 지금 당장은 없다. 독일 같은 경우도 동독과 서독이 통일 했음에도 21년 동안 징병제를 고집했다. 정부 관계자의 말에 의한다면 종전 선언은 단순한 상징일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 창출에 대한 의견도 다양하다. 일자리가 대거 늘어나므로 청년 실업률이 몇 년간 0%가 될 것이라는 학우가 있다면, 그와는 반대로 북한 경제 발달에 남한의 자본이 무리하게 투입되어 전체적인 빈곤을 초래할 것이라는 학우도 있다. 양측 모두 다 각각의 논리가 있어 어느 한쪽이 맞다고 할 순 없다. 다만 만일 통일이 된다면 남·북 양측 모두가 적절하게 대처하길 바랄 뿐이다.

▲이산가족 상봉 추이

  3차 남북 정상회담 판문점 선언 전문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이산가족 상봉 재개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금년 3월 기준 당국 주도 이산가족 교류현황은 근 3년간 0%이다. 분단 이후 지난 1985년에 첫 상봉이 이루어진 뒤로 2000년도에 제1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이 성사되었다. 1차 성사 후 지난 2007년까지 꾸준히 이산가족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연평도 폭격 사건 이후 3년간 중단되었다가 개성공단 폐쇄 사건 이후 지금껏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산가족이 있는 우리 대학 학우

  “내가 죽기 전에 북에 한 번 가볼 수 있으려나...” 우리 대학 문과대에 재학 중인 A 학우 조부모 B님의 탄식 섞인 말이다. 6·25 시절 부모님과 누이와 헤어져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B님은 이북에 가족들을 보러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제 주위에 이산가족이 있다는 말을 듣기 전까진 이산가족은 원래 뉴스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2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조부모 B님이 이산가족이었다는 걸 몰랐다는 A 학우는 주변에 있었음에도 관심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놀람을 표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산가족 프로그램을 자주 시청하셨던 것 같아요.” 공대에 재학 중인 C 학우의 조부모 또한 이산가족이다. C 학우의 조부모는 2차례 당국에서 주도하는 이산가족 연결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형제를 찾으려 했다는 C 학우의 조부모 얘기를 전해 들으며 씁쓸함이 느껴졌다.

  해마다 많은 이산가족이 사라진다. 끝끝내 만남을 가져보지도, 생사를 알지도 못한 채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A 학우의 말처럼 우리 주변에 있다 해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제 3차 회담을 통해 올해 8월 15일부터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된다. 65년간의 세월은 꽤 긴 시간이다. 이제 어떤 이들에겐 3년이라는 시간이 그동안의 시간보다 더 길 수도 있다. 그리움에 잠긴 모습과 촉박해져 가는 시간에서 분단의 아픔과 그 잔재가 여실히 와 닿는다.

▲한민족 통일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

  분단의 시작은 냉전 시대의 산물이었다.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우리 자국민 손으로 이뤄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우리 한민족이 한마음 한뜻이 되지 못했던 탓도 크다. 3차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세계의 시선은 가지각색이겠지만 분명 남·북의 이러한 조짐을 곱게 보지 않는 곳도 있기 마련이다. 국사를 보면 모든 환난의 시작은 외세의 개입이었다. 우리 힘으로 해결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일만큼은 흑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게끔 우리 한민족만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다른 나라 눈치에 치우쳐 관망해선 안 된다.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통일전망대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통일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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